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목회계칼럼] 643. Covid19와 마스크와 논리 : 시애틀한인회계칼럼
이름 높은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볼 때도 가끔 “이 사람이 논리학을 배우지 않았나 보다” 하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어, 칼럼 445호(케인즈의 원본 투자승수)에서 본 바, 케인즈는 투자승수 이론을 만들 때 하나의 수학적 추론 속에서 두 가지 다른 ‘투자’ 개념을 사용했다.
철학에서도 마찬가지 문제를 본다. 몇년 전 이름을 날린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저서 속에서, 저자는 예외에 속하는 가상 사건을 동원하여 자본주의 원칙을 비판하고 있었다. 재난 지역에서 폭리를 취할 수 있는 것이 시장경제 체제이므로, 지금 우리의 제도는 옳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지금도 마스크 시장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시장경제 체제는 그런 것을 목적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며, 그런 일은 아무도 의도하지 않은 예외다.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 하는 평이한 진리를 그 철학자는 자신의 논리 속에 녹여 넣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미국에서 마스크를 쓰지 말라 하는 의료 관계 지도자들은 “Covid19에 걸린 사람은 써라”고 권고하고 있다. 이 말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마스크를 쓰지 말고 남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마스크를 써라고 하는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의료 전문가를 잡아서 “당신이 Covid19에 걸렸는지 안걸렸는지 항상 알 수 있는가?” 하고 물으면, 그는 “알 수 없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이 바이러스의 가장 특이한 점은 자신이 이 병에 걸렸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남에게 병을 옮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을 참고하면, 그 병에 걸린 사람만 마스크를 써라고 하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말이 된다. 그 결과, 우리는 마스크를 쓰는 대신 식당에도 극장에도 가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생산의 연쇄는 단절되고, 예산은 천문학적으로 낭비되고 있다.
의료계의 비논리는 그것만이 아니다. 그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마다 감기로 죽는 사람도 몇만명이다”고 했다. 그것이 무슨 말인지는, 아래 표에 “감기, 폐렴” 있는 가로줄에 57,062라는 숫자로 나타난다. 그것이 2015년 미국에서에 감기, 폐렴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총수다.
위 표에 보이는 바, 감기 및 폐렴으로 사망하는 사람의 85%는 65세 이상 노년층이다. 이들의 사인을 감기라 해야 할지 노환이라 해야 할지는 의문이다. 이 혼란은 근본적으로 “노환”이라는 진단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온 것이다. 사망자에게는 그 사인을 밝히는 병증의 이름이 붙어야 하고, 그 이름 중 감기 또는 폐렴인 경우가 65세 이상의 사망자 전체의 약 2%임을 위의 표는 보여주고 있다.
우한 바이러스도 노년층 취사율이 월등히 높지만, 감기와는 다른 특징 때문에 노환이라 하기 곤란하다. 첫째, 치사율이 하늘과 땅 차이다. 일반 감기의 치사율은 약 0.1%라고 한다. 우한 바이러스의 경우, 지금까지 나타난 통계를 보면 아무리 작게 잡아도 4%다. 치사율에서 적어도 40배가 넘는다는 말이다. 둘째, 우한 바이러스로 인하여 미국에서 사망하는 사람 수는 지금까지 아직 1천명 미만이지만, 그것은 엄청난 돈과 희생을 겪으면서 애를 쓰기 때문에 그렇게 유지된 것이다. 감기를 다스리기 위해 이만큼 노력한 적은 없다.
가장 심하게 피해를 당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사망자도 아직 위 표에 보이는 감기, 폐렴 수준에 가지 못했다. 그러나, 만일 이탈리아가 이 병을 감기 다루듯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 문제를 이처럼 키운 것은 의학의 부실이 아니라 논리의 부실이다. 미국 의료계의 논리 수준을 볼 때, 다음 겨울에는 또다시 이 병이 돌아올 것만 같다. 마스크가 흔해져 있을 이번 여름에 미리 충분한 마스크를 준비해 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