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 문학칼럼] 충청도 사투리 연구 - 시애틀한인 문학칼럼

전문가 칼럼

[이성수 문학칼럼] 충청도 사투리 연구 - 시애틀한인 문학칼럼

이성수(수필가·서북미문협회원)


나는 충청도 예산에서 태어나서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驅使)하며 살다가 30대에 서울로 상경하여 살았다. 하루는 가구점에 들러 의자 하나를 사는데 주인이 내 말을 듣더니 “혹시 고향이 충남 아녀유?” 묻는다. 몇 마디를 말했을 뿐인데 금방 알아채니 내가 충청도 사투리를 많이 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향 이야기를 하다가 알고 보니 그 분이 초등학교 은사이었다. 담임선생님은 아니었지만 20년도 더 되어 몰라보았다.

서울에서 살면서 충청도 사투리를 안 쓰려고 해도 어딘지 모르게 튀어나온다. 

충청도 말은 느릿느릿하고 말꼬리를 길게 뺀다. 하지만 듣기 편안하다. 그리고 서두르지 않고 단정한 편이다. 구수한 시골 아주머니의 넉넉한 인심처럼 아주 부드럽게 넘어가는 억양이 특이하다.

말의 맨 마지막에 슈~ 유~ 등을 붙이고 시간을 좀 끈다. 보기를 들어 보면 

“언제 장(場)에 가유~?” 

“어르신 진지 잡수셨슈~~?“  

말이 하도 느려서 좀 갑갑할 때가 있다. 

충청도에서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이 출석을 부르면 하나 같이 “야”라고 하지 “네“라고 하는 학생은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충청도 사투리에 관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밭일을 하러 나갔다가 산 위에서 큰 바윗덩어리 하나가 아버지를 향해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그걸 본 아들이 말했다.

“아부지! 저기 산 위에서 큰 바위가 굴러 떨어지고 있어유~ 빨리 피하슈~”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큰 바윗덩어리가 먼저 굴러 떨어져 아버지를 덮쳤다는 이야기이다. 간신히 화를 면한 아버지가 하는 말

“조금만 빨리 말하지~ 그랬어! 아들아!“

설마 이렇게 급한 상황에서 그렇게 하진 않았겠지만 그만큼 말이 느리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나온 말일 것이다.

나는 얼마 전에 모 방송국 개그 콘서트 ‘생활 사투리’란 프로를 재미있게 시청한 일이 있다. 개그맨은 충청도 말은 박력도 없고 느리다고 하는데 박력은 없지만 말이 꼭 그렇게 느리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표준말을 가지고 경상, 전라, 충청의 삼도 말 빠르기를 한번 비교해 보기로 하자며 조목조목 하나씩 예를 들어가면서 비교적 소상하게 따져 보았다.

“돌아가셨습니다”란 표준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운명했다 아닙니까”라고 말하고, 전라도 사투리로는 “죽어 버렸어라”인데 충청도 사투리는 “갔슈~”이다. 

정말 얼마나 간결하고 빠른가? 경상도 말의 글자 수가 8자인데 충청도 말은 겨우 2자 뿐이니 말이다. 

“실례합니다”의 표준말을 경상도는 “내 좀 보소”이고, 전라도는 “아따 잠깐만 보더라고”인데, 충청도는 “좀 봐 유”이다. 전라도 말의 글자 수가 9자인데 충청도는 겨우 3자뿐이다.

다음에 “빨리 오세요”의 표준말을 경상도는 “퍼뜩 오이소”, 전라도는 “허벌라게 와 버리랑께”의 9 글자인데 충청도는 4 글자 “빨리 와유”로 짧게 말하며,

표준말 “괜찮습니다”를 경상도 말로 “아니라에”, 전라도 말로는 “되써라”인데 충청도 말로는 “됬슈”이다. 

또 “정말 시원합니다”의 표준말을 가지고 경상도에서는 8자로 “억수로 시원 합니더.”, 전라도는 8자 “겁나게 시원해 버려” 인데 충청도는 5자로 “엄청 션 해유”이다.

데모할 때 “결사반대 한다”는 말로 경상도 사투리는 “문디 자슥 들! 우리 절대 몬한다”라 하고, 전라도는 “지랄하고 자빠졌네”인데 충청도는 “말짱 헛거여”라 한다. 카바레에 가서 여자에게 브루스 한 곡을 추자고 부탁할 때 표준말로 한 곡 “추시겠습니까?” (6자)를 경상도 말로 ‘출래에?’ (3자). 충청도 말로 ‘출튜?(2자)이다.

이래도 충청도 말이 느리다고 하면 다음과 같은 표준말을 가지고 절대로 느리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표준말 “이 콩깍지가 깐 콩깍지인가 안 깐 콩깍지인가?” 18 글자를 충청도 말로 “이 콩깍지 깐 겨 안 깐 겨?”의 9자로 압축할 수 있다.

충청도에서 여고를 졸업하고 서울의 여자대학교에 합격한 여학생이 있었다. 하루는 그 학생이 대학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식사 중에 마침 반찬과 국이 모자라 더 달라고 서브하는 학생에게

“여기유~? ‘건건이’ 하구 ‘멀국’ 점 쬐금 주시겠슈”라고 하였다.

서브하는 학생이 ‘건건이‘ ’멀국‘ ’쬐금‘이란 사투리를 알 도리가 없는 것은 당연하였다. 서브하는 학생은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다가 필경 사투리가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그 학생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다. 고향이 충청도라고 대답했다. 서브하는 학생이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충청도 아줌마에게 물었다. 아주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충청도 사투리로 반찬을 <건건이>, 국을 <멀국>, <쬐금>을 조금이라고 해유~”라고 하였다. 

충청도 사투리로 '기여'란 말이 있다.

“기여?” 하고 끝을 올리면 정말? 이런 뜻으로 묻는 말이 된다.

“기여~” 하고 끝을 내리면 응 그래 맞아 이런 뜻의 대답이 된다.

특히 충청남도 천안, 온양, 예산, 홍성, 광천, 장항 등 장항선 철도 연변을 중심으로 서산 대천 공주 대전 청양에 이르기 까지 아주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는 “개갈 안 난다”라는 말이 있다.

이 ‘개갈 안 난다’의 사투리의 뜻은 시원치 않다. 마음에 안 든다 이다.

지금 나도 한국의 식구들로부터 고향소식을 카톡 문자나 보이스톡으로 주고받을 때 어떤 일이 참 개갈 안 나게 끝났다며 웃을 때가 많다.

이 사투리는 충청도 이외에 사는 사람들에겐 좀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나 충청도 사람에게 널리 쓰이고 있다. 어쩌면 충청도 사투리의 대표 말이 아닐까?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매일 밤 술에 만취해서 오밤중에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며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아내가 하는 말.... “허구 헌 날 ‘개갈 안 나게’ 술만 퍼마시고....” 여기서 ‘개갈 안 나’의 뜻은 주책없이 내 마음에 안 들게란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다음에 초등학교 학생의 대화

“야! 너 숙제 다 혔니(했니)?”

“혀긴 뭘 혀. 무슨 늠(놈)의 숙제를 고록히(그렇게) '개갈 안 나게' 낸 다냐?”

여기서 '개갈 안 나게'란 농촌 학생에게 숙제분량이 ‘너무 많아.’ 내 맘에 들지 않는다의 불만 어린 부정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개갈 안 난다’의 사투리는 꼭 꼬집어 이런 뜻이라고 분명히 말하기엔 좀 애매모호한 말이다. 하지만 전라도 사투리 거시기처럼 뉘앙스가 다양하여 그 뜻이 상황과 형편과 장소에 따라 폭넓게 이심전심으로 서로 통하는 말이다. 

많이 쓰이고 있는 충청도 사투리를 모아 봤다. 일부이지만 공부가 되었으면 한다. 

벌거지(벌레) 오츠케(어떻게) 가세(가위) 반굉일(토요일 굉일은 일요일) 핵교(학교) 선상님(선생님) 가찹다(가깝다) 벽장(다락) 찌끄레기(찌꺼기) 원채(워낙) 가심(가슴이 아파요) 읍써(돈 없어) 탑시기(먼지) 비게(베게) 노상(맨날, 늘) 일세(일으켜) 냉기다(남기다) 니열(내일) 구녕(구멍) 난중에(나중에) 뼉따구(뼈) 뿐질르다(꺽다) 샴(샘) 쓰르메(오징어) 얼추(거의) 뱜(뱀) 허지마(하지마) 바카티(바깥에) 여태(아직) 오디(어디) 아수(아우) 무수(무우) 배차(배추) 손꼬락(손가락)     성님(형님) 달버(달라, 틀려) 헐하다(값이 싸다) 짐치(김치) 다슬기(고동)

나머지 사투리는 다음 기회에 공부하기로 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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