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칼럼] 유대인의 왕

전문가 칼럼

[나은혜칼럼] 유대인의 왕

(마 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동방박사들이 찾아와서 “유대인의 왕이 어디 계시냐?”고 물었다. 운명하실 때에도 십자가 위의 명패에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하였다.(마 27:37)

예수님의 모든 말씀엔 왕적인 지혜와 능력과 권위가 있어서 질병들은 물론 귀신도 벌벌 떨면서 쫓겨났다. 


뿐 아니라 바다도 바람도 복종하였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사하는 권능”(마 9:6)을 가지셨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시다.

크리스천인 당신은 어떤 예수님을 믿는가?


구약의 첫 질문은 죄를 짓고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아담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라는 말씀이고, 신약의 첫 질문은 그와 반대로 인간이 하나님과 구원을 찾아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라는 말씀이다.


이 두 질문이 구약과 신약의 성격이 어떻게 다른가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구약에서는 인간이 죄를 짓고 하나님을 멀리 떠났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꾸 찾아오시며 돌아오라고 하신다. 구약의 마지막 말씀도 ‘돌이켜라’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인간은 돌아오지 않았다.


신약은 새 세계가 열렸음을 보여준다. 인간의 중보자요 구원자이신 메시야를 보내시매 마침내 그 메시야가 오신 것을 아는 사람들이 생겼고, 그들이 산 넘고 물 건너 멀고 먼 길을 사양치 않고 찾고 또 찾아와 메시야를 만난다.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요 1:41; 4:29)! 이 얼마나 복된 외침인가! 기독교 2000년 역사상 수없이 많은 사람이 이렇게 외쳤고 구원의 큰 감격 속에서 세상을 넉넉히 이기며 살았다.

동방박사들은 동방에서 하늘의 별을 보고 메시야의 나심을 알았다. 하나님은 별에도, 자연 만물에도 다 기록해 놓으셨다. 인간들이 어리석고 무지해서 깨닫지 못하고 읽어내지 못할 뿐이다. 


세상에 ‘우연(偶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곳에서나, 그 무엇에서나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볼 수 있어야 하고,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렇게 눈이 열린 사람, 귀가 열린 사람, 마음에 깨달음이 있는 사람들을 통해 일하신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이 다 완전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도 엉뚱한 실수를 저질렀다. 동방박사들은 예루살렘에 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았다. 계시를 따라서 잘 찾아왔던 박사들의 이 잘못으로 인해 온 예루살렘이 소동하였고, 베들레헴의 두 살 아래 사내아이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는 큰 불행이 발생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건만 제자들은 엉뚱하게도 무덤에 가서 죽은 이를 찾았다. 그래서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여자들에게 이르기를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눅 24:4~5)라고 하였다. 주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의 헛발질이 여기에 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시다. 하나님의 선민의 왕이시라는 뜻이다. 그러나 동시에 선민에게 배척을 받으신 왕이시라는 상반된 의미를 가진다. 이것이 아이러니요, 역설(paradox, 逆說)이다.

누가 참 유대인인가? 


바울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며, 또한 이런 사람들을 장차 왕으로 세우실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들을 ‘왕 같은 제사장들’(벧전 2:9)이라고 했다.


유대인의 왕을 마음에 모시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진다. 강 같은 평화가 흐르고 샘솟는 기쁨과 성령의 능력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할 뿐 아니라 말씀에 대한 깊은 깨달음과 희열이 넘친다. 천국이 임하여 이 땅에서도 천국을 누리며 살게 된다.


요즘의 세계 학자들의 일부가 에덴동산은 백두산(창 2:8)이라고 하는 글을 읽었다. 사람들이 동방박사가 한국 신라 시대의 별을 연구하던 사람들이라고도 한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동쪽 끝은 한국이다. 동방에서 박사님들이 왔다면 한국밖에 더 있을까 싶다. 한국의 우리 옛 조상은 하나님을 잘 섬겼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그 표적이 고인돌로 많이 나타나 있다.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깨워서 공의로 그를 불러 자기 발 앞에 넘겨주며 이르게 하였느냐”(사 41:2)? “내 이름을 부르는 자를 해 돋는 곳에서 오게 하였나니...” (사 41:25). “내가 동쪽에서 사나운 날짐승(독수리)을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뜻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반드시 이룰 것이요 계획하였은즉 반드시 시행하리라”(사 46:11). 동방박사를, 한국을 마지막 때에 추수꾼 사명으로 부르시는 것은 아닐까 마음이 뜨거워진다.

우리 가정에서, 아니 동방인 한국에서 아기께 귀한 보배를 바치고 엎드려 경배하는 귀한 동방박사들이 나오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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