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칼럼] 자원봉사(1)
약 한 달 전쯤에 서울에 사는 제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름이 아니라 여름방학 동안 대학에 다니는 딸을 관으로 보낼 테니 병원 이나 양로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도록 주선해 달리는 내용이었다. 자원봉사는 글자 그대로 무료로 자기의 돈을 들여서 봉사하는 건데 요즘 젊은이들이 그런 일을 하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대답하기를 "이제 나이 스무 살이 넘고 대학교(3학년)도 다니고 어려운 것 없이 공부하고 있으므로 어려운 사람들이나 지체 장애인을 도와야 한다"고 설명했더니 딸이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전화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비싼 비행기값을 치르면서 설마 이곳에까지 오겠는가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7월 16일 새벽에 두 여학생이 관에 왔다. 홀가분한 옷차림으로 얼굴에 가득 웃음을 담고 왔다. 아주 예쁘고 발랄한 두 여대생이 졸지에 우리 집으로 들이닥친 셈이다. 2층에 방을 하나 내주고 광 메모리얼 병원과 양로원(St. Dominic Senior Care Home)에 자원봉사 지원을 했다. 내가 미리 자원봉사 담당자들과 이야기를 해놓았기에 바로 다음 날부터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메모리얼 병원은 절차가 복잡해서 그만두고 바리가다 산 위에 있는 양로원에 가서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봉사하기로 했다. 영문과에 재학 중이라서 수녀들이나 노인들과 의사 전달하고 말을 하는 데는 별로 문제가 없었다. 아무리 자원봉사를 한다 해도 점심은 주는 것으로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오후 1시까지만 일하고 집에 와서 점심을 먹는다.
자동차를 한 달간 렌트했는데 자원봉사 한다고 특별히 싸게 해 준 것이 600달러이다. 비행기(항공료)값과 자동차 렌트비 등을 합쳐서 1인당 1,000달러를 쓰는 셈이다. 부모를 잘 만났다 해도 그런 거금을 들여 괌에까지 자원봉사를 하러 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고 사치와 허영심에 젖어 있다고 언론에서 떠들어댄다. 사실 서울 강남 쪽에 가 보면 20대 초반(?)의 젊은 학생들은 사치가 극에 달한다.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약 10% 정도가 그렇다 해도 다 그렇다고 떠들어댄다. 옷이나 가방을 아주 비싼 브랜드로 입고, 들고 다닌다. 그것이 가짜인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상표를 보면 비싼 제품이다.
사실 젊은 남자들도 멋을 부리는 것은 여자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남자들 중 90% 이상이 모두 신사복 정장 차림이다. 날씨가 더 운데도 재킷까지 입고 다닌다. 어쩌다 서울에 나가면 신사복에 넥타이를 매일 차려 입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남들이 다 그렇게 하고 다니는데 나만 평상복 차림으로 다닐 수는 없다. 아무리 차려입어도 서울에 사는 사람들만 못하고 어딘가 촌스러워 보인다.
어쨌든 서울은 대단한 곳이다. 아니 우리 한국인들이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점심을 사 먹고, 좋은 옷을 입고, 자 가용을 타고 저녁까지 밖에서 먹는 경우가 많은데 무슨 돈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나는 점심을 거의 집에서 가지고 온다. 저녁은 집에서 먹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곳에서도 점심, 저녁을 사 먹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골프 치러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게 하다가는 주머니가 당장 바닥난다. 돈을 아무리 잘 번다고 해도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다. 그렇다고 돈을 써야 할 경우에도 구두쇠 노릇을 하는 건 아니다. 쓸 때는 반드시 쓴다. 돈은 쓰기 위해 번다는 말도 있기는 하다.
우리 집에 와 있는 두 학생은 참으로 검소하고 모범적이다. 20대 초반으로 한창 모양을 내고 멋을 부릴 나이인데 그렇지 않다. 옷도 캐주얼로 깨끗이 입고 별로 모양을 내지도 않는다. 예의가 바르고 밖으로 나돌아 다니지도 않는다. 하기야 한국에서 큰맘 먹고 자원봉사를 하러 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가정교육도 잘 받았다.
돈을 단 1달러도 아껴 쓰고 집안에 있으면서도 전기나 물을 아껴 쓴다. 낮에 더운데도 방에서 에어컨을 거의 켜지 않고 창문을 열어 놓고 있다.
성격이 명랑해서 집안 분위기도 환하다. 큰 집에 둘이서만 사 니 절간처럼 조용했는데 조잘대는 여학생 둘이 있으니까 집안이 항상 웃음바다가 되고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요즘은 사람 사는 집 같다 두 여학생은 양로원에서 노인들을 하루에 4시간씩 돌보아 주 고 있다.
노래도 같이 하고 밥도 먹여 주고 운동도 같이 하면서 지낸다.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 보면 아주 재미있다고 한다. 보람있 는 일을 하는 것이 오히려 기쁘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양로원과 고아원에 다니면서 자원봉사를 했단다. 미국 노인들을 돌봐 주면 서 영어 실습도 하고 미국의 문화와 사람 사는 모습들을 직접체험으도 습득하는 것이 큰 유익이 된다면서 이곳까지 온 것이다.
딸자식을 반듯하게 양육시킨 부모들도 칭찬할 만하다. 큰 부자들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중상급은 되는 가정인데 아이들이 공부 도 잘하고 행실도 그만하면 모범생이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떠들어대는 젊은이들의 생활방식과는 딴판이다. 이런 학생들을 보면 한국의 앞날이 밝기만 하다. 그리고 세상이 살 만하다고 느껴진다.
양로원의 수녀들도 이들을 좋아한다. 점심을 매일 손수 만들어서 주기도 한다. 바나나, 우유 등도 많이 준다면서 집으로 가지고 온다. 노인들은 서로 시샘을 하여 같이 이야기하자고 야단들이다. 자기네들끼리 씨움을 하면서까지 이 학생들을 차지하려고 한다. 이들을 소개해 준 나도 기분이 좋고 보람을 느낀다. <다음 호에 이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