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칼럼] 여러분의 딸과 아들이?(2)

전문가 칼럼

[레지나칼럼] 여러분의 딸과 아들이?(2)

<지난 호에 이어>

“자, 여기 레지나가 왔어.”

(나는 이 직장에서 20여 년 근무했기에 웬만한 노숙자, 정신질환자, 중독자들은 대체로 나를 잘 안다. 시애틀에 작은 동양 여자가 늘 웃으며 다니며 오랫동안 이들과 함께 일하고, 또 내가 가진 베네핏 네트워크를 통해 자립을 돕기에 좋은 소문이 나기도 했지만, 또 의외로 내가 무섭다고도들 한다. 


이들은 외로워서 쉽게 마음을 열지만 동시에 쉽게 사람을 믿지 않기에 가까워지기까지 오래 걸린다. 그러나 일단 친해지면 지나치게 집착하려 하기에, 경계선을 분명히 두어야 한다.)

내가 작은 키에 늘 웃고 다니니 쉽게 자신들이 이용하려는 경우도 많았다. 조금 친해지면 “My sister”라면서 어깨를 툭툭 치거나 안으려는 경우도 있는데, 물론 절대 사양이다. 


나는 프로그램 담당 카운슬러로 존재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Hey, sister”라면서 어깨를 건드리려 하면 정색하며 분명한 어조로 고쳐준다.

“나는 네 ‘sister’가 아니야! 너의 담당 카운슬러야. 그렇게 불러.”

평소와 다르게 단호한 표정으로 말하면 대부분은 미안하다며 정정한다.


엎드려 자던 청년이 후드를 벗자, 샤워를 해서인지 깨끗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를 이층 상담실로 데리고 가 자리에 앉히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래, 나를 만나자는 이유가 뭐지?”

청년은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얼굴을 자세히 보니 한국 청년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어는 간단한 말밖에 못 한다고 했다.


그는 노숙자가 된 지 4년째라며, 현재는 쉘터에서 지내고 있는데 이제는 이런 삶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이어 그는 부모님 이야기를 꺼냈다. 부모님은 000주의 한인교회 목사님인데, 자신은 어릴 때부터 여자들과 어울리는 게 더 편했고 성정체성 때문에 힘들었다는 것이다.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아버지(목사님)와 어머니(신앙심 깊으신 분) 모두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 네가 병든 것이다. 정신 차려라”라며 강하게 부정하셨다고 한다.


청년은 고등학교 시절 같은 성향의 친구와 여성으로 분장하다 부모님께 발각되어 심한 추궁과 협박을 당했고, 결국 집을 뛰쳐나와 거리에서 4년째 살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부모님과 형제들이 그립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목회자로서 성공적인 사역을 하는 아버지에게 누가 될까 괴롭다고 했다. 쉘터 생활도 위험하고 힘들어 이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의 사정을 듣고 많은 생각에 빠졌다.

성경에는 ‘남색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는데, 그렇다면 이들은 버림받아야만 할까? 그러나 우리 프로그램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필요로 하는 이가 오면 도움의 손길을 연결하는 곳이다.

“그래, 이야기해 줘서 고마워. 부모님은 영어를 잘하시니?”


“아니요. 미국 생활은 오래하셨지만 교회만 섬기셔서 깊은 이야기는 힘들어요.”

나는 물었다. “너는 내가 어떻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니?”

청년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I am so tired of this life. I want to go back home if they accept me.”

“이 생활이 너무 지쳤어요. 집으로 돌아가 평범한 가족으로 살고 싶은데, 부모님이 받아주실까요? 그게 걱정이에요.”


나는 이 사정을 직원 회의에 보고했고, 청년을 내 케이스로 맡았다. 이후 9개월간 매주 청년을 만나며, 동시에 부모님과 몇 차례 줌 미팅을 통해 설득을 시도했다.

“부모님의 아들을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냥 아들로 보아 주시고 사랑해 주실 수는 없으신가요?”

그러나 목회자인 부모님의 반대는 완강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아들은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러면 돌아오기 전까지라도 가족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실 수는 없나요? 아드님이 부모님 댁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떨까요?”

잠시 침묵하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그 아이가 그 모습으로 오면, 저는 교회를 못 합니다. 제 아들도 바르게 가르치지 못하는데 어떻게 교회에서 설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목사님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러면 과연 어떤 방법이 좋을까?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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