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교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 시애틀한인 교회칼럼

전문가 칼럼

[오아시스 교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 시애틀한인 교회칼럼

 40세의 혈기방장했던 모세가 애급인을 때려죽이고 40년을 광야에서 목축을 하면서 하염없이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에 80세의 모세를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애급에서 신음하는 내 백성을 가서 구원하라고 하셨다. 모세는 거듭 사양하였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결국에는 순종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고 하면 그분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을 합니까?”라고 물었다. “내 이름은 스스로 있는 자니라(창 3:14)(I AM THAT I AM).”라고 대답하셨다. 동물이나 사람들 모두에게는 이름이 있다. 이름으로 그 사람을 알게 되고 구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은 이름이 필요 없으신 분이시다.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을 밤새도록, 허벅지 관절이 고장이 나기까지 하다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고 야곱도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으나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으셨다(창 32:29). 야곱은 기도하다가 다리를 절게 되었고 그곳을 “내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라며 ‘브니엘’이라고 불렀다. 

  또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삿 13:17)라고 물었을 때에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하니라(My name is Wonderful).”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는 1인칭으로 “I AM”이라고 하셨지만 모세가 사람들에게 말할 때에는 3인칭으로 해서 ‘HE IS’라고 해야 할 것이다. 

 헬라어로는 “에고 에이미”인데 “(I), I am ∼”으로 “나는 있다”라는 뜻과, (2). “나는 ∼이다”의 두 가지로 번역된다.

  (1). 나는 있다. 

  가. 시간적으로 – 태초부터 영원까지 나는 있다.

  나. 공간적으로 – 어느 곳에나 나는 있다. 내가 어느 곳에 있든지 그곳에 하나님은 계시다. 우주선을 타고 가도, 물고기 뱃속에도 하나님은 그곳에 계시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

  다. 실재에 있어서 - 천국도 지옥도 심판도 하나님도 있다. 마귀는 하나님도 귀신도 천국도 지옥도 내세도 심판도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생에서 잘 먹고 마시고 쾌락을 누리며 잘 살다가 가면 그만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의롭게 살 필요가 없다.

  (2). 나는 ∼이다. - “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양의 문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참 포도나무다.”

이 땅에서의 나의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을 믿는 그대로의 하나님이시다. 당신은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있는가? 내 기도를 그대로 이루어주시는 분이신가? “아무리 하나님이시지만 안 될 거야.”라고 믿으면 그대로 안 될 것이다. “나는 평생 가난뱅이로 살 거야.”라고 믿으면 그 믿음대로 될 것이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잘 먹이고 입히고 세상에서 출세하기를 바라고 하나님을 믿고 길렀다면 그대로 될 것이고 세상을 위한 위대한 빛의 사람으로 비젼을 갖게 길렀다면 그 자녀는 세상의 빛을 발하는 꿈의 자녀가 될 것이다. 부모가 전통에 가득한 화살을 어디를 향해 과녁을 맞추며 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은 육신의 아버지를 보내주셔서 생명을 주시고 이 땅에 스승과 선지자를 통해서 사명의 사람이 되게 하신다. 나아가서 주님을 만나게 하시고 영생을 얻고 주님의 종으로 사역자가 되게 하신다. 

  진리와 참 빛과 생명은 사모하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시 49:20)라고 하셨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으나 음란과 욕망과 내 생각으로 진리를 알지 못하면 짐승만도 못한 자리에 떨어지게 되고 영원한 지옥에서 불행하게 살게 된다. 

  (3)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구약에 72번이나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가 나오는데 출애굽기에는 8번 나오고 48장까지 있는 에스겔서에는 58번이나 나온다. 어떤 때에, 왜 그렇게 강조하셨는가? 

여호와의 뜻을 강조하시고 의인은 상을 받고 악인은 행한 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강조하실 때에 그렇게 말씀하셨다. 신명기 28장에도 68절까지 있는데 14장까지는 의인이 받는 놀라운 복이 있고 15절부터 68절까지는 자식까지 잡아먹는다고 무서운 저주가 있고 레위기 26장에도 그런 비유로 복과 저주가 나오는데 저주를 받기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복 받기를 간절히 원하시는데 그런 사람들이 너무 드물다. 

  구약은 신약의 예수님이 오심을 예언하였고 신약에는 여호와가 안 나온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700년 전 이사야는 이렇게 주님이 오심을 예언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구원의 예수님은 임마누엘로 오셨고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요 17:6).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장으로 너무나 귀한 유언의 기도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6).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님이시고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의 피 흘리신 공로를 의지하여 그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응답하신다. 심판하시는 공의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외아들을 화목제물, 속죄제물로 삼으셔서, 그를 영접하고 믿는 자들이 드리는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 우리에게 천국을 주려고 오신 그 고귀한 이름! 임마누엘의 예수님을 힘입어 우리는 이 땅에서 천국 생활을 잘 훈련하고 천국을 살다가 저 햇빛보다 더 밝은 영원한 천국에 다 같이 꼭 들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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