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칼럼] 당신의 가정은 화목한가?

전문가 칼럼

[나은혜칼럼] 당신의 가정은 화목한가?

(창 33: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야곱은 에서를 만나기를 심히 두려워했다. 그러나 만나야만 했다. 하나님이 만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먼저 형의 마음을 녹일 수 있는 방법을 전부 동원했다.


① 많은 예물을 보냈다. 또한 쌍둥이 형을 주님(주인)이라고 불렀다. “내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받기를 원하나이다”(창 32:5). 그러나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러 온다는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했다.


② 그래서 그는 “자기와 함께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이르기를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응답해 주셨다. 야곱은 거기서 밤을 지내고 또 예물을 보내며 그에게 이르기를 “이는 야곱이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뒤따라옵니다.” 이는 야곱이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주리라.”라고 생각함이었다.


③ 야곱이 인간적인 두 가지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안심이 되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얍복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밤새워 씨름하고 그 응답으로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았다.


④ 새 날이 되어 에서를 만나게 되자 야곱은 에서에게 나아가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고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에서가 달려와서 서로 목을 끌어안고 입맞추고 같이 울었다.

이 세상에 형제 사이가 원수로 변한 일은 수없이 많다. 가인과 아벨로부터 성경의 역사도 똑같다. 친형제 간에도 화목하기가 힘든데, 제3자들과의 화목은 얼마나 힘들까?


우리나라에 이산가족 찾기 운동이 크게 일어났던 때가 있었다. 가족 상봉의 감격이 우리 마음을 얼마나 뭉클하게 했던가! 남북으로 갈라진 가족들의 상봉뿐 아니라 남한 내에서의 이산가족들도 많이 재회(再會)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 운동은 계속되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같이 살아보니 마음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좋았으나 점점 원수가 되어 갔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아담의 타락이었다. 우리의 죄와 마음속의 부패성이 형제 간의 화목은 물론이지만, 부부 간의 화목도 깨뜨리고, 부자 간의 화목도 무너뜨린다.


거기에 돈이 개입되고, 명예와 권세 문제가 개입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또한 남자(여자) 형제가 화목해지려고 해도 아내(남편)들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의 화목제물로 오셨다. 먼저 하나님과의 화해가 이루어져야 하고, 사람 편에서는 진실한 회개가 있어야 한다.


야곱은 에서와의 화목을 위해 먼저 막대한 재물을 희생해야 했다. 나아가 그는 자기의 자존심을 버려야 했다. 이것은 인간적 방법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방법을 찾았다. 무엇보다 그는 밤새워 기도했고,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 곧 “하나님과 겨루어서 이겼고, 또한 사람과 겨루어서도 이겼다.”라는 새 이름을 받았다. 기도의 승리는 삶에서의 형통으로 이어졌다.


야곱이 장자권을 포기하고 에서에게 반납했다면 그런 고생은 안 해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마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화목이다. 하나님은 장자권을 지키면서 형제와 화목하라고 명하신다. 인간의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장자권을 지키며 승리해야 한다.


미국에 자식들 교육을 위해 이민을 와서 부모들이 온갖 고생을 다해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출세를 시켰지만, 서로 말도 안 통하고 마음도 안 통하고 오래도록 서로 얼굴도 못 보고 대화도 없이 지낸다.

부모는, 특히 홀로 사는 과부 어머니는 자식들이 보고 싶어서 안타깝게 소식을 기다린다. 바쁜 자식들은 그런 부모들이 괴롭다. 그래서 서로 원망이 나온다.


형제들끼리도 원수처럼 서로 연락도 없이 만나지 않고 지내는 것을 많이 본다. 부부끼리도 노년에 더욱 불화가 심하고 원망하고 이혼까지 생각하면서 억지로 사는 사람들도 많다. 사람을 의지하면, 사랑받기를 원하면 그렇게 원망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는 서로 불쌍히 여기는 긍휼의 마음을 주님으로부터 받아서, 고난을 위해 태어난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받아야 한다.


원수를 사랑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하셨고,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다. 원수는 멀리 있지 않고 가장 가까운 곳, 내 가정 안에, 아니 내 속의 미움의 죄를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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