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열모 칼럼] 아웅산 테러 사건 : 시애틀 한인 로컬 문학 칼럼
우리의 기억에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아웅산 테러사건>은 북한이 1983년 10월 9일에 미얀마를 방문 중이던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테러인 것이다. 그런데 전두환 대통령은 무사하고 대통령을 수행한 대한민국의 저명한 고위 인사들이 대거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은 전두환 대통령이 이번 방문 기회에 미얀마의 건국 영웅 <아웅산>의 묘지를 참배하려고 출발하기에 앞서 수행한 인사들이 현지에 미리 가서 대기하다가 무참히 희생되었는데, 그 희생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서석준(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 이범석(외무부 장관), 김동휘(상공부 장관), 서상철(동력자원부 장관), 함병춘(대통령 비서실장), 이계철(주 미얀마 한국 대사), 김재익(청와대 경제수석 비서관), 하동선(해외협력 기획단장), 이기욱(재무부 차관), 강인희(농림 수산부 차관), 김용환(과학기술원 차관), 심상우(민주정의당 총재비서실장), 민병석(대통령 주치의), 이재관(청와대 공보비서관), 이중현(동아일보 사진기자), 정태진(대통령 경호원), 한경희(대통령 경호원) 이상 17명이 우리 측 희생자다.
여기에 미얀마 정부 측 영접 요원 4명과 북한 테러리스트 검거작전 중에 사망한 경찰관 3명 등 미얀마 요원 7명까지 도합 24명이 이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테러를 일으킨 북한의 특수 공작원 3명은 <양곤강>에 미리 대기시킨 탈주용 고속 쾌속정을 향해 도피했는데 웬일인지 그 쾌속정이 보이지 않자 제2의 집결 장소인 북한 화물선으로 행했으나 화물선조차 약속된 장소에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궁지에 몰리자 북한 특수요원은 맞서 싸우고자 자기들이 소지하고 있던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는 순간 그 수류탄이 폭파해 중상을 입어 결국 체포되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수류탄이 이와 같이 안전핀을 뽑는 순간 폭발해 중상을 입었고, 대기시켰던 쾌속정과 화물선이 감쪽같이 사라진 까닭이 무엇일까. 그 까닭은 북한이 이들 특수 공작원이 귀국하지 못하고 현지에서 죽게 함으로써 이 아웅산 테러 사건을 영구미제사건으로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상을 입고 체포된 북한 특수요원들이 결국 북한의 테러임을 자백해 아웅산 테러 사건의 전모가 밝혀졌다.
그래서 미얀마 정부는 이 테러 사건이 발생된 지 1개월 뒤인 1983년 11월 4일에 이들 테러범이 북한군 특수요원임을 뒤늦게 공포하고, 북한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는 동시, 북한 정권에 대한 승인까지 취소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차제에 북한이 저지른 도발을 여기서 살펴보고자 한다. 북한은 6.25전쟁 직후부터 우리 남한에 대해 도발을 계속했는데 그 도발을 연도별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958년 2월 15일, 부산에서 서울로 향하던 KAL기를 평택 상공에서 납치해 평양으로 갔고, 1968년 1월 21일에 김신조를 포함한 31명의 북한 124군 특공대의 청와대 기습 미수사건과 이틀 뒤인 1월 23에 미 군함 <푸에불로>호 납치, 같은 해 10월에 북한 공비의 삼척, 울진 침투사건. 1969년 12월 11일에 강릉에서 서울로 향하던 KAL기를 대관령에서 납치해 원산으로 갔고, 1970년 6월 22일에 동작동 국립묘지 현충문 폭파하다가 실수해 1명이 폭사하고, 잔당은 도주했다.
1974년 8월 15일에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행사장에서 북한 공작원 문세광이 영부인 육영수 여사를 저격했고, 1976년 8월 18일에는 판문점에서 작업 중이던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한 이른바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1982년 10월 9일의 <아웅산 폭탄테러>, 1987년 1월 15일에 서해에서 어부 12명이 조업 중이던 <동진호 납치사건>, 1987년 11월 29일 인도양 상공에서 KAL기 공중 폭파했다. 1999년 6월 15일에 제1연평해전을, 2002년 6월 29일에 제2연평해전을, 2009년 11월 10일 제3연평해전을 일으키고, 2010년 3월 26일에 작전 중이던 우리 천안함을 폭침시켰으며, 2010년 11월 2일에는 서해 연평도의 민가를 무차별 포격했고, 2015년 8월 4일에는 38선 비무장 지대에 목함 지뢰를 매설해 우리 사병이 부상 당한 사건 등 북한은 도발을 계속했다. 북한은 이와 같이 테러 뿐만 아니라 핵무기도 꾸준히 개발하면서 우리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다. 북한은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면서도 핵 개발에 계속해 2006년에 제1차 핵실험하고, 2009년에 제2차, 2013년에 제3차, 2016년에는 제4차, 제5차, 2017년에는 제6차까지 강행해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