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원 기드온칼럼]「통일은 이미 시작된 과정이다」 ④ 통일은 생명을 살리는 일에서 시작된다

전문가 칼럼

[박상원 기드온칼럼]「통일은 이미 시작된 과정이다」 ④ 통일은 생명을 살리는 일에서 시작된다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방관하지 말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시지 못하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잠 24:11~12)


세상의 지혜자들은 종종 통일을 거대한 국가적 프로젝트나 대단한 정치적 역학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역사적 대사건으로만 규정하려 합니다. 그러나 지난 19년이라는 세월 동안, 생과 사의 경계가 무너진 거친 북한 선교의 최전선에서 온몸을 던지며 제가 온 영혼으로 배운 통일의 위대한 서막은 세상의 거창한 논리와는 너무도 다르게, 훨씬 더 작고 눈물겹도록 단순한 곳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당장 죽어가는 ‘한 사람의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살려 내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2007년, 처음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을 받아 북한 선교의 거친 바다로 첫발을 내딛던 당시, 저 역시 인간적인 열정으로 수많은 거창한 중장기 선교 전략과 가능성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검토했습니다. 북녘 땅에 거대한 현대식 병원을 건립하고, 선진 농업 기술로 무장한 대규모 농장을 조성하며, 굶주린 이들을 먹일 번듯한 빵 공장을 세우는 매력적인 마스터플랜들이 쉴 새 없이 논의되었습니다.

그러나 선교의 거친 현장 깊숙이 들어가 주민들의 마른 뼈 같은 삶을 직접 대면하면 할수록, 내 영혼의 중심을 사정없이 뒤흔드는 근원적이고도 뼈아픈 질문 하나가 송곳처럼 돋아났습니다. “우리가 보내는 이 수많은 자원과 선한 물질들이, 과연 저 삼팔선 너머 정말로 굶주려 죽어가는 가장 낮고 소외된 이들에게 단 한 조각이라도 온전히 전달되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인간적인 선한 의도와 화려한 마스터플랜만으로는 사단의 견고한 진을 뚫고 생명을 살리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냉혹한 현실을 목도했습니다. 그 뼈아픈 영적 각성 속에서 저는 세상의 화려한 성과주의를 십자가 앞에 과감히 배설물처럼 내려놓고, 오직 사역의 본질적인 방향을 완전히 수정하기로 결단했습니다.


사람들에게 과시하기 좋은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성과나 대규모 프로젝트를 내려놓고, 오직 주님이 바라보시는 저 국경 지대의 굶주려 죽어가는 단 한 명의 어린 생명, 실제적인 ‘한 영혼을 살려 내는 일’에 우리의 모든 눈물과 사역을 집중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 거룩한 결단 이후, 세상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저 깊은 국경 지역의 소외된 북한 어린이들을 향한 영양 지원 사역의 기적의 문이 열렸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국경의 강을 넘어, 매달 수천 개의 눈물로 구워 낸 사랑의 영양 빵이 어린 생명들의 마른 손에 쥐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달에는 3천 개, 또 어떤 달에는 하나님의 기적 같은 도우심으로 5천 개가 넘는 생명의 만나가 삼엄한 감시를 뚫고 전달되는 눈물겨운 역사가 이어졌습니다.


자본주의의 풍요에 길들여진 누군가는 매달 전달되는 빵 몇천 개의 숫자를 보며 지극히 작고 사소한 일이라며 지나칠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당장 먹을 것이 없어 배를 움켜쥔 채 서서히 생명의 불꽃이 꺼져 가는 국경 지대의 어린아이에게, 차가운 강을 넘어 날아온 빵 한 조각은 세상의 그 어떤 거창한 정치적 선동이나 이념보다 훨씬 더 절실하고 생생한 ‘하나님의 살아 계신 희망’ 그 자체입니다.

민족의 위대한 통일은 바로 이 작고 눈물겨운 빵 한 조각을 건네는 사랑의 자리에서 이미 소리 없이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더불어 사역의 깊은 심연 속에서, 저는 목숨을 걸고 차가운 지하 토굴과 벽장 속에서 신앙의 순결을 지켜 내는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의 경외스러운 영적 실체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바깥세상의 어리석은 자들은 저 북녘 땅이 완전히 하나님이 떠나버린 복음의 황무지이자 닫힌 땅이라고 단정 지으며 포기할 때, 놀랍게도 그 잔혹한 감시의 눈길을 피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직 만군의 여호와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짖는 거룩한 그루터기들이 살아서 호흡하고 있었습니다.


발각되면 즉시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거나 공개 처형을 당하는 서슬 퍼런 칼날 앞에서도, 손때 묻은 성경 조각을 품에 안고 목숨을 걸고 예배하는 진짜 성도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피 묻은 신앙의 간증을 들으며, 저는 부끄러움에 휩싸여 주님 앞에 다시 한번 고꾸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한 선교는 우리가 가진 풍요로 북한을 시혜적으로 변화시키는 우월한 사역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순교적 신앙 앞에 안일함에 빠진 우리 자신의 영적 나태함을 깨부수고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거룩한 채찍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저 차가운 지하교회 성도들의 핏빛 고백은, 온갖 세상 풍파에 흔들리던 우리를 향해 “진짜 예수를 믿는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온몸으로 증명하며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통일의 여정 역시 이와 똑 닮아 있습니다. 통일은 차가운 제도와 군사력으로 체제를 거대하게 통합하기 전에, 파괴된 인간성을 복원하고 잃어버린 영혼들을 살려 내는 거룩한 ‘인간 회복의 드라마’입니다. 저 굶주림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내 동포를 내 몸처럼 기억하는 일, 정치적 정세가 바뀐다 해도 고통받는 형제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잊지 않는 일, 그리고 자유를 박탈당한 채 영적 기갈에 허덕이는 그들을 위해 매일 밤 눈물로 기도의 향연을 올려드리는 일.


세상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이 작고 가녀린 순종의 실천들이 겹겹이 쌓이고 모여, 마침내 저 단단한 장벽을 무너뜨릴 거룩한 통일의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인류의 위대한 구속사의 역사는 언제나 인간의 눈에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은 순종 한 걸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역사의 주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마음을 품고 이름 없이 생명을 살려 내는 신실한 종들의 작은 손길들을 통해 복음 통일의 위대한 새벽을 신실하게 예비하고 계십니다.

0 Comments
제목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