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김의 감성과 지성] 미국 이야기 4

전문가 칼럼

[엘리엇 김의 감성과 지성] 미국 이야기 4

<지난 호에 이어>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승전한 미국은 1848년 2월 2일, 멕시코로부터 뉴멕시코와 캘리포니아를 1825만 달러에 매입하였습니다. 그중 1500만 달러는 매입 자금이고 325만 달러는 패전국 멕시코에게 부과한 전쟁 피해 보상액이 포함된 부채를 탕감해 주는 조건이었습니다.


1860년 5월 18일, 차기 미국 대통령 후보를 뽑기 위한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독학으로 공부하여 변호사가 되고 노예제도를 ‘악의 제도’라고 칭하며 철저히 반대한 에이브라햄 링컨과 윌리엄 헨리 슈워드 상원의원 간의 대결이 벌어졌습니다. 기적적으로 링컨이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는데, 사실 정치적 중량감으로는 슈워드가 월등했습니다. 뉴욕 주지사와 상원의원을 역임한 그는 공화당의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서 두 후보는 치열한 경쟁과 공격을 주고받았고, 두 사람은 철저한 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16대 대통령에 당선된 링컨은 자신의 가장 큰 정적이었던 헨리 슈워드를 국무장관으로 임명합니다. 이 점에서 후세 사람들은 링컨의 포용력과 인격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링컨이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남부는 노예제 반대론자가 대통령이 된 것에 위기감을 느끼고, 1860년 12월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연방 탈퇴를 시작으로 6개 주가 연이어 탈퇴하며 남부연합을 결성했습니다. 1861년 4월 12일 섬터 요새 전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남북전쟁이 발발했습니다. 


4년간 이어진 전쟁은 1865년 4월, 남부의 수도인 버지니아주 리치먼드가 북군에게 함락되면서 사실상 종료되었습니다. 전쟁 종료 6일 후 링컨은 남부 지지자였던 존 윌크스 부스에 의해 암살당했습니다. 암살 이후 부통령이던 앤드루 존슨이 제17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윌리엄 슈워드를 국무장관으로 그대로 연임시킵니다.


바로 이 17대 앤드루 존슨 대통령과 윌리엄 슈워드 국무장관이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매입하게 만든 일등 공신입니다. 그들은 누가 뭐라 해도 흔들리지 않고, 유럽 제국들과 러시아와의 전쟁을 통한 국제적 역학 관계, 알래스카의 지정학적 가치, 부존 지하자원의 가치 등을 꿰뚫어 보며 남들이 보지 못하는 몇 수 앞을 내다보는 비전을 가진 지도자들이었습니다.


1720년대 러시아의 표트르(피터) 대제는 러시아 해군 소속 장교인 덴마크 출신 탐험가 비투스 베링에게 시베리아와 아메리카 대륙이 육지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아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베링은 북태평양 지역을 항해했고, 1728년 시베리아와 아메리카 사이에 해협이 있음을 밝혔습니다. 


1741년 베링은 이 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는데, 그곳이 바로 알래스카였습니다. 이후 러시아 식민지 회사들은 알래스카 서남부 알류샨 열도에 영구 정착지를 만들고 원주민들을 강제 노역에 동원해 물개와 해달을 남획하며 값비싼 모피 장사에만 열을 올렸습니다. 100여 년간 러시아는 알래스카를 차지하며 수렵과 남획으로 야생동물의 씨를 말렸고, 알래스카 수입은 갈수록 줄어들었습니다.


19세기에 접어들어 러시아는 해군력을 흑해에서 지중해로 남하시키려 했는데, 이로 인해 오스만 제국과 전쟁(1853.10~1856.2)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을 배후 지원하던 당시 세계 최강국 영국의 전력에 밀려 러시아는 패전합니다. 이것이 바로 나이팅게일이 활약한 크림전쟁입니다. 크림전쟁은 영국·프랑스·오스만 제국·사르데냐 왕국 대 러시아, 4:1의 전쟁이었습니다.


크림전쟁 패전 이후 러시아는 알렉산드르 2세가 즉위하며 개혁을 시도했습니다. 농노제 폐지, 군복무 기간을 25년에서 6년으로 단축, 그리고 1867년 3월 알래스카 판매가 그것입니다. 러시아는 전쟁에서 영국에게 패했기에, 캐나다를 식민지로 두고 있던 적국 영국이 알래스카에서 분쟁을 일으키면 속수무책일 상황이었습니다. 차라리 미국에 돈을 받고 팔아버리자는 계산이었습니다. 


당시 러시아는 전쟁 이후 재정적으로 궁핍했고, 적자를 반복하던 알래스카 유지가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알래스카에서는 사금이 발견되어 막대한 금광 개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반면, 막 남북전쟁을 끝낸 미국은 점차 강대국으로 변모하며 서부 개척을 본격화하고 있었고, 알래스카에도 지속적으로 무단 침입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러시아는 계륵 같은 알래스카를 차라리 영국이라는 공동의 적을 둔 미국에 팔아치우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미국도 알래스카를 확보하면 영국의 식민지인 캐나다를 양쪽에서 포위할 수 있는 지정학적 이점을 얻고, 막대한 지하자원 가치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이해관계가 맞물려 1867년 3월 29일, 러시아는 협상 특사 에두아르트 드 스퇴클 남작을 워싱턴 D.C.에 보내어 윌리엄 슈워드 국무장관과 철야 협상 끝에 3월 30일 새벽 4시, 720만 달러라는 헐값에 알래스카를 미국에 매각합니다. 그러나 거래 직후 미국 의회와 국민 여론은 상당히 비판적이었습니다. 


“아무 쓸모 없는 얼음덩어리를 720만 달러나 주고 샀다”며 슈워드 장관이 러시아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소문까지 돌았고, 알래스카를 ‘슈워드의 냉장고’, ‘슈워드의 바보짓(Seward’s folly)’이라고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이 거래로 미국이 앞으로 크나큰 경제적 이득을 얻을 것이라 주장했고, 러시아를 우방으로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칭찬했습니다. 


매입 직후 미국 정부는 알래스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알래스카에는 군사기지를 설치해 영국을 견제하고, 북아메리카 지역 안보를 유지하는 정도로만 활용했습니다.

그러나 1880년대에 접어들며 알래스카에서 금광이 발견되었습니다. 이후 알래스카는 캘리포니아에 이어 제2의 골드러시를 일으키며 경제적 관심을 받았고, 석탄·석유·구리·천연가스·철 등 수많은 지하자원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석탄은 전 세계 매장량의 10%에 해당했고, 석유와 천연가스는 수천억 달러 규모로 확인되었습니다.

당시 단돈 720만 달러에 사들인 알래스카는 상상을 초월하는 경제적 가치와 함께, 지정학적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대폭 확대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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