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 문학컬럼] 엘리베이터 안에 갇히다 - 시애틀 한인 문학칼럼

전문가 칼럼

[이성수 문학컬럼] 엘리베이터 안에 갇히다 - 시애틀 한인 문학칼럼

이성수(수필가·서북미 문협 회원) 


나른한 오후이다. 점심에 상추쌈을 먹어서 그런지 오수(午睡)가 솔솔 밀려왔다. 상추쌈이 수면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살 때 여름에 일꾼들이 품앗이를 하는데 점심에 상추쌈을 먹고 졸려서 늘어지게 한잠을 자고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야 피로가 회복되어 오후의 일도 잘 할 수 있었다. 

긴긴 한 낮에 그 많은 일을 하고 견디는 것도 상추에 함유되어 있는 락투카리움(lactucarium)이란 수면제 효과 때문이다. 상추를 자르면 우유 빛의 하얀 즙(汁)이 나온다. 이게 바로 수면제인 낙투카리움이다. 

일주일 중 5일이나 상록회, 교회, 문인협회로 바삐 다니다가 집에 갇혀 있으니 매일 매일이 무료하고 낮잠 자는 시간만 늘어갔다. 코로나 바이러스 19 역병이 퍼질 때 처음에는 곧 끝날 줄 알았는데 이건 언제 끝날지 막막하다. 

잠이 오려고 하는데 누가 이 시간에 똑똑 아파트 방문을 조심스럽게 노크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19가 만연하고 있어 사람 왕래가 뜸한데 노크소리가 반가웠다. 아내는 마트에 가고 없었다. 누가 찾아왔나 궁금해서 반사적으로 나는 “누구세요?” 하며 아파트 방문을 열고 보니 복도에 다소곳이 서 있는 방문객은 다름 아닌 이웃 14호집에 살고 있는 아주머니였다. 

마스크를 착용한 얼굴이 다소 긴장되어 보였다. 그녀는 “권사님이 지금 엘리베이터 안에 갇혀 있어요. 빨리 가보세요”라고 한다.

나는 놀라서 황급히 그 아주머니를 따라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갔다. 가면서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마트에 갔다가 권사님 보다 늦게 아파트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하는데 권사님이 먼저 탄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어요. 근데 엘리베이터가 올라가지도 않고 문도 열리지 않고 그냥 서 있어요. 고장 났나 봐요.” 

내가 살고 있는 이 노인 아파트는 6층 건물인데 84세대의 주민이 살고 있다. 그리고 두 대의 엘리베이터가 운행되고 있다. 그런데 수명이 50년이나 되어 고장이 자주 났다. 그래서 올 2월에 새것으로 제작 교체하였다. 

나는 14호 아주머니와 같이 6층에 올라온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가기 위해  버튼을 눌렀다. 한참 후에야 문이 닫히고 또 한참 후에 아래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 동작이 굼벵이처럼 느리다. 한국에서 방문객이 와서 이 엘리베이터를 타보고 한국 엘리베이터는 무척 빠른데 왜 이렇게 느리냐고 물었다. 그렇다. 한국의 엘리베이터는 어디 가도  하나 같이 고속(高速)이다. 금방 와서 금방 떠나가고 안내 방송 멘트도 빠르다. 

사람들 걸음걸이도 빠르고 엘리베이터도 빠르게 오르내린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는 너무 느리다. 느려도 한참 느리다. 한국에서 온 손님 보기가 민망할 정도이었다. 

하지만 느린 이유가 있다, 만일 한국의 엘리베이터처럼 휙 획 고속으로 운행한다면 매일 사고가 일어날 것이다. 왜냐 하면 입주자가 모두 노인들이기 때문에 대부분 지팡이, 휠체어, 워커, 보행기와 같은 보조기에 의지해 다니는데 엘리베이터가 빨리 움직인다면 하체가 약하여 중심을 못 잡고 금방 넘어지는 사고가 빈번할 것이다. 

이번에 새것으로 제작할 때도 자그마치 한 대에 5~6개월, 2대라 도합 1년이 걸려 완성하였다. 고속 엘리베이터 같으면 금방 교체가 되겠지만 느림보 엘리베이터라 완전히 새로 특수 제작하였기 때문이다. 제작하는 사이에 한 대만 운행하여 고장이 자주 발생하여 불편하였었다. 만약 한국이라면 이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은 도로공사도 느리다.

새 엘리베이터를 제작완료 하고 처음 탈 때 땡! 땡! 하고 경쾌한 종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리면 녹음 안내 음성이 부드럽고 살가워 애교가 넘치고 영혼을 흔드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덜컹거리는 기계 소음이 하나도 없다. 50년 전에 제작한 엘리베이터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세련되어 보였다,

1층 단추를 누른 후 한 참을 내려와 1층에 섰다. 옆에 고장 나 서 있는 엘리베이터 안에 아내는 어느 여자 노인과 같이 갇혀있었다.

밖에서 엘리베이터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올라가는 버튼을 눌렀다. 아무리 눌러도 반응이 없다. 몇 번을 누르다가 아내와 통화를 하였다.

"1층 번호를 눌러도 문이 안 열리고 6번을 눌러도 올라가지 않아 그냥 갇혀 있어요." 이런 경험을 처음 하는 아내는 당황하지도 않고 침착하였다. 나는 "문 옆에 1층에서부터 6층까지 층별 버튼이 보이지요." 

“네! 보여요”

“맨 밑에 전화의 수화기 그림이 보이지요?" 

"네!"

"그러면 수화기 그림 옆에 "헬프(help)란 영어 글씨가 보이고 옆에 크고 둥근 버튼이 보일 거요?"

"네!" 그걸 눌렀더니 미국사람이 받데요."

“그래 뭐라고 했어요?"

“디스 이즈 사우스릿지 하우스 엘리베이터. 엘리베이터 이즈 스톱. 헬프 미”(This is southridge House elevator. Elevator is stop. Help me!)라고 했더니 ‘O.K’라 말하고 한참을 영어로 뭐라고 말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그럼 됐어요. 기술자가 온다는 말 일거요. 기다려 봐요"

아내는 특히 영어가 서투르기 때문에 어떻게 할지 몰라 당황했지만 소통은 그런대로 그냥 한 셈이다.

아내는 엘리베이터 안에 갇힌 채로, 나는 로비에서 기술자가 올 때 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19로 사무원이 출근하지 않아 아파트 사무실은 텅 비어있다. 주지사의 행정명령을 지키느라 입주자들은 집에만 있지 밖을 나오지 않고 있어 한산했다. 몇 몇 주민만 마스크를 착용한 채 옆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오르내리고 있었다. 나는 기다리는 동안 정원 텃밭을 한 바퀴 돌아 봤다. 가을이라 토마토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나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쪽으로 돌아 왔다.  

고장 난 엘리베이터로 가서 혹시나 하고 시험 삼아 버튼을 눌러 보았다. 누르는데 순간적으로 예감이 이상했다. 손에 닿는 촉감이 아주 스무스 했기 때문이다. 조금 전에 버튼을 누를 때는 둔탁하고 무거운 느낌이었다. 그런데 손이 닿자 힘없이 문이 스르르 열렸다. 

문이 활짝 열리자 엘리베이터 안의 간이 의자에 앉아 있던 아내는 어느 할머니와 같이 웃으며 벌떡 일어났다. 90세가 넘어 보이는 러시아 할머니는 영어를 못하지만 ‘땡큐’ 소리를 연발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환하게 웃는 얼굴이 내 눈에 클로즈 업 되었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폐쇄된 공간에 갇혀 고생한 아내를 포옹이라도 하고 싶을 만큼 반가웠다. 

그렇게 굳게 잠겨있던 엘리베이터 문이 쉽게 열리니 참 신기한 노릇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기술자와 통화할 때 맨 나중에 말한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틀림없이 그곳에서 컴퓨터로 원격 조정하여 문을 열어 줄 테니 잠시만 안심하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분명히 말 하였을 것이다. 

지금 운행하고 있는 이 엘리베이터는 올해 즉 2020년에 제작한 컴퓨터가 내장된 소위 첨단 제품이다. 그러나 우리가 전에 사용해 왔던 엘리베이터는 1970년 그러니까 50년 전에 만든 컴퓨터가 전무한 소위 구시대의 것이다.

지금 우리는 밥솥까지 손톱만한 스마트 칩이 내장되어 있어 버튼 하나로 수십 가지 맛있는 밥을 지어 먹고,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 폰은 전화기 기능을 초월하여 다양한 첨단 정보를 제공 해 주어 휴대폰뿐만 아니라 컴퓨터에도 전달되고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서 통화하는 페이스톡은 신기하기만 하다. 또 예전엔 비밀번호를 눌러야 보안이 해제되어 작동했는데 요즘은 스마트폰에 사용자 얼굴을 인식하거나 홍채인식을 해두어 비밀번호 없이도 편리하게 작동하는 제품도 나온 지 오래다.  

50년 전에 만든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문(門)에 고장이 나면 그 안에 있는 전화기로 신고하여 기술자가 와서 문을 열어 주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사람이 오지 않고도 컴퓨터로 고장 난 엘리베이터를 향해 원격 제어하여 문을 열어주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마냥 기술자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우리가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지고(落後) 있는지 부끄럽기 까지 하였다. 

만일 채소밭 구경을 하고 고장 난 엘리베이터에 와서 시험 삼아 버튼을 눌러보지  않았더라면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로 기술자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아내가 10분가량 갇혀있었던 그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까지 같이 오면서 첨단기술 문명에 감탄하고 아내를 위험에서 안전하게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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