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칼럼] 여러분의 딸과 아들이?(1)

전문가 칼럼

[레지나칼럼] 여러분의 딸과 아들이?(1)

오늘같이 하늘이 높고 푸르른 날이었다.

나는 평소처럼 아침 일찍 사무실로 출근해서 우리 사무실 아래층 노숙자들의 데이케어(낮에 들어와 컴퓨터도 하고 책도 보는 장소, 물론 점심과 저녁을 제공해 주는 곳이다)에 내려갔다.


사무실 아래층 쉼터로 내려가 100명이 마실 수 있는 커피 포트에 물을 올리고, 아직은 아무도 출근 전이라 조용히 내가 좋아하는 가벼운 찬양곡을 작은 목소리로 부르며 하루를 시작하는 중이었다.

점심과 저녁은 노숙자들이거나 정신질환자 또는 전과자 출신들의 갱생 프로그램인 “훼어 스타트” 레스토랑에서 이들이 만들어 온 파스타나 샌드위치 등으로 우리 사무실 아래층 쉼터로 딜리버리 해준다. 


음식은 훈련된 전문 요리사들이 만들어서 보기에도 좋고 맛도 있으며 영양적으로도 손실이 없다.

쉼터의 곳곳에 손을 높이 들어 축복의 기도를 하는 게 나의 일상의 시작이었다. 오랜 시간 우리 프로그램에서 일을 해 온 나로서는 그 무엇보다도 기적을 믿고 사람들의 노력이 더해진다면 이곳에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인생의 장이 열릴 것이라 기대하게 되었었다. 


1000명 중 25명 정도가 갱생 프로그램에서 제 발로 일어설 수만 있다면, 이 결과가 성공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상황과 형편이기에.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그리고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 주어도 해결이 어려운 게 중독자들의 삶인 것이다. 중독자들도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다가 약물중독자들과 어울려 중독이 된 사람들, 가정환경에서 심적으로 고달파하다가 이들 틈에서 어울리다 자연스럽게 중독자가 된 사람들, 병으로 치료를 받다가 치료제로 쓰이던 펜타닐이나 몰핀 등에 중독된 사람들, 전쟁터에 나갔다가 정신적인 충격으로 약 없이는 그 상황을 잊어버리기 어려워 약에 의존하게 된 사람들.


우리 사무실에 이런 사람들이 새롭게 살아보겠다고 등록을 하고 2년여의 훈련 기간을 거치는데, 안타깝게도 성공률은 희박하다. 2년간 매주 고객을 만나 상담을 하고 이들의 베네핏을 찾아주고 학교와 직장 등을 알선해 연결해 주면서 모니터링을 하는데, 어느 날부터 늘 프로그램에 잘 참석하던 고객이 사라져 버리기도 하고 또다시 중독 상황이 되어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깝고 속이 상하다.

그날도 그랬다.


아침에 이들이 마실 커피물을 올려놓고, 물론 이 일은 내 일이 아니었으나 나는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아침 7시 30분에 혼자 일찍 출근해 10분간 묵상과 말씀의 시간을 가진 후, 아래층 쉼터 방들과 우리 사무실이 있는 아층 구석구석을 다니며 손을 높이 들고 각 방을 축복하는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었다.

아래층 쉼터로 내려가 시간이 남아 커피물도 올려놓아 주고, 또한 이들이 사용하는 전자레인지 안도 깨끗이 청소해 두었다.


100여 명이 쉼터로 사용하는 커뮤니티룸에는 전자레인지가 3대 있었는데, 안은 늘 이들이 음식을 덥히다 흘려놓은 음식물로 지저분하기 마련이었다. 지저분하게 사용하지 말라고 안내문을 붙여 놓았어도 ‘내 것’을 아끼는 개념이 없는 이들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였다. 물론 그들 중에는 조금 더 나은 삶을 살려고 하는 이들도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아래층 쉼터에서 일을 정리하고 계단을 통해 위층으로 올라가려는데 누군가 나를 불러 세웠다. 아마도 고객들이 들어올 시간이 된 듯했다. 아래층 쉼터에는 밤새 쉘터에서 고단한 몸을 쉬다가 이곳으로 출근한 홈리스 고객들이 우리 사무실 1층 출입구에서 안전을 위해 몸수색을 마치고, 쉼터에 마련된 샤워룸이나 공부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중 머리에 검은색 후드를 깊게 눌러쓴 키 큰 동양인 청년이 나를 불러 세웠다.


“Miss? Can I talk to you?”

내가 뒤돌아보며 “나?”라고 묻자 그렇다고 했다.

나는 9시에 첫 고객 상담이 있으니 9시 45분 정도에 시간이 날 것이라고 하고, “너의 담당 카운슬러는 누구냐?”고 묻자, 그는 지난주에 프로그램에 등록되어 아직 담당 카운슬러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밖에서, 감옥에서, 자기들만의 커뮤니티에서 이야기를 듣고 왔는데, “그곳에 가면 ‘레지나’가 있으니 레지나를 담당 카운슬러로 요청하면 도움이 될 거다”라는 말을 거리의 친구들에게 들었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다운타운 노숙자·정신질환자·중독자 프로그램에서 일하는 동양 여자인 나를 이들이 소문낸 것이다.)


이날 첫 고객 상담을 마치고 나서 아까 나를 만나고 싶다던 청년을 만나러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그는 지난밤 잠을 설쳤는지 컴퓨터룸에서 컴퓨터를 켜놓은 채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깨우려다 잠시 머뭇거렸다. 제대로 잠을 못 잔 사람에게는 깊은 잠이 무엇보다 좋은 약일 테니. 기다리다 돌아서려는데, 옆에 있던 다른 노숙자가 그를 깨우며 말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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