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칼럼] 닭싸움

전문가 칼럼

[이성수칼럼] 닭싸움

닭 중에 수탉은 만나면 싸웁니다. 인사가 싸움입니다. 두 마리가 암탉을 차지하기 위해 죽을 둥 살 둥 처절하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수탉들은 피를 흘리며 한참을 싸웠습니다. 얼마 후에 마침내 승패가 결정됐습니다. 싸움에서 진 수탉은 깊은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리고 어둑한 구석으로 가 숨어 버렸습니다. 반면 이긴 수탉은 암탉 20마리를 차지하게 된 기쁨과 승리에 도취해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의기양양한 승자인 수탉은 싸움에 승리한 기쁜 나머지 높은 담장 위에 올라갔습니다. 올라가 밑을 바라보니 암탉들이 모두 싸움에 이긴 수탉을 향해 환호성을 외쳤습니다. 수탉은 기분이 좋아 큰 소리를 내지르며 자랑했습니다. “꼬끼오 꼬꼭~~~! 이 세상은 모두 내 것이다! 내가 왕이 되었다. 20마리의 암탉은 다 내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아리따운 암탉 20마리가 “꼬끼오 꼬꼭!” 


하며 높은 담장 위에 있는 승자인 수탉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담장 위에서의 승리의 기쁨은 너무도 짧았습니다. 조금 있다가 수탉의 그 큰 소리를 듣고 어디선가 독수리 한 마리가 휭! 하고 날아왔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담장 위의 수탉을 낚아채 하늘 높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싸움에 이긴 수탉은 하늘 어디선가 독수리의 밥이 되었습니다. 이 광경을 목도한 암탉들은 일제히 사방에 숨어 버렸습니다. 


얼마 후에 다시 모인 암탉들은 싸움에 패한 수탉을 찾아 말했습니다. “싸움에 승리한 그 수탉은 독수리가 채 갔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우리들의 왕이 되어 주십시오.” 결국 싸움에서 진 수탉이 암탉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승자가 교만하여 높고 높은 담장 꼭대기에 올라가 소리만 지르지 않았어도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순간에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한 치 앞도 모릅니다. 영원한 승자, 영원한 패자는 없습니다.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패자가 될 수도 있고, 오늘의 패자가 내일의 승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승리할 때가 가장 위험한 때라고 말했습니다. 암탉 20마리에 수탉 한 마리라야 유정란(有精卵)을 낳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암탉 20마리에 수탉 두 마리는 필요가 없으므로 싸움을 하여 승자를 결정합니다. 닭을 방사(放飼)하여 키울 때 수탉은 암놈 20마리를 거느리고 유유낙낙(唯唯諾諾) 다니는 모습이 평화롭게 보입니다.


닭싸움은 한자어로 ‘투계(鬪鷄)’라 쓰는데, ‘투(鬪)’는 싸운다는 뜻이고 ‘계(鷄)’는 닭입니다. 수탉끼리 만나면 꼭 싸우는 습성을 이용하여 특별히 길러 놓은 수탉과 싸움을 시켜 구경거리로 삼고 또는 돈을 거는 놀이입니다. 닭싸움(鬪鷄)은 수탉을 싸움 붙인 놀이로 다분히 도박적 성격이 강한 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으나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한편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에 건설되었던 도시 ‘모헨조다로’ 유적에서 발견된 한 도장에 투계 광경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아 기원전 25세기경부터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나라의 닭싸움은 중국에서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닭싸움과 관련된 우리나라 최초 기록은 이규보(李奎報)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실려 있습니다. 『춘향전(春香傳)』에는 이도령이 춘향이를 찾는데 “투계(鬪鷄) 소년아이들은 지체 말고 어서 가자.”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닭싸움이 여러 지역(地域)에서 행해졌습니다. 『조선의 향토오락(朝鮮の鄕土娛樂)』에 따르면 특히 경상남도에서 많이 했는데, 주요 지역들은 진양·함안·창녕·밀양·울산·김해·고성·사천 등입니다. 닭싸움 과정에 중요한 싸움닭은 인도산 ‘샤모’, 일본산 ‘한두’, 그리고 한두와 재래종의 사이에서 난 ‘우두리’가 대표적입니다. 닭싸움을 위한 닭들은 오로지 싸움을 시키기 위해서 길러집니다. 


즉 싸움할 선수닭을 양성합니다. 이들 닭에게 뱀, 미꾸라지, 달걀 등의 육식을 주고 고추장을 먹이기도 합니다. 싸움닭 중에서는 일 년생을 제일로 치는데 이는 가장 투지가 왕성하기 때문입니다.

장(場)이 서는 곳에서 주로 닭싸움이 벌어진다고 하는데 장소는 크게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닭들이 싸움을 벌일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든 닭싸움이 가능합니다. 맨땅에 선을 긋고 놀이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닭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테두리를 치기도 합니다.


놀이가 시작되면 구경꾼들이 모여듭니다. 놀이를 행하는 목적에 따라 다르나 도박성이 짙은 놀이인 관계로 구경꾼들이 어떤 닭이 이기는가를 놓고 내기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구경하는 이들 모두가 반드시 도박에 낄 필요는 없습니다. 닭들이 싸우는 걸 구경만 해도 무방하고 재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구경꾼들은 사행심이 있어 도박에 끼게 마련입니다.


싸움의 심사 규칙은 세밀하고 엄격합니다. 싸움 도중에 닭이 주저앉거나 또는 서 있더라도 주둥이가 땅에 닿으면 지게 됩니다. 싸움은 두 시간이 넘도록 계속되기도 하며, 어느 때는 닭이 죽어야 끝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둘이 같이 주저앉을 때는 주둥이를 높이 든 쪽이 이깁니다. 경기가 시작된 뒤 5분이 지나기 전에 어느 쪽이 주저앉거나 주둥이가 땅에 닿으면 무승부가 됩니다. 


30분 동안 싸우고 5분간 휴식하는 방식으로 경기가 진행되며, 5분간 쉴 때 닭에게 물을 먹입니다. 싸움법에는 앞치기, 뒷치기, 빙빙 돌다가 턱밑을 물고 늘어지는 턱치기 따위가 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한쪽 닭을 상대 닭 위로 던져서 싸움을 붙입니다. 닭싸움(鬪鷄)은 동남아시아 여러 곳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한국에서도 전국적인 분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전문적 닭싸움을 위해 생긴 닭의 종류도 있습니다.


우리 어려서 닭싸움을 많이 보았습니다. 일요일이 장날이면 장(場) 근처에서 닭싸움을 관전(觀戰)하는 데 어느 닭이 이기느냐 내기를 했습니다. 돈을 건 쪽이 이기면 돈을 번다. 이게 하도 재미있어 하루 종일 구경하고 용돈을 걸었습니다. 이곳은 청소년을 위한 싸움닭이었지만 용돈을 모두 탕진하고 집에 가면 아버지의 꾸중을 들었습니다. 암탉을 차지하려고 벌이는 수탉의 처절한 싸움을 보아온 나는 운동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처럼 훈련된 닭싸움이 도박의 성격을 띤 것에 흥미를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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