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딜레마 바이든 딜레마
민주당 주자들의 한반도 정책
내년에 있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한 관심의 초점은 민주당으로 쏠린다. 공화당은 이변이 없는 한 재선에 도전하는 트럼프가 후보로 추대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일전에 뉴욕의 활동가 변호사 후배를 만나 미국의 대선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청년 시절 부터 한국의 민주화와 동포들, 특히 서류 미비자들의 권리를 위해 헌신했던 존경스러운 후배다. 또 그는 오랫동안 유권자 등록 운동에 적극 나서면서 동포들의 미국 정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정말 고민입니다. 한반도 문제에 관한한 트럼프만큼 유연하고 실제적인 사고를 지닌 인물이 없어요. 또 어쨌든 어렵사리 단추를 꿰고 있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국내 정책들 특히 반이민 정책을 보면 결코 지지할 수 없으니 말이죠."
많은 동포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누가 뭐래도 트럼프는 한때 상황을 악화 시키기도 했지만 극적으로 반전시킨 주역의 하나다. 북핵 위기라고 지칭됐던 2017년의 상황을 되돌아보면 지금도 아찔하다. 일촉즉발의 상황 아니었던가. 우리 동포들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당시 서울에 있었던 필자는 하루에도 몇 통씩 미국 지인들의 전화와 문자를 받아야 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모두들 전쟁은 안 된다는 걱정이었다.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이러다 정말 전쟁이라도 나는 게 아니야?”
구순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빨리 미국으로 들어오라고 성화셨다.
“어머니, 미국이 더 위험하대요. 태평양 넘어가는 대륙간 탄도탄이라잖아요.” 짐짓 그렇게 말했다. “LA라면 몰라도 뉴욕까지 어떻게 오냐?”
노인의 나름 지식(?)에 한참을 웃어야 했었다.
그랬던 일촉즉발의 상황이 김정은의 신년사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반전되면서 4월의 남북 정상회담, 6월의 싱가폴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졌고 부침과 우여곡절을 보이고는 있지만 적어도 전쟁 걱정은 면하게 되지 않았는가. 그리고 보니 싱가폴 회담이 벌써 1년이 다 돼간다. 자신의 핵단추가 크다면서 로켓맨을 한 방에 날려버리겠다고 으르렁댈 때는 그토록 밉상이더니 싱가폴에서 김정은과 손을 번쩍 치켜들 때는 박수가 절로 나왔다. 미국 내에서 북미회담은 트럼프 혼자만 지지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나름대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그가 재선에 성공한다면 한반도 문제에는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다른 정책들을 보면 우리 동포들로서는 그의 손을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다.
지금 나서고 있는 민주당 후보들 가운데 트럼프만큼 북핵 문제, 한반도 문제에 유연한 사고를 가진 인물은 없는가. 벌써부터 많은 여론조사가 발표되고 있지만 그 가운데 어느 정도 신뢰도를 인정받는 '하버드 캡스-해리스 폴'이 최근 등록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바이든 전 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2위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바이든 36%, 샌더스 17%. 그 뒤를 이어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이 3위를 차지했고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과 피트 부티지지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이 동률 4위에 올랐다. 유망주로 꼽히는 베토 오로크 전 하원의원은 5위였고 합리적 지한파로 통하는 제이 인슬리 워싱턴주 주지사와 한반도 정책에 비교적 전향적인 커스틴 질리브랜드 뉴욕 연방 상원의원은 상위 순위에 들지 못했다.
민주당의 2020년 대선 경선 레이스는 6월 26∼27일 플로리다 마이애미에서 열리는 1차 TV토론을 시작으로 공식 개막한다. 이 토론에는 여론조사 순으로 7~8명이 참여하게 된다.
물론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기에 순위는 어떻게 요동칠 지 모른다. 미 대선에는 항상 예기치 못한 변수가 튀어 나와 판도를 흔들어대곤 했었다.
필자가 만난 활동가 박 변호사는 동포사회의 여건상 민주당 경선에 적극 참여해 영향력을 과시해서 후보가 우리의 요구를 듣게 하는 방안이 가장 윗길이라고 결론지었었다. 필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민주당 후보들은 우리가 관심 가지고 있는 한반도 정책,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어떤 복안을 지니고 있는가. 아직 이들 주자들이 공식적인 견해를 밝힌 바는 없다. 실제 이들에게 한반도 정책은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선두권을 달리고 있는 후보들 가운데 그나마 한반도 정책에 관해 한마디라도 한 이는 샌더스 의원이 유일하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다른 것은 다 반대하지만 한반도 문제에 있어 평화와 협상을 통한다는 트럼프의 프로세스에는 적극 찬동한다”고 언명한 바 있다. 어찌 보면 트럼프는 저 반대편에 원군을 하나 가지고 있는 셈이다.
선두를 달리고 있는 바이든은 자타가 공인하는 민주당 온건파. 최근 김정은을 흉폭한 독재자라고 불러 트럼프와도 설전을 벌이고 있다. 그가 백악관의 주인이 된다면 진행 중인 북미 협상에 먹구름과 폭풍우가 몰아칠 것이라는 예견이 자연스레 나오는 대목이다.
이번 조사에서 3위를 차지한 카말라 해리스는 혼혈 유색인으로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을 거쳐 주 역사상 역대 세 번째 여성 상원의원 자리를 꿰찬 인물. 그녀는 많은 이슈들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미국이 수행 중인 전쟁이나 국방비 지출은 언급하지 않는다.
법률학자 출신인 메사츄세스 연방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렌은 미국 내 불평등과 기업의 탐욕에 대한 선굵은 도전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대외정책에 대한 입장은 안전운행 서행 수준이다. 그녀는 “비대해진 국방 예산을 삭감하고 방산 외주업자들의 전횡에 마침표를 찍자”고 말하고 있지만 '비대해진' 군비 지출 법안 3분의 2이상에 찬성표를 던졌다. 워렌은 2018년 상원의원 재선 캠페인 당시 ‘방산업계’들로부터 34,729달러의 기부금을 받았다.
지난 번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텃밭인 텍사스에서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 공화당 거물에게 석패함으로써 주목을 받는 민주당의 젊은 유망주 베토 오로크는 연방 하원에서 2013년 이후 29개의 군비 지출 법안 중 20개(69%)에 찬성표를 던졌다.
‘미국의 군사 정책을 옥죈다는 방산 외주업자들의 전횡’의 실력을 느껴볼 수 있는 대목 들이다.
아직 시간은 많다. 찬찬히 들여다보고 결정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권자 등록, 적극 참여가 먼저다.
<저작권자 ⓒ 시애틀J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