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명기학원] 개학을 맞는 마음가짐
애독자분들께서 이 칼럼을 읽으시는 주말이 지나면 9월이다. 월요일인 노동절이 지나 학교로 돌아가는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마음은 각자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부모님의 입장에선, 이제 주로 게임만 하며 빈둥대던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공부도 하고 친구들과 유익한 시간을 보내겠지 하는 희망으로 마음이 부풀지만, 한편으로는 그 긴 여름 동안 좀 더 행복한 가족 시간으로 아이 마음을 꽉 채워 주지 못함이 회한으로 남으며 다음 여름을 기약한다.
자녀들—특히 방학이 지나면 고교 시니어가 되는 아이들—도 거의 다르지 않다. 방학이 끝나고 빨리 대학 입시를 마치면 곧 원하는 대학에 진학해 캠퍼스를 거니는 상상으로 부푸는가 하면, 그 과정을 잘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먹구름을 뿌린다.
우리 아이들, 특히 필자가 요즘 자주 만나는, 곧 대입 원서를 쓰는 고등학교 졸업반 아이들의 마음은 겉으로는 여유를 보이려 하나 자꾸만 가깝게 다가오는 원서 마감일에 온갖 신경이 쓰여 마음이 답답하단다. 이즈음 필자가 돕는 녀석들을 만나 필자가 삶 속에서 찾은 좌우명을 전한다. “내가 이런 일을 하다 보니, 다음의 네 가지 P로 시작하는 단어를 마음에 품고 실행하면 좋을 것 같아.
Passion(열정), Perseverance(인내), Prayer(기도), 그리고 Pay back(은혜 갚음) 이란다. 네가 네 삶 속에서 진정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진심을 다해 열심을 다하며, 그 일을 하며 닥치는 고생과 어려움을 극복하려 노력하면 많은 일들이 잘 풀릴 거야. 하지만, 세상사는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니 위의 두 가지로 해결이 안 되는 일이 있으면, 네 위/곁에 계신 분께 기도를 해 보거라.
마지막으로 네가 원하고 바라는 것들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질 때마다, 하나님과 부모님, 선생님, 한인 커뮤니티 등등 너를 사랑으로 지원해 온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는 것을 잊지 말거라.” 필자처럼, 우리 나이든 꼰대들은 틈만 나면, 우리 생각에 젊은이들에게 무언가 도움이 될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진심의 조언이지만 도움이 될지는 받는 사람의 마음이다. 가수 양희은의 ‘엄마가 딸에게 주는 노래’ 속에서 “공부해라…
성실해라… 사랑해라… 하지만 네 삶을 살아라”라는 대목이 생각난다.
또 생각이 나는 것은, 연세대 설혜심 사학과 교수의 책에 나온 18세기 영국의 외교관인 체스터필드 백작의 ‘아들에게 주는 편지’ 내용이다. 설 교수에 의하면, 뛰어난 당대의 외교관이요 정치가였던 백작은 우아한 매너와 사람을 꿰뚫어 보는 안목, 좌중을 압도하는 웅변가였다.
후에 책으로 묶인 그의 편지 속에서 백작이 자신의 자녀가 성장하기를 원했던 모습은 우리네 21세기의 부모들이 우리 자녀들이 커 가기를 원하는 이상형과 닮아 여기 필자의 사족을 달아 간단히 소개한다:
백작의 글 중의 한 대목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품위(decency)다.”
이것은 첫눈에 사람을 사로잡는 힘을 가진 것으로, 재능처럼 발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니라 보자마자 곧바로 위력을 발휘하는 강력한 무기이다. 그런데, 그런 품위를 형성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기초적인 매너는 어텐션(attention)이다. 즉, 누군가와 만나 대화나 일을 할 때, 집중된 관심을 갖고 성의껏 임하는 것이란다.
우리 자녀들이 학교에서 수업을 받을 때, 진지하고 지적인 호기심을 갖고 수업에 임하면 어떤 선생님이 훌륭한 대입 추천서를 써 주시지 않겠는가? 이성 친구와 연애를 하며 주위의 온갖 것에 시선이 분산되기보다는 자신의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집중하면 상대방의 마음을 금방 사로잡지 않겠는가? 열정 있는 태도이리라.
이러한 태도는 인간관계에서 경멸과 무시라는 독약을 없애는 만병 해독제이며 호감을 사는 행동이다.
이에 더해 보다 적극적인 “남을 즐겁게 만드는 기술(art of pleasing)”을 연마하도록 가르친다. 이 기술을 “고도로 숙련한 사람은 누구에게서라도 애정을 끌어내어 다른 어떤 것도 그에게 줄 수 없는 힘을 갖게 하고 출세하도록 만든다.”
어찌 보면, ‘아부’와도 통할 수 있는 이 기술의 습득과 실행에 관해 이 편지는 세 가지를 가르친다. 선행을 목적으로 해야 하며, 세상의 모든 생물은 모두 칭찬을 원한다는 사실에 기반하며, 설득력 있는 아부를 위해서는 비교, 암시, 간접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악한 일을 이루기 위해 남을 속여 먹기 위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사술이니 피하고 남이 사용하지 않도록 권해야 한다.
두 번째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요즘 말과도 통하는 것이리라. 이것에 관해 우리네 현대의 부모들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자녀들도 여기에 예외가 아니며, 칭찬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심으로 하면 아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의 권유에서 말하는 것처럼, 실천에 있어 칭찬과 아부를 가르는 아주 세밀한 선을 잘 지켜야 한다는 뜻은 진정한 사랑이 이입되면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조건에 따라 이해관계에 따른 사랑이 아닌 예수님이 우리네 죄인들의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 목숨을 바친 것과 같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조금이나마 덧입힌 그런 사랑 말이다. 그러면 감사가 절로 일어날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조언을 주는 편지를 읽으며 자란 이 백작의 유일한 핏줄이었던 서자 아들은 조언에 상당히 못 미치는 어른으로 성장했다고 하는데, 이 결과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체스터필드 백작의 실패한 부모 교육은, 그가 당시 서자를 무시하는 사회 인식에 따라 직접 삶 속에서 아들을 곁에서 가르치며 보여 주는 대신 편지라는 간접적/소극적 교육이 초래한 실패로 보여지는데, 독자들께서 관심이 생기시면 직접 원문을 읽어 보고 그 실패의 이유를 찾아보실 일이다. (www.ewaybellevu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