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칼럼] 베이비시터(Babysitter) 소동(騷動)

전문가 칼럼

[이성수칼럼] 베이비시터(Babysitter) 소동(騷動)

베이비시터란 부모를 대신하여 6세 미만인 영유아(纓幼兒) 및 아동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돌보는 사람을 말한다. 한국말로 보모(保姆), 아이돌보미라고 부른다. 아내는 아는 권사님의 소개로 아기를 돌봐 주게 되었다. 하루 전에 아기 엄마가 아이를 안고 상견례(相見禮)를 하러 왔다. 


생후 6개월이 조금 지난 남자아이였다. 누워서 아직 엎치거나 기지도 못하고 손과 발을 힘차게 후드득 후드득 사뭇 흔들어 댔다. 그리고 얼굴이 아주 예뻐서 나는 첫눈에 반했다. 얼굴 모양이 둥글면서 미남형으로 이마가 반듯하게 튀어나오고 뒤통수가 살아 있어 수재형인데다가 웃을 때면 뺨에 보조개가 패여 있어 더욱 귀여웠다. 


엄마는 딸을 낳고 9년 만에 아들을 낳았다며 기도를 많이 해서 하나님의 은혜라고 기뻐했다. 그러니 얼마나 그 아들이 귀여울까? 한 시간 넘게 놀다 갔는데 의외로 아기는 초면인데도 낯을 가리지 않고 아내를 제 엄마 저리 가라 하고 잘 따랐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아기 엄마는 분유, 물, 장난감, 기저귀 등 한 보따리를 싸 가지고 아기를 안고 왔다. 


아기를 아내에게 맡기고 엄마가 빠이! 빠이! 하고 가는데 웃으며 좋아한다. 다른 아이는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우는데 이 아이는 좋아하니 아기 엄마는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아기는 실컷 놀다가 졸리면 두 눈을 비비고 짜증을 낸다. 그러면 이것이 자고 싶다는 신호로 알고 아기를 업지 않고 뉘어서 토닥거려 주면 금방 잠이 든다. 


두 눈은 진한 겉눈썹의 길이만큼 길게 한 일자로 가볍게 감고 자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평화스러운지 모른다. 앙증맞은 작은 입과 코는 또 얼마나 예쁜가? 하나님의 걸작품이 바로 이 아기의 자는 모습이 아닐까? 오래전의 일이다. 미국으로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내는 15개월쯤 되는 여자아이를 봐 주게 되었다. 


하루는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에서 막 시작하는 무빙 세일(moving sale) 구경을 갔었는데 여러 사람들이 이사 간다고 내놓은 물건을 고르고 있었고 우리도 살 물건이 있는가 기웃거리고 있는데 유모차를 타고 신나서 기분이 좋아하던 아기가 몸을 구부리고 숨은 자세로 있어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자세히 보니 소리를 죽여 가며 속으로 서럽게 흐느끼고 있었다.

“아니 얘! 너 왜 그렇게 울고 있니?”


이상해서 아내가 물었다. 그 아기의 눈은 울어서 퉁퉁 부어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애 앞에 50대의 인상이 험상궂게 생긴 흑인 여인이 서 있지 않는가. 그녀의 용모는 우리 어른이 봐도 혐오스럽고 무섭게 생겼다. 이 티(E.T)처럼 생긴 얼굴에 우동 가닥보다 더 굵은 주름이 이마에 내천(川)자로 선명하게 파져 있고 유난히 두 눈이 튀어나와 사납게 보이며, 코가 매부리같이 휘고 커다란 입에 입술은 밑으로 쳐져 있어 보통의 추녀(醜女)가 아니었다. 


어른이 보기에도 인상이 저렇게 험상궂고 섬뜩한데 천진난만한 아기에게는 얼마나 무섭게 보였으면 숨어서 그토록 서럽게 울고 있었을까? 아내는 무빙 세일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혼비백산하여 얼른 애를 데리고 집으로 오면서 달래었다. 오늘 아침 운동을 하고 막 들어오니까 아내가 얼굴이 사색(死色)이 되어 있고 애는 울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잠시 후 엄마가 아기를 안고 와서 바빠서 기저귀도 못 갈고 우유도 못 먹였다고 했다. 


부지런히 기저귀를 갈고 우유를 먹이려고 누워 있는 아기를 안고 우유병을 입에 대려고 하는 순간 아기 팔에서 뚝! 소리가 나면서 동시에 아기가 자지러지게 울더란 것이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아기를 고쳐 안고 우유병을 입에 대어도 빨지 않고 계속 울더란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힘 있고 발랄하게 움직이던 오른쪽 팔은 힘없이 밑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아기 팔을 만져 보았다. 손을 대니 아기는 더 심하게 울었다. 걱정이 되어 아내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팔의 관절이 접질려 탈골(脫骨)이 된 것 같았다.

그 증거로 팔에서 뚝! 하는 소리가 난 것이다. 아기가 팔 다리를 후드득 끊임없이 흔드는데 젖을 먹이려고 안을 때 아기의 힘껏 움직이는 팔이 아내의 딱딱한 팔꿈치에 충돌하면서 접질려 뚝 소리와 동시에 관절이 어긋난 게 틀림없었다.


고통스러운지 아기는 계속 울고 보챘다. 겁에 질린 아내는 지체하지 않고 아기 엄마에게 전화로 이 사실을 알리었다. 엄마는 멀리에서 일하기 때문에 대신 가까이에서 일하는 아빠가 달려왔다. 아내는 그 경위를 소상하게 말해 주었다. 아기 아빠도 나의 생각과 같이 탈골된 것 같다고 말하며 병원에 가면 간단히 교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는 우는 아기를 안고 총총걸음으로 떠나갈 때 아내도 따라 간다고 말했다. 아빠는 전화로 연락한다고 말하고 오지 말라고 했다. 아기가 떠난 방은 텅 비어 있었다. 평상시 같으면 방 가득히 벌렁 누워서 팔 다리를 내두르며 운동하고, 가까이 가서 얼러 주면 방끗 웃고 예쁜 짓을 하던 아기가 고만 어른의 불찰로 팔이 축 늘어져 울고 나가는 모습이 가슴 아프다며 아내는 병원에서 소식 오기만 학수고대(鶴首苦待)하고 있었다.

드디어 소식이 왔다.


“의사가 팔을 만져 금방 뼈를 맞췄어요. 그러니까 울던 아기가 울음을 그치대요. 저도 신기했어요. 진료비도 안 받고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네! 할머니!”

낭랑한 젊은 아빠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나에게까지 어렴풋이 가늘게 들려 왔다. 엄마가 아기를 안고 왔다.


“병원에서 금방 고치고 아기가 건재(健在)한 것을 할머니에게 빨리 보여 드리려고 이렇게 왔어요.”

아내는 반가워서 눈물을 글썽거리며 아기를 안았다. 아기는 좋아서 웃으며 아내의 품으로 후다닥 안겼다. 나는 아침에 그렇게 아파하던 팔을 만져 보았다. 탈골되었던 팔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아주 멀쩡하여 전처럼 힘차게 흔들어 대며 놀고 있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점심때가 훨씬 지났지만 아내는 밥을 새로 지어 주었다. 내가 농사지은 배추로 담은 김치를 맛있게 먹는 젊은 엄마의 식성이 부러웠다. 갈 때 아내는 그 김치를 아빠하고 같이 먹으라고 몇 포기 싸 주었다. 이 모습은 마치 친정에 온 딸에게 싸 주는 것 같아 보기에 정겨웠다.


아기가 다쳐 안절부절못했을 젊은 엄마, 마음이 아팠겠지만 내색 하나 없이 병원으로 달려간 아기 아빠, 친손자 이상 걱정을 태산같이 했던 아내 그리고 옆에서 덩달아 조바심했던 나는 잠시 소동(騷動)을 일으켰지만 팔이 금방 나은 게 너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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