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목 회계칼럼] 674. 과잉생산과 사치 4 - 시애틀한인 회계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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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목 회계칼럼] 674. 과잉생산과 사치 4 - 시애틀한인 회계사칼럼

<지난 호에 이어>

마르크스는 과잉생산을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결정적인 문제로 보았다. 만일 과잉생산의 문제가 없었다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비판 및 공산 체제 구상을 일찌감치 포기할 수도 있었다. 그 과잉생산 문제의 심각성을 최초로 노출시킨 사건은 마르크스(1818-1883)가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기계파괴운동(1811-1816)이었다. 우리에게 알려진 가장 거대한 과잉생산 문제는 1929년부터 시작된 대공황에서 관찰되었다. 

대공황의 원인이 무엇이냐에 대해 칼럼 424호(대공황과 케인즈), 427호(대공황과 오스트리아 학파), 428호(대공황과 갈브레이드), 429호(대공황과 슘페터), 430호(대공황과 공산주의) 등 다섯 개의 칼럼에서 여러 이론을 검토했으나, “과잉생산”이라는 원인을 찾아낸 것은 공산주의 경제학자들 뿐이었다. 다른 학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과잉생산”이라는 원인을 피하려고 젖먹던 힘을 다했다. 과잉생산이라고 하면 마르크스에게 덜미를 잡히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 짐작된다. 

칼럼 670호(과잉생산과 마르크스)에서 인용된 공산당선언에서, 마르크스는 과잉생산을 두고 “과거의 시대에 일어났더라면 말도 되지 않는 일로 보일 법한, 과잉생산이라는 이름의 전염병”이라 표현했다. 경제학을 모르는 30세의 마르크스가 지적해낸 이 본질적 문제에, 당시의 모든 경제학자들은 물론 후세의 경제학자들도 정확한 답을 쓰지 못했다. 마르크스의 답은 공산주의였으나, 그것도 옳은 답이 아니다. 

학문은 틀을 만들고, 그 틀은 가끔 학자들과 진실 사이에 벽을 쌓는다. 마르크스가 30세에 과잉생산의 문제를 정확히 잡은 것은 어쩌면 경제학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또 마르크스 나름의 틀, 즉 사회학자로서의 틀을 이미 가지고 있었고, 그 틀은 마르크스와 진실 사이에 벽을 쌓아두고 있었다. 그 벽은 사치에 관한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사치는 그 자체가 나쁜 것이다” 하는 관념의 벽 속에 갇혀 있었다. 

아담 스미스(1723-1790)보다 조금 앞선 경제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은 사치의 빛과 그림자에 대해 Of Refinement in the Arts (여러 예술의 고급스러움에 관하여)라는 에세이를 남겼다. 그 에세이를 담은 책(Essays, Moral, Political, and Literary)은 1758년에 출간되었다. 그 속에서 흄이 한 말은 다음과 같다.

인용문 1. To imagine that the gratifying of any sense, or the indulging of any delicacy in meat, drink, or apparel, is of itself a vice, can never enter into a head that is not disordered by the frenzies of enthusiasm. 감각적 욕구충족, 즉 육류나 음료나 의복의 고급스러움에 탐닉하는 것을 두고 그 자체를 죄악이라 하는 상상은, 열정의 광란에 의하여 고장난 두뇌에만 들어갈 수 있다.

저 문장 속의 delicacy라는 말은 저 에세이 제목의 refinement(고급스러움)와 같은 뜻이다. 흄은 사치의 긍정적 가치를 이야기했지만, 그것을 실업문제와 연결시킨 것은 아니다. 앞 문단의 서적이 출간된 때는 제1차 산업혁명(1760-1840) 이전이라, 그 때에는 아직 실업의 개념도 없었다. 사치를 통하여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실마리는 오히려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발견되며, 그것은 칼럼 672호(과잉생산과 가치 2)에 다음과 같이 인용되어 있다. 

인용문 2. (영어 원문은 생략) 위기가 올 때마다 즉시 사치품 소비가 감소된다. 이는 사치품에 투입된 가변자본이 현금자본으로 회귀하는 과정을 지체시키고, 사치품 생산에 종사하던 노동자 중 상당수를 실직하게 만들고, 실직된 노동자들의 소득 감소는 생필품의 판매를 정체, 감소시킨다.

칼럼 672호에서 시사했듯이, 저기서 한 걸음만 더 들어가면 “남는 생산력을 사치의 생산에 사용하면 과잉생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사치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 때문에 마르크스는 저러한 관찰에서 아무 것도 건져내지 못했다. 자본론에 흄의 이름이 수십번 등장하는 것을 보면 마르크스가 흄의 에세이를 읽었을 것으로 짐작되나, 마르크스의 눈에 사치의 밝은 면이 들어간 흔적은 아무 데도 보이지 않는다. 

증오는 과학이 아니다. 증오에 열정이 보태지면 위 인용문 1에서 흄이 말한 광란이 된다. 마르크스는 단지 사치만 증오한 것이 아니며, 여러 가지 증오심의 하나하나가 마르크스의 과학을 방해하고 있었다. 다음 주에는, 사치에의 증오 때문에 마르크스는 시작하지 못한 (앞 문단에 이어지는, 상당히 과학적인) 이야기를 좀더 해보기로 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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