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목 회계칼럼] "663. 교환가치와 공산주의 1" - 시애틀 한인 회계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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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목 회계칼럼] "663. 교환가치와 공산주의 1" - 시애틀 한인 회계 칼럼

칼럼 659호, 660호, 661호 등 3개의 칼럼에서 검토한 바, “발명에서 얻은 이익은 자본가만 독차지하고 노동자에게는 아무 것도 가는 것이 없다” 하는 마르크스의 생각에는 계산착오가 있었다.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그러한 구조를 보여주는 기본 공식, 즉 칼럼 659호에 나오는 (2)번 공식을 다시 본다.

(2) 교환가치 = 불변자본 투입 + 가변자본 투입 + 잉여가치

지난 3개의 칼럼에서 다룬 발명 이야기를 잊어버리고 저 공식만을 다시 보면, 교환가치가 클수록 잉여가치가 크게 된다. 따라서, 판매자는 높은 값을 받고 팔 기회를 노리게 된다. 마르크스에게는 잉여가치가 죄악이므로, 제품을 만든 후 교환가치를 높이려는 모든 노력 또한 죄악이다. 그러한 생각은 자본론 제1권 제4장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스며 나오고 있다.

“This boundless greed after riches, this passionate chase after exchange-value, is common to the capitalist and the miser; but while the miser is merely a capitalist gone mad, the capitalist is a rational miser. 부를 추구하는 끝없는 탐욕, 즉 교환가치를 추구하는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자본가와 수전노는 같다. 그러나, 수전노가 미쳐버린 자본가에 불과하다면 자본가는 합리적인 수전노라 하겠다.”

교환가치가 크다는 것은 자본가가 많은 이득을 남긴다는 뜻이다. 공장은 제품원가에 이득을 붙이고, 도매상은 공장가격에 이득을 붙이고, 소매상은 도매가격에 이득을 붙여서 판매한다. 마르크스는 이 모든 이득이 모두 죄악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공장에서 만들어졌을 때와 마지막 소비자 손에 들어올 때까지 그 물건에 달라진 점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그러한 생각은 자본론 제1권 제5장의 끝에서 두어 페이지 앞에서 놀랍도록 간단한 아홉 단어의 인용문으로 나타난다.  

Circulation, or the exchange of commodities, begets no value. (유통, 즉 상품의 교환 자체는 아무런 가치도 창출하지 않는다.) 각주 19번을 보라고 되어 있고, 각주 19번을 보면 “Exchange confers no value at all upon products.” (F. Wayland: “The Elements of Political Economy.” Boston, 1843, p. 169.) 라는 글이 보인다. 

원래 그 말을 한 Francis Wayland (1796-1865)가 누군지 찾아보니, 로우드 아일랜드 주의 명문 브라운 대학에서 총장을 지낸 사람이다. 무명인사는 아니나 널리 알려진 사람도 아니다. 마르크스는 자기 혼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라 하기 위해 천하를 뒤진 것 같은데, 여기에서 마르크스의 경제학의 본질이 엿보인다. 자기의 생각을 현장에서 검증 받지 않고 상아탑 속에서 동지를 찾아 헤맨 것이다. 

저 인용문은, 구두 상점의 진열대에 놓인 구두 한 켤레가 그 누구에게 팔렸다고 해서 그 구두 자체에 아무런 물질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착안한 생각이다. 구두가 팔리는 그 한 순간만 포착하면, 그 판매에서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지 않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그것은 곡선을 확대하여 자르고, 또 확대하여 자르고, 이렇게 하기를 계속하면 나중에 그 어떤 작은 한 부분이 직선으로 보이는 현상과 같다. 즉, 구두가 팔리기 전과 팔린 후에 아무 변화가 없다는 생각은 지극히 감각적이다. 

감각을 지나 논리로 들어간다. 발이 큰 사람과 발이 작은 사람이 각각 맞지 않는 구두를 샀다가 서로 바꾸어서 편안하게 신었다면, 우리는 그 교환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 두 켤레의 구두는 물질적으로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누구의 손에 있느냐에 따라 그 효용 가치는 판연히 다르다. 같은 제품이라도 임자를 만나지 못했을 때와 임자를 만났을 때와는 그 가치가 다른 것이다.

임자를 만나기 쉬운 제품을 많이 만드는 제조업자는 많은 이득을 얻고, 그러지 못하는 제조업자는 많은 이득을 얻지 못한다. 구두 수요자들의 발 사이즈별 인구를 잘 짐작해서 만들면, 만든 구두가 모두 팔릴 것이다. 팔릴 것을 먼저 생각하고 나서 제조에 들어가는 체제를 total marketing이라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토요타의 JIT(just in time) 방식이다. 구두 제조업체가 발 사이즈에 관한 사전 정보 없이 마구 생산하면, 나중에 팔리지 않는 사이즈는 바겐세일 또는 폐기 처분을 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잘 팔리고 못 팔리고는 생산이 시작되기 전부터 그 운명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판매라는 것은 생산계획부터 시작된 긴긴 가치 창출 과정의 마지막 단계다. 판매에 따라오는 이익은 생산계획, 유통경로 결정, 위험 부담 등 생산과 유통의 모든 노력의 댓가로 주어지는 합리적 포상이다. 이 모든 일은 주로 자본가가 하는 일이다. 이러한 자본가의 노력을 감안하면, “교환 자체는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자본가의 노력에는 아무 대가도 지불하지 않아야 된다는 주장과 같다.  

자본론은 저러한 믿기 힘들 만큼 비합리적 생각의 반복적 표현으로 가득 차 있다. 위 줄친 부분이 자본론 제2권에는 어떻게 반복되는지, 그것은 다음 주에 구경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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