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김의 감성과 지성] 해방된 자아의 견실함으로 가득한
2025 Washington Choral Concert (엘리엇 김 – 윤성재단 이사장)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내 삶의 ‘오늘’을 이 시와 함께 시작한다. 창생을 크나큰 사랑으로 감싸 안아 주는 맑고 푸른, 청아한 가을 하늘 ‘旻’, 민자라 하였던가? 영국과 프랑스도 바로 이 하늘색을 Royal Blue라 하여 왕실의 상징색으로 정하고 있다지. 위엄과 충성과 신뢰를 표상한다고. 내가 참 좋아하는 색이다. 2025년 10월 5일, 나의 오늘 아침은 연하고 밝은 Royal Blue 하늘빛의 맑은 날과 함께 시작한다.
느긋하고도 고즈넉한 초가을의 주일이자 흐뭇하고도 아련한 추석의 전날이다. 5시에 Federal Way 예술공연센터에서 기다리던 Washington Choral Concert가 있다. 오늘따라 내가 좋아하는 색상의 옷으로 차려입고 나를 마음껏 축하해 주고 싶다. 짙은 Royal Blue 상의에 밝은 Sky Blue 하의를 선택해 보았다.
넥타이는 둘이 사이좋게 섞인 스트라이프로…
나 역시 이 거대한 대자연 속에 극히 작은 일부분이기에 오늘의 나를 이런 색으로 표현하고 싶어진다. 옷은 나의 표현이라 했지. 옷은 나를 보는 이들에 대한 매너의 말 없는 표현이라 했지. 이것은 오늘의 공연을 위해 크나큰 수고를 하신 김유승님을 비롯한 무대 위의 모든 음악인들에 대한 예절이자, 이 공연 음악을 사랑하여 나와 시공을 같이한 낯선 이웃들에 대한 매너의 말 없는 표현이며, 내가 사랑하는 음악과 시문학 예술에 대한 나의 깍듯하고도 절제된 경례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오늘의 공연을 알리는 장엄한 합창의 팡파르로 울려 퍼졌다. 원제목이 ‘Die Ehre Gottes aus der Natur’—‘the glory of God from nature’(자연으로부터 나오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겔러트의 시에 베토벤이 작곡한 op.48의 독창을 위한 곡이다. 이 대우주와 자연 속의 모든 삼라만상을 사랑으로 보살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합창의 장엄함이 오늘의 하늘 모습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 베토벤의 음악과 겔러트의 시와, 그리고 오늘 눈이 부시게 푸르른 하늘의 색상이…
Carole Sager가 작사하고 David Foster가 작곡한 ‘The Prayer(기도)’가 듀엣으로 잔잔히 울려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이다. 세계적 테너 팝페라(POP-ERA) 장님 가수인 이탈리아 출신 안드레아 보첼리가, 역시 세계적 팝 싱어인 캐나다 출신 셀린 디온과 함께 부른 노래, 그리고 2002년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의 19회 동계올림픽 폐막식 때 피날레 송으로 조시 그로반과 샬럿 처치의 듀엣이 세계인들에게 중계되어 성가가 세계적인 팝송으로서 큰 감동을 준 노래.
그 외에도 여러 유명 팝페라 가수들이 듀엣으로 부른 유명한 노래이다. “주님께서 우리의 눈이 되어 주시어 어디를 가든 보살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 지혜로워지도록 도와주소서. 우리가 길을 잃고 헤맬 때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게 하소서. 당신의 은혜로 우리를 이끄시고 당신의 안식처로 인도하소서. 당신께서 주신 빛, 내가 당신의 빛을 찾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그 빛이 있으리니, 마음속에 잘 간직할 수 있도록 매일 밤 별들이 나올 때마다 당신은 영원한 별임을 우리가 기억하게 하소서….” 참으로 아름다운 영혼으로 기도하는 멋진 2중창의 노래였다.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2중주 ‘차르다시’의 연주가 시작된다.
‘차르다시(Czardas, Csárdás)’는 헝가리어로 ‘선술집(csárda)’을 뜻하며, 원래 서민적인 선술집, 대포집에서 연주되던 헝가리에 많이 사는 집시들의 민속 춤곡이자 음악 장르를 말한다고 한다. 이 음악은 애절하고도 호소력 있는 도입부와, 빠르고 격정적인 후반부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헝가리 민요와 집시 음악의 색채를 짙게 띠고 있다.
비참하게 버려져 갈 곳 없이 방황하는 나약한 삶을 애절하게 호소하는 듯한 멜로디가 신재인의 바이올린을 통하여 가슴을 찌르듯이 밀려온다. 선율의 맥과 혈을 네 개의 현에서 짚어내는 초침 같은 손가락들의 움직임, 그것을 직시하며 내비게이트하는 레이저 같은 눈빛과 심취된 혼이 담긴 예술적 얼굴 표정,
매 순간마다 이어지는 음율을 들이마시고 숨 쉬며 온몸과 바이올린이 왼팔로 껴안고 서로 생명처럼 지극히 사랑하는 하나가 되어 흘러나오는 예술적 하소연, 슬픔과 격동을 함께하며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 넘치는 온몸의 율동으로 그들의 삶과 모든 것을 나에게 전해준다. 신재인, 참 멋진 바이올리니스트이자 훌륭한 행위 예술가다.
휴식시간이 지나고 3부의 서막은 오페라의 왕이라고 불리는 이탈리아의 베르디 가곡 중 ‘Nabucco’,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으로 시작되었다. ‘나부코’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바빌론 왕국(지금의 이라크)의 느부갓네살 2세를 이탈리아어로 줄여 표기한 것이다. 기원전 6세기에 바빌로니아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유대인들을 바빌론으로 몽땅 끌고 가 노예로 삼은 것이 이 오페라의 역사적 배경이다.
7080 세대들에게 널리 알려진 디스코 댄스 뮤직 Boney M의 ‘By the Rivers of Babylon’이 있다. “By the rivers of Babylon, there we sat down, yeah, we wept, when we remembered Zion—우리는 바빌론 강가에 앉아 두고 온 시온성을 그리워하며 눈물 흘렸습니다….”
지금도 라인댄스나 체조곡으로 많이 쓰이는 노래이다. 역사적 배경으로 보면 이 곡에 증조할아버지뻘쯤 되는 노래가 바로 ‘나부코’가 아닐까? 그 당시 바빌론은 죄악과 향락의 도시였으며 히브리 노예들에겐 생지옥의 도시였던 것이다. “가라, 내 마음이여! 황금빛 날개를 타고 언덕 위로 날아가라! 따뜻하고 다정스런 바람과 향기롭던 내 고향, 요단강가의 푸른 언덕과 시온성이 우리를 반기리….” 이 합창은 고난과 절망 속에서 부르는 희망의 노래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