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김의 감성과 지성] 미국이야기 3 부동산으로 대박 터진 나라 – 미국: 멕시코 전쟁

전문가 칼럼

[엘리엇 김의 감성과 지성] 미국이야기 3 부동산으로 대박 터진 나라 – 미국: 멕시코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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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과 지성

엘리엇 김

윤성재단 이사장



<지난 호에 이어>

미국은 1803년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 때 프랑스 나폴레옹으로부터 지금의 미국 중앙 대평원을 포함하는 거대한 루이지애나 땅을 매입한 이후 당시 국토 면적이 2배가 된 미국은 본격적인 서부 개척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시대에 바다로의 진출은 상당히 중요했는데, 그중 캘리포니아는 태평양으로 진출하기도 좋고 경제적으로 광석과 천연자원과 같은 잠재력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해안선을 따라 해군도 배치할 수 있어서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였습니다. 1827년, 미국 대통령 존 퀸시 아담스는 100만 달러에 텍사스 지역을 미국에 팔라고 멕시코에 제안하였습니다. 다음 대통령인 앤드루 잭슨은 500만 달러를 제시했지만 이 역시 거부당했습니다.


멕시코는 1821년, 약 11년간의 기나긴 전쟁 끝에 마침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며 광활한 땅을 갖게 됩니다. 지금의 멕시코 땅뿐만 아니라 미국에 들어있는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 뉴멕시코, 콜로라도, 텍사스, 캔자스, 오클라호마, 와이오밍주들을 다 갖고 있었습니다. 


스페인이 떠나면서 권력의 공백이 생기자 내부에서는 가톨릭을 중심으로 강력한 중앙 집권화를 주장하는 보수 엘리트들과 프랑스와 미국 혁명에 영향을 받아 연방 공화국을 주장하는 자유주의자들과 대립이 심했습니다. 또한 11년간의 전쟁으로 국고는 텅텅 비어 있었기에 강력한 군대와 치안을 보장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곳곳에서 멕시코 분리운동과 주변 원주민들의 침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중에서도 텍사스 지역이 미국과 맞닿아 있고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어 멕시코는 텍사스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대규모 이민 정책을 시행합니다. 인구가 많아지면 자연히 안정화가 될 것으로 생각하여 텍사스 이주민에게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하였습니다. 가족당 4,500에이커의 땅을 무상 제공, 세금 면제, 치안과 행정 등 자치권 인정, 멕시코 국적 제공 등입니다. 


그래서 10년 후인 1834년에는 텍사스 이주민의 인구는 15,400여 명이나 되었고 멕시코 원주민은 불과 3,600여 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 가운데에서 점차 갈등과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멕시코 국민이 되기 위해선 국교인 가톨릭으로 개종해야 하며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를 배우고 사용해야 했습니다. 주로 개신교이고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인들에겐 통하지 않는 것이었죠. 


거기다가 더 큰 문제는 노예 문제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미국 남부는 노예 제도가 있어서 노예를 사용하여 경작하는 플랜테이션 농업을 운영하였는데 멕시코는 노예 제도가 없기에 노예 사용을 금지시켰습니다. 이에 이주민들이 크게 반발하자 1830년, 멕시코는 미국인의 추가 이민을 금지하고 텍사스 원주민이 아닌 이주해온 미국인에게만 세금을 인상하는 법을 발효시켰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1835년 멕시코의 장군이자 8대 대통령인 산타 아나는 중앙 집권을 위해 텍사스의 이주민 자치권을 폐지하고 멕시코의 통제를 강화합니다. 양측의 갈등은 텍사스의 곤잘레스 지역에서 첫 번째 소규모 전투가 벌어지게 됩니다. 이로써 멕시코와 텍사스의 결정적인 단절의 계기가 되었고 텍사스 혁명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내세운 혁명의 이유는, 1. 산타 아나의 군사 독재, 2. 가톨릭 강요, 3. 무기 소지 금지, 4. 노예 소유 금지, 5. 배심 재판 미보장 등이었습니다. 그러나 멕시코의 입장은, 1. 이민자 대다수가 브로커를 통한 불법 입국, 2. 국어인 스페인어를 할 줄 모름, 3. 멕시코 국민이 아닌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 고집, 4. 불법적인 노예 소유 등이었습니다.


이후 산타 아나 대통령은 직접 2,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지금 샌안토니오에 있는 알라모 요새에서 텍사스 민병대와 전투를 벌여 민병대 180명을 모두 죽이고 승리했고, 골리아드 전투에선 포로가 된 텍사스 민병대 300명을 전부 처형하기까지 했습니다. 산타 아나는 이로 인해 반란군인 텍사스 민병대의 사기가 꺾일 것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와 텍사스인들은 더욱 뭉쳐서 멕시코에 저항하기를 다짐했습니다. 


1836년 3월 2일, 텍사스는 자체적으로 독립선언서를 서명하여 공식적으로 텍사스 공화국 건국을 선포합니다. 이에 분노한 산타 아나는 나머지 민병대 반군을 제압하기 위해 1,4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산후아신토 강 근처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샘 휴스턴이 이끄는 텍사스 군이 멕시코군의 낮잠 시간에 기습하여 다수의 사상자와 대통령인 산타 아나를 포함한 730여 명의 포로를 잡습니다. 


산타 아나는 목숨을 살려주는 대가로 텍사스 내의 군대 철수와 그들의 재산과 자치권을 보장한다는 벨라스코 조약을 체결합니다(1836.5.14). 이 전투의 공로로 샘 휴스턴은 텍사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됩니다. 그런데 멕시코는 벨라스코 조약이 산타 아나가 포로가 된 상태에서 맺은 조약이라 효력이 없다고 선언하고 텍사스의 독립을 인정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주춤하던 주변 원주민들까지 지속적으로 공격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샘 휴스턴은 텍사스가 미국에 28번째 주로 넣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텍사스의 합병 요청에 처음엔 거부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노예가 있는 남부의 노예주와 노예제를 폐지한 북부의 자유주로 나뉘어 갈등 관계에 있었는데 노예제가 있는 텍사스를 합병하면 분열이 더욱 심해질 우려가 있고 멕시코와의 전쟁 가능성과 위험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844년 제11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제임스 K. 포크는 텍사스 합병과 더불어 미국의 성장과 팽창주의를 선거 공약으로 표방하며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래서 1845년 텍사스는 미국의 28번째 주로 합병되었습니다. 미국은 리오그란데 강을 합병된 텍사스와 멕시코 간의 국경선으로 주장했는데 멕시코는 국경을 바로 위에 있는 누에세스 강이라 주장했습니다. 


서로의 의견이 틀리자 포크 대통령은 특사를 파견해서 리오그란데를 국경선으로 하는 것과 그동안 갖고 싶었던 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를 약 2,500만 달러에 매입하겠다는 오퍼를 제안했습니다. 멕시코가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하자 포크 대통령은 군대를 리오그란데 강 쪽으로 이동시킵니다. 여기에서 양측 간 무력 충돌이 발생하자 포크는 미국의 땅에서 미국인이 피를 흘렸다며 의회에 선전포고를 요청했고 1846년 5월 13일, 미국은 멕시코와의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전쟁 초기부터 재커리 테일러 장군(미국 제12대 대통령)은 팔로알토 전투와 레사카 데라 팔마 전투에서 첫 승리를 하여 이를 통해 북부 지역 공략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서부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 스티븐 커니 장군을 누에보 멕시코(뉴멕시코)의 중심부인 산타페 지역으로 보냈는데 스티븐 커니는 지역 주민들에게 미국은 멕시코와는 달리 경제적으로 공정한 대우를 해줄 것이며 종교적 자유를 인정하고 치안 확보를 하여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고 하여 이 지역에 피해 없이 쉽게 얻었습니다. 


스티븐 커니는 미국이 얻고자 했던 또 다른 거대한 땅 알타 캘리포니아로 진군했는데 당시 캘리포니아는 텍사스 혁명의 영향으로 미국 이주민들이 주도하여 곰이 그려진 깃발을 내세우고 이미 독립국가를 선포한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텍사스처럼 미국의 또 다른 주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미군과 캘리포니아 민병대와의 합동 작전으로 캘리포니아까지 점령합니다. 


1847년 9월 14일, 멕시코의 항복으로 멕시코-미국 전쟁은 끝납니다. 1848년 2월 2일, 미국과 멕시코는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을 맺고 멕시코는 대미 부채 325만 달러를 탕감받고 1,500만 달러에 알타 캘리포니아와 누에보 멕시코(현재 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를 미국에 할양하였습니다. 이전에 포크 대통령이 2,500만 달러에 사간다고 했는데?.. 그거야 멕시코가 얻어맞기 전에 좋게 말할 때의 얘기고요.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는 금광이 발견됩니다. 이로 인해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서부로 몰려들었고 이 골드 러시로 인해 미국 서부 경제 발전의 기반이 됩니다. 1901년에는 텍사스에서 석유가 발견되어 터져 나오게 됩니다. 이는 미국 내에서 가장 큰 유전으로 미국 전체 석유 생산의 40%를 차지하며 이를 기반으로 미국은 가장 강력한 부국으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이후 미국은 영국과 공동 소유였던 북서부에 위치한 오리건(현재 워싱턴주 포함) 지역까지 확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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