[엘리엇 김의 감성과 지성] 8.15 광복절 단상
엘리엇 김 / 윤성재단 이사장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군의 전체 전사자 수는 48만여 명에 달합니다. 이중 유럽 전선 전사자 수는 약 30만 명 이상이었고, 한국에 해방을 가져다준 태평양 전쟁에서의 미군 전사자 수는 16만여 명이었으며, 일본군에 포로로 잡혀 처형, 고문, 질병, 굶주림 등으로 사망이 확인된 미군 포로 전사자 수만 12,935명에 달합니다.
태평양 전선은 유럽 전선에 비해 전투 환경 자체도 훨씬 열악하였습니다. 그만큼 미군과 연합군은 고전을 겪었던 것입니다. 분명 물적·인적 전쟁 피해는 내륙 전투인 유럽 전선이 더 컸으나, 유럽 전선은 전쟁으로서는 참혹했을지언정 어느 정도 문화의 엣센스라고 할 수 있는 언어와 문화가 통하는 지역이었지만, 주로 상륙작전을 통한 도서 지역 섬 점령이 주목적인 태평양 전쟁에서의 일본군과는 교전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언어의 장벽으로 의사소통 자체가 불가능했고, 문화의 차이 때문에 항복은 곧 조국에 죄를 짓고 처참한 죽음이라고 세뇌되어 항복이라는 개념이 배제된 채 서로가 처절하게 그저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죽이기 위해서만 싸웠습니다. 전쟁 말기 일본이 패전에 가까워지면서 보여준 참상들은 그 비인간성에 치를 떨 정도였습니다.
문화인류학을 위시한 제 사회과학의 전쟁론에서 설명하는 전쟁 메커니즘은 문화권이 다른 국가들끼리의 전쟁은 그 잔학성과 야만성이 훨씬 더 강하다고 봅니다. 이 학설을 바로 몽골의 징기스칸, 쿠빌라이칸의 유럽 정벌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유럽 전쟁과 태평양 전쟁의 실전 양상의 비교로 증명해 주었습니다. 그만큼 태평양 전쟁의 양상은 유럽 전쟁에 비해 훨씬 잔혹한 고전이었습니다. 전쟁의 잔혹성은 피아 간에 서로 에스컬레이트되는 상승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럽 서부 전선의 나치 독일군은 인종차별주의에 찌들어 있었지만, 일단 영국군과 미군에 대해서는 그저 적으로 만난 자들일 뿐, 유태계 등 자신들이 열등 인종으로 분류한 집단들과는 달리 절멸 대상으로는 보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서로 비슷한 문화적 공통점이 있고 언어도 어느 정도 통하다 보니 처참한 전투 현장에서도 마지막 남은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인간애가 가끔씩 발휘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언어와 문화가 완전히 달라 교전 중 피아 간에 어떠한 소통도 불가능했던 태평양 전쟁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 야만성의 극치만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또한 헤이그 조약과 제1차 제네바협약 등을 통한 교전권의 개념이나 포로, 비전투원 및 비무장 민간인의 지위에 대한 개념은 기본적으로 서양문화로부터 형성된 것으로, 일본군의 문화에서는 비교적 생소한 개념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점령군인 일본군은 점령지의 문화에 대해서도 친화적이지 않아 많은 피점령 주민들이 일본군에게 살해·착취를 당하였고, 일본군과 원주민이 우호적으로 지냈던 섬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오죽하면 자기들을 식민 지배하던 백인들이 훨씬 낫고 좋다며 백인인 미·영·호주 같은 군대들을 앞장서서 도울 정도였습니다.
참고로, 중국이 태평양 전쟁에서 가장 큰 인명 피해를 입은 국가입니다. 1937년 개전 이래 8년 동안 군인 전사자만 375만 명을 포함하여 최소 1,200만에서 최대 2,500만 명이 사망·실종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을사보호조약을 통해 피 흘림 없이 국권을 일본에 넘긴 조선과는 달리 중일 전쟁을 치른 중국의 패전 결과는 이렇게 참담하였습니다. 중국인들의 반일 감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개발도 잘 되어 있고 평지가 많으며 문화권도 비슷했던 유럽과는 달리, 지정학적으로 태평양의 섬들은 매우 덥고 습한 기후에 빽빽한 정글과 험준한 산악지형 등 문명과는 거리가 먼 격오지 원시림 속에서 고립무원의 전투가 연속이었던 것입니다.
미군은 일본군과의 전투뿐만 아니라 이동을 가로막는 늪과 뻘, 열대성 기후, 말라리아·콜레라 등 열대성 전염병, 각종 독충들과 독사들과의 싸움, 언제 끊길지 모르는 유일한 해상 보급선의 불안정 등으로 유럽 전선에 비해 태평양 전선의 전투 피로증 환자가 훨씬 더 높은 비율을 보였습니다.
한국의 해방은 이러한 상상을 초월하는 극한 상황 속에서 3년 이상의 처절한 전투를 이끌어오던 미군이 그 유명한 B-29 폭격기들로 새떼를 이루어 연일연야 도쿄 대공습으로 일본을 그로기 상태로 만들어 버린 다음, 인류 최초로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한 방, 나가사키에 수소폭탄 한 방으로 명줄을 끊어버리고 “다음 세 번째 선물은 천황의 머리맡, 도쿄의 천황궁 상공이다!”
라고 하자, 일본 군부로부터 ‘무조건 항복’을 받아낸 덕분입니다. 한국의 해방은 일본을 상대로 한 제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 전쟁에서 이렇게 젊은 피를 흘린 미군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그 유가족들이 흘린 피눈물의 대가로 주어졌습니다. 어릴 적 역사 시간에 “일본에 대해 미국과 연합군이 승전한 덕택에 우리나라는 일제로부터 해방되었다.”
고 잠시 배운 이후, 제가 우둔한 소치인지는 몰라도 그 흔한 광복절 행사의 기념사나 축사들 중에서 “미국의 승전과 수십만 미군의 전사, 상이용사들 덕분에 해방이 되었다”라며 그들을 추모하고 감사를 표하는 연설은 오늘날까지 단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친가, 외가, 처가 다 합쳐 수천만 명 이상이나 되고도 남을 태평양 전쟁 참전용사 유가족들과 친척, 친구들이 두 눈 뜨고 버젓이 살고 있는 이 미국 땅에서조차 말입니다.
이것 또한 맹목적 국수주의, 반미 사관에서 비롯된 세습화, 정형화되어 버린 인지부조화라면 참으로 한탄스럽습니다. 그리고 부끄럽습니다. ‘감사한 마음’은 가장 빨리 잊히는 기억 회로의 속성을 갖고 있지만, ‘감사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인간’은 미움과 함께 끝까지 잊히지 않습니다. 미움의 기억 회로는 감사함보다는 누구에게나 더 오랫동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인가 미국을 홈랜드(Homeland)로 하고 사는 우리들 가운데서라도 “미국의 희생과 승전 덕분에 나의 모국 대한민국이 해방되었노라!”라고 말하는 8.15 광복절의 연설을 꼭 보고 싶습니다. 미국과 태평양 전쟁 참전용사들과 그 유가족들 앞에, 그리고 우리들의 자식들과 후세들을 위해서라도 말은 바로 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