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 칼럼] “사라진 뒤의 행복” - 시애틀 한인 소셜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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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 칼럼] “사라진 뒤의 행복” - 시애틀 한인 소셜칼럼

“사라진 뒤의 행복이 무슨 소용이 있냐”고 묻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사라진 뒤의 행복은 비로소 그 실체를 느낄 수 있다. 다 지나가고 없는데... 사람들이 행복의 실체를 보고 만질 수 있다면 그것이 사라지기 전에 소중히 다루고 지키련만... 행복은 안타깝게도 마지막으로 떠나가면서 제 모습을 사랑하는 이에게,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물고기는 물속에 있을 때는 어느 곳으로든 갈 수 있는 자유와 행복을 누린다. 그러나 그 당시에 물고기는 자신이 자유롭고 행복한 존재라는 걸 알지 못한다. 사람들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 땅위에 올라온 후에야 비로소 그 때가 행복했음을 알게 된다. 우리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손에 쥐고 있을 때는 모르다가 잃어버린 뒤에나 그 소중함을 알고 행복이 무엇인지를 안다. 행복은 만질 수도 없고 눈으로 볼 수도 없는 추상적인 것(추상명사)이다. 우리가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는 것과 같다.

공기(산소)가 없으면 인간은 3분 이상 살 수가 없는데 그 고마움과 소중함을 모른다. 너무 흔하고 많아서 그럴까? 아니면 하나님이 공짜로 주셔서 그럴까? “행복은 사라진 후에 빛을 낸다”는 영국 속담이 있다. 만약 인간이 행복의 실체를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다면 그것이 사라지기 전에 꼭 붙잡고 아주 소중히 다루고 간직할 것이다. 그러나 행복은 떠나가면서 제 모습을 보여준다. 인터넷에서 읽은 어느 부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지 않아 이혼 서류를 작성하고 설명을 했다. “집과 자동차 부동산과 현금 중에서 당신이 30%를 가질 수 있어.” 아내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튿날 남편이 집에 돌아와 보니 탁자 위에 아내가 써놓은 편지가 있었다. “난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다만 한 달 쯤 시간을 갖고 싶어. 한 달 만이라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대해줘. 우리 아이 시험 기간이니까 신경 쓰지 않게... 그리고 이혼조건으로 한 가지 부탁이 있어. 당신이 결혼 첫 날 아침 출근 때 나를 안아서 거실에서 현관까지 갔던 것처럼 한 달간만 그렇게 해줘.”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한 달이면 끝날 일이니까 그렇게 해주기로 했다. 첫 날 거실에서 아내를 안았을 때 몹시 어색했다.

몇 년간 서로 신체 접촉이 없었으니까... 둘째 날은 첫날보다 나아졌다. 아내는 내 가슴에 적극적으로 기댔고 블라우스에서는 향기가 났다. 아내의 피부의 잔주름을 보면서 그동안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에게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셋째 날과 넷째 날 아내를 들어 올렸을 때 친밀감이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계속 아내를 안아 올리는 것이 익숙해 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아내가 옷을 고르고 있었다. 옷들이 모두 커져버렸다며 투덜댔다.

그러고 보니 아내를 들면 들수록 가벼워지는 느낌이 있었다. 아내는 아이를 꼭 껴안았다. 드디어 마지막 날이 왔다. 남편은 아내와 헤어질 수 없다는 걸 알고 이혼을 취소하기로 했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나오면서 꽃집에 들러 부케를 샀다. “나는 이제부터 죽을 때까지 당신을 아침마다 들어 올릴께”라고 부케에 썼다. “여보 미안해. 우리 헤어지지 말자. 난 당신을 여전히 사랑해.” 현관에 들어서는데 아무런 기척이 없이 아내는 잠자듯이 누워 있었다. 그녀는 숨져 있었다. 아내가 남긴 편지에서 그녀가 위암 말기임을 알았다. 부케를 떨어트리고 남편은 아내를 끌어안고 한 없이 울었다. 우리는 날마다 함께 하고 접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귀하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도 모른다. 내 곁을 떠난 후에야 깨닫게 되는데 이미 때는 늦었다.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 우리는 늘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면서 살아야 한다. 인생의 한 평생이 잠깐인 것을... 떠난 다음에 후회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서로 숨 쉬고 살 때 잘 해주고 사랑하자.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내보내실 때는 아주 소중하고 귀하게 만들어서 내보내셨다. 그러므로 우리 몸은 우리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다.

함부로 다뤄도 안 되고 소홀히 여겨서도 안 된다. 우리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우리 서로 미소로 대하는 사이로 만들어 보자.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루의 삶이 되도록 하자. 오늘과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은 우리가 알 수가 없다. 평소에 형님처럼 모시고 사랑하던 윤태순 장로님과 어제 오후 5시에 통화했는데 그날 저녁에 소천하셨다. 내일 교회 가는 길에 장로님의 밀린 헌금을 받아가기로 했는데.... 그렇게 갑자기 주님 품으로 가셨다. 지금도 꼭 살아계신 것만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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