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열모칼럼] 잊지 못할 아리랑 콘서트 : 시애틀한인문학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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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열모칼럼] 잊지 못할 아리랑 콘서트 : 시애틀한인문학칼럼

민족마다 오랜 세월에 여러 가지 고초를 겪으면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그들만의 정서가 담겨진 민요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 민족에게도 우리만의 정서가 스며있는 여러 민요가 있다. 이들 민요 중에서 대표적 민요가 아리랑이다.  

아리랑에는 특히 우리 민족이 살아오면서 겪은 갖가지 애수가 담겨져 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리랑을 부르면 지난날의 험난한 삶의 현장에서 쌓인 상념에 잠기게 되며, 짙은 향수를 느끼게 된다. 이와 같이 우리 민족의 DNA 속에는 아리랑에 대한 정서가 흐르고 있기 때문인지 현재 러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가레스키(고려인)나, 만주에 거주하는 조선족도 비록 우리말은 못하면서도 아리랑을 부르면 우리와 똑같이 향수를 느낀다고 한다.     

이렇게 정겨운 아리랑이 2008년 6월 21일 저녁에 이곳 워싱턴 주립대학(UW)의 Meany Hall에서 열린 <남부통일 음악회>에서 두 번이나 연주되었다. 이날 저녁의 이 연주회는 서북미 음악 동우회와 이 행사에 초청 받아 LA에서 온 북한 출신 음악인들이 자리를 함께한 남북 음악회였다.  

제1부에 출연한 서북미 음악 동우회의 첫 곡이 아리랑이었고, 제2부에 출연한 북한 출신 음악인 동우회의 첫 곡도 아리랑이었다. 이렇게 두 번이나 연주된 이날 저녁의 아리랑은 미국이라는 이 낯선 땅에서 南솨 北 출신의 음악인들이 연주했기 때문인지 청중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더욱이 고향을 북녘 땅에 두고 있는 우리 실향민들에게 이 자리는 유별난 향수를 느끼게 했다.  

특히 제2부에서 연주한 아리랑은 지난날 평양에서 그곳 <음악무용대학>을 나오고, 러시아에서 열린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입상했다는 피아니스트가 연주해 청중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과연 중진급답게 청중을 매료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이 피아니스트가 자신이 편곡했다는 <아리랑 소나타>를 연주할 때에는 무대 뒷면의 벽에 드리운 스크린 화면에 빛바랜 태극기가 나타나 청중의 가슴을 더욱 뜨겁게 했다.  

우리 민족의 쓰라린 역사를 상징하는 저 빛바랜 태극기와 애절한 정서가 스며있는 아리랑이 한데 조화를 이룬 이날 저녁의 연주는 1,200석이나 되는 장내를 숙연하게 했다. 더욱이 일제 강점기를 살아 은 우리 8.15세대는 이날 저녁의 이 아리랑에서 지난날 겪은 험난한 세월이 그 스크린의 빛바랜 태극기에 오버랩 되어 시선을 집중시켰다.  

저 빛바랜 태극기 화면에는 뭉개 구름이 뜬 언덕길을 혼자 넘어가는 흰 옷차림의 외로운 여인이 비치는 듯 했고, 무더운 여름철 배틀에 앉아 수심가를 부르며 피로를 달래던 우리들의 어머니가 나타나는 듯했다. 그 빛바랜 태극기에는 또한 땀에 젖은 삼배 적삼을 입고 콩밭 매던 아낙네도 나타나는 듯했고, 집신 신고 밭갈이 하던 남정네도 비치는 듯했다.   

저 빛바랜 태극기에는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고 저 만주 벌판에서 말달리던 겨레의 선구자도 나타나는 듯했고, 아오내 장터에서 태극기를 치켜들고 만세를 소리 높이 외치던 유관순 학생도 비치는 듯했다. 저 빛바랜 태극기 화면에는 또한 일제의 강제징용으로 저 멀리 시베리아의 사할린 탄광에서 혹독한 강제노동에 시달이면서 고국의 처자식을 그리워하던 동포들도 번갈아 나타난 듯싶어 이 자리를 메운 청중들을 더욱 숙연하게 했다. 이렇게 南과 北의 음악인들이 자리를 함께 한 이날 저녁의 이 음악회는 이미 12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눈앞에 이와 같이 생생하게 나타나 그립기만 하다.   

나는 지난 1991년 12월 7일부터 2016년 4월 15일까지 25년간 Federal Way에 거주했는데 운 좋게도 좋은 친구들을 만나 그 덕분에 이러한 수준 높은 음악회도 감상할 수 있었으니 서북미 지역은 저에게 제2 고향인 것이다.  

서북미 지역은 미국에서도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은 풍치가 수려할 뿐만 아니라 자연 재해도 없고, 기후도 여름에는 선풍기가 필요 없을 정도로 시원하며, 겨울철에는 영하의 추위가 거의 없는 축복 받은 곳이기에 더욱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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