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명기학원] 머무르는 봄을 지나 봄을 기다리며
지난주 일요일은 12월21일로 동지였다. 한국의 절기로 치면 겨울은 입동인 11월7일 경에 시작되고 봄이 시작되는 입춘인 2월3일경까지 계속된다. 겨울은 일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인 동지를 기점으로 점점 날이 길어지기 시작하니 추운 겨울 속에 있지만, 이제 곧 봄이 오리라는 부푼 기대를 갖고 모든 일에 임하면 좋을 시기이다.
우리말에서 ‘겨울’의 이름은 “머무르다”를 뜻하는 옛말 ‘겻다’에서 변형된 것이라 한다. 겨울에는 추우니 집에 머물라는 뜻이라 한다. 영어로 이 계절을 부르는 이름이 ‘winter’인데, 이것의 어원 역시 재미 있다. 겨울은 눈으로--물론 시애틀에서는 비로--아주 물기가 많은 계절이다.
그래서 ‘winter’라는 말은 겨울의 특징인 ‘wet’과 ‘water ‘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라고 한다.
크리스천에게 뿐만 아니라 많은 지구인들에게 겨울 하면 떠 오르는 또 다른 행사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크리스마스가 있다는 점이다. 이 종교를 믿던 아니던, 집을 떠났던 많은 자녀들이 돌아와 가족과 함께 재회하며 사랑을 나누는 명절이다.
이 명절에 이런 저런 이유로 비행기나 차 등을 이용해 여행을 하는 이들의 숫자가 올 해 무려1억 2천 2백만명이나 된다고 할 정도로 사람과 사랑이 넘치는 또는 넘치기를 기원한다.
필자의 가정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집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며 올 해 가을 결혼한 딸 아이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사위와 함께 시애틀의 고향 집을 방문했다.
몇 해 전 시애틀로 돌아왔지만 따로 생활하는 아들 녀석까지 모든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와 풀 하우스를 이루었다. 어느 가정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집 떠났던 자녀들이 귀향해 함께 있을 동안 ‘뭘 좀 잘 먹여야 하나’가 큰 걱정/재미 거리 중의 하나이다.
다 큰 아이들이니 타지에서도 나름대로 자신의 일에서 한 몫을 하고, 자립하여 살다 보니 영양가 있는 식단을 잘 챙겨 먹으며 지내고 있을 터이지만, 부모 특히 엄마의 마음은 항상 다 큰 자식들에게 뭔가 해 먹이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예상대로, 아내는 며칠 동안의 식사 메뉴 선정에 고민을 하더니 온, 오프라인에서 장도 보고 주문을 하느라 바쁘다.
당연히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뭐 그리 준비를 하고 그래 바쁜 사람이. 작년에도 잔뜩 준비했다가 아이들이 이태리 음식을 만드는 바람에 나중에 우리 배만 불렸잖아”하며 마음에도 없는 핀잔을 준다. 이번엔 아내도 지난해의 경험을 기억해 아이들에게 미리 물어 보고 거기에 맞춰 준비를 한다고 친절히 대답을 해 준다.
직장일로 바쁘게 고민하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흥겹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기대와 기쁨으로 가득차게 변신한 아내를 보며 한국에 계신 어머님들이 어릴 적 우리들에게 하신 같은 모습을 떠올리며 잠시 눈시울이 뜨겁다. 여기에서 더 나가면, 이모 저모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와 사랑으로 크리스찬들의 마음은 수은주가 격상되지 않겠는가?
아내가 준비한 식재료들을 가지고, 작년처럼 올 해의 성탄절 저녁 식사도 아이들이 팔소매를 걷어 부치고 나선다. 넉살 좋은 아들 녀석, 서툰 한국말로 “아이구, 어머니, 오늘은 누나가 비지 찌개를 준비한답니다”라며 추임새를 준다. 한식 요리에 곁들여 오랫만에 한 잔하는 레드 와인인 메를로도 한 병 준비했단다.
별로 쓸일이 없어서인지, 작년에 쓰고 어디로인가 없어져 버린 와인 병 오프너를 찾아 헤매는 아빠를 보다가 아들 녀석이 작년처럼 “아빠 혹시 스위스 나이프 어디에 두셨는지 아세요” 묻는다. 이제서야 작년에도 스위스 나이프에 달린 병마개 따개를 사용한 것이 생각난다. 이런 저런 우여 곡절 끝에 함께 하는 저녁 식사 자리는 오랜만에 풍성하다.
평소엔 허전하게 비어 있었지만, 오늘은 사람들로 꽉찬 다이닝 룸이 제 구실을 해 뿌듯하다며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마다하지 않고 오히려 따뜻한 전구의 빛에서 나오는 온기로 방 전체를 채워 주는 듯하다. 음식은 물론이지만, 더욱 맛깔나는 것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잘 양념이 된 가족간 대화이다.
한자리에 모여 나누는 지난 한 해의 고생담과 무용담들로 가득찬 대화들이 눈치 봄이 없이 오간다. 고생한 대목에서는 “어휴, 오~슈웃”으로 공감하고, 자랑할 만한 일들의 구비에서는 “와아, 굿잡”으로 추임새를 주며 모두의 마음을 위로와 칭찬으로 풍요롭게 채워 준다.
이제 곧 새 해가 다가 온다. 이 글을 읽으시고 며칠 후에는 병오년 붉은 말의 해가 밝으리라. 올 해는 독자 여러분의 가정과 사업에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한다. 가능한한 가족과의 대화 시간을 늘리고, 지금까지 아무 생각없이 받아 들이고 사용하던 관습을 다시 한 번 뒤돌아 보는 것은 어떨까?
대화를 통해 생각을 정리함과 동시에 가족과 남을 배려하며 나아 가는 새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자녀가 대학을 정할 때, 무조건 랭킹과 세평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에게 가장 적당한 대학과 전공이 무엇인지 서로간의 대화를 통해 꼼꼼히 나눠 보는 것도 이런 노력 중에 하나가 될 것이다. 우리가 추운 겨울 속에 있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따뜻한 봄을 기대하며 서로 사랑하면 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