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칼럼] 마지막 음식(1)

전문가 칼럼

[레지나칼럼] 마지막 음식(1)

아직도 새벽 공기가 차가워서 숨을 들이키는데 차가운 공기가 가슴에 걸린 듯

숨을 쉬는 것이 쉽지 않아서 입고 있는 코트에 옷깃을 세워 입을 가리고 겨우 숨을 쉬려니 찬 새벽 공기가 옷깃에 걸러져서 숨을 쉬는 것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아니, 숨을 제대로 쉬기가 힘들었던 것이 밖의 기온이 차가워서가 아니라

어쩌면 00씨가 이미 돌아가셨을 것 같은 두려움에 숨을 쉬는 것이 어려웠던 것 같다.

새벽 5시경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자마자 정신없이 옷을 챙겨 입고 빠른 속도로 운전을 하여 이곳 병원까지 차를 몰았는데 시애틀에서 타코마 샌프란시스 병원에 도착하니 하늘에는 이제 새벽 동이 떠오르려고 한다.


병원은 아직도 잠이 안 깬 것인지 병원 주위가 조용하면서 적막감이 감도는데

나는 병원 입구에서 3일 전 방문했었던 00씨의 병실을 찾아가려는데 별안간 눈앞이 안 보이며 머리가 어지럽더니 생각이 잠시 멈추어 버리며 00씨의 병실이 어디였었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를 않아 잠깐 주춤거리며 서 있는데


마침 아침 일찍 밤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려는 직원을 발견을 하고는 00가 입원해 있는 병동의 병실을 물어보니 직원은 마침 내가 찾는 환자를 자기가 새벽에 살펴볼 수 있었다며 병실을 알려준다.

00씨가 입원해 있는 병실에 발을 들여놓으니 이미 병실 안에는 간호원 그리고 담당 의사와 직원 한 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00씨 앞으로 데려가 주었다. 내가 00씨가 누워 있는 병원 침대 앞에 서자 의식이 없는 것 같았던 00씨의 고개가 움직이려고 하는 듯싶었는데 곧 고개가 푹 쳐지는 듯하다.


00씨 저 레지나 왔어요!

눈을 떠보셔야지요?

00씨 레지나 채 왔습니다.

한번 눈을 떠보세요? 라고 불러보았으나


잠시 후 00씨는 어렵게 숨을 조금 몰아쉬는 듯싶더니 이내 고개가 수그러져 버렸다.

나는 00씨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 한 번 00씨를 불러댔다.

00씨 레지나 채입니다.

00씨 레지나 채가 왔어요.


어쩌면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왔었더라면 00를 볼 수 있었을 텐데….

내가 00씨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20여 년간 거리를 혼자서 헤매이면서 외롭고 슬프게 살아온 00씨의 마지막 가는 길에 무엇인가 위로의 말을 해주었어야 했는데….


그냥 이렇게만 살다가 혼자서 쓸쓸히 떠나는 00씨가 너무 가슴이 아파서 내가 어떤 위로가 될 말을 해주었어야 했는데….

나는 이미 숨이 끊어진 00씨의 몸을 두 손으로 감싸며

아, 00씨 저하고 약속한 빨간색 컨버터블 차는 사주시고 가셔야지요?


약속을 지키시고 떠나셔야지요!

지금 이렇게 가시면 안 되지요!

얼마 동안을 펑펑 눈물을 흘리며 이미 삶의 끈을 놓아버린 00씨를 감싸 안고 있는데 옆에 서 있던 간호원이 나를 00씨로부터 떼어 놓으며 꼭 껴안아 주는데 나는 간호원의 품에 안겨서 한참을 눈물을 흘렸다.


나를 안아주는 간호원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른다.

00씨가 나를 만나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 내가 아시안 카운셀링 센터에서 노인 복지 담당자로 근무를 할 때였다.


아시안 카운셀링 사무실에서 내가 했던 일들은 주로 연세가 있으신 할머니, 할아버님들에게 미국에서 살기 위한 베네핏을 찾아 드리고 이분들이 잘 모르는 어려운 서류 등을 해결해 드리는 그런 일들을 도와주는 사무실이었다.


보통 한국 어르신들이 우리 사무실을 방문을 할 때면 옷을 깨끗하게 입고 오시는데 비하여 00씨가 우리 사무실 로비에 와서 앉아 있는 것을 보면 늘 입은 옷이 다 해어졌거나 오랫동안 같은 옷을 입고 있어 옷에 때가 많이 묻고 역한 냄새도 심하게 나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00씨가 앉은 자리 옆에는 아무도 앉으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아시안 카운셀링에서 킹카운티 프로그램으로 이직을 하고서 몇 달 후에 우리 사무실 프런트 앞에서 누군가 소란을 피워 내 사무실에서 로비로 나가 보니 00씨가 프런트 직원하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나는 프런트 직원에게 애를 먹이는 00씨를 부르며 00씨 여기에 웬일이세요? 라고 물으니 이미 프런트 직원들에게 엉뚱한 요구를 하던

00씨는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나를 발견하더니 빙그레 웃으면서 “아이구 레지나 씨가 나를 좋아하나 봐, 나만 따라다니네!”라면서 반가워했었다.


내가 이곳 새로운 사무실로 오기 전 00씨는 이미 이곳 사무실의 환자 고객으로 등록이 되어 있던 상태였다.

나는 00씨를 담당하던 직원에게 내가 한국말을 하니 00씨 케이스를 나에게 양보해 달라고 부탁을 해서 00씨는 그날부터 내 케이스가 되었었다.


나를 방문하는 00씨의 몸은 깡말라서 옷이 헐렁헐렁해 보이고 마치 허수아비에게 옷을 입혀 놓은 것 같은 모습인데 늘 00씨의 손에는 오래되어 낡아버린 색 바랜 가죽가방을 들고 있었는데 가죽가방 안에는 서류 뭉치들과 커다란 망가진 우산대를 가지고 다녔다.


내가 00씨에게 망가진 우산대는 왜 갖고 다니냐 물어보니 00씨가 정색을 하며 레지나 씨 이것은 “우산대가 아니라 레이건 대통령과 통신하는 데 필요한 레이더망”이란다.”


00씨의 가방 안에는 오래전 미국의 훌륭한 대통령으로 공화당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도 훌륭한 인격자로 대접을 받던 영화배우 출신으로 미국의 제40대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께 보내는 영어로 쓴 편지가 쓰여져 있는 종이 노트북이 있었는데 00가 보여주는 편지 내용은 이러했다.


Dear President Reagan,

I am so glad you are the president of America for a long time.

I am still your good supporter.

But I don’t have a time anymore to waiting for my money back.

Please send my money as soon as possible.

Amounts is $500,9890000…

친애하는 레이건 대통령께

나는 당신이 정치를 잘해 나가기에 미국을 통치하는 데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다.

그런데, 나는 당신이 나에게 빌려간 오백 빌리언 달러를 받아야겠으니 이 편지를 받는 즉시 나에게 그 돈을 돌려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그 돈은 내가 지금 한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어서 한국으로 가야 하는데 필요한 돈으로 당신이 그동안 내 돈을 잘 사용했으니 빠른 시간 내로 그 돈을 내게로 보내 달라는 내용이었다.

2022년도에 우리 사무실이 새로운 건물을 지어 다른 지역으로 옮겨왔지만 그때에는 우리 사무실이 시애틀 3가에 있는 킹카운티 법원 앞에 있었는데 가끔씩 00씨가 이러한 편지를 써 가지고 우리 사무실 로비 안으로 들어오곤 했었다.

어느 날은 별안간 2층 사무실에 지금 자기를 태우고 갈 대통령 전용 비행기가 시동을 걸고 자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2층 비행장으로 자기를 잘 모셔서 올라가게 해달라며 프런트 직원에게 억지를 부리기도 하였는데 억지를 부리다가 안 되면

아이구, 이 사람들 봐라 도대체 뭘 모르는 사람들이네!

지금 저기 비행기가 시동을 켜놓은 채 자기를 기다리는데 빨리 자기를 2층으로 올려보내 달라고 떼를 쓰는 중이었다.

00씨는 자기가 들고 다니는 가방 안에서 정성스럽게 쓴 레이건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프런트 직원에게 내보이며 이 편지를 로날드 대통령에게 팩스로 보내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일이라고 설명 중이었다.

물론 이런 상황이 벌어질 때 내가 사무실에 있으면 프런트 직원은 방송이나 전화로 나를 불러내었다.

나는 너무나 오랫동안 잘 아는 00씨의 편지를 받아 들며 00씨에게 그래요, 이 편지 팩스로 꼭 보내 드릴게요.

그런데 이 편지에는 무슨 글이 있나요? 라며 분위기를 바꿔보려 하니

00씨는 이 건물 2층 비행장에서 자기를 기다리는 전용기가 있다며 빨리 2층으로 보내 달라고 떼를 쓰던 00씨는 나를 보더니 마치 무슨 일이 있었나 라는 얼굴로 “아이구, 레지나 씨가 있네!”라면서 반갑다며 얼굴에 만면의 미소를 짓고는 하였다.

그리고는 레지나 씨는 정말 내가 좋은가 봐, 나만 따라다니네! 라면서 웃으셨다.

00씨는 이 사무실의 모든 직원들이 자기의 말을 안 들어먹는다며 속상해 하면서 프런트 사무실 뒤쪽에서 나오는 나에게 반갑다고 그리고 나에게 이들이 도대체 말을 들어먹지 않으니 해고시켜야 한다고 일러바치는 중이다.

나는 00씨에게 그래요, 지금 팩스에 문제가 생겨서 못 보내니 이따가 팩스 머신 고치면 꼭 보낼게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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