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목 회계칼럼] 675. 과잉생산과 사치 5 - 시애틀한인 회계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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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목 회계칼럼] 675. 과잉생산과 사치 5 - 시애틀한인 회계사칼럼

<지난 호에 이어>

마르크스는 사치품 생산의 축소가 실업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발견했으나, 사치품 생산의 증가가 일용품의 과잉생산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은 무시했다. 그것은 사치에의 맹목적이고 포괄적인 증오심 때문이었다. 

사치품의 진정한 역할을 보고자 하면, 발명에 관한 좀더 자세한 관찰이 필요하다. 칼럼 659호(생산자이득과 공산주의 1)에서 언급된 마르크스의 발명 이야기에서, 마르크스가 말하는 발명은 생산성을 높여주는 종류의 발명 뿐이었다. 그러나, 발명은 발명품의 용도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한 가지는 생산성 향상, 또 한 가지는 사치. 이 두 가지는 칼럼 468호(기업가들의 새 시장)에서 설명된 혁신의 두 가지 방향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그 칼럼에서 언급된 두 가지 방향과 이 문단의 두 가지를 대응시키면 다음과 같다.  

(사치) 여유 있는 사람들을 더욱 행복하게 해주는 방향. 

(생산성 향상) 생산성을 높여주는 방향. 

두 가지 발명 중 먼저 오는 것은 통상 첫째 것이다. 예를 들면, 헨리 포드가 T형 자동차를 출시한 1908년 시점에서는, 그것은 가격이 높아서 아무나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포드는 그것을 일용품으로 만들고 싶었고, 그러한 마음을 “포드 회사의 모든 종업원들이 포드 자동차를 타고 출퇴근하게 만들겠다”고 표현했다. 그 때부터 포드는 노임을 지속적으로 올리는 한편 T형 자동차의 가격을 지속적으로 내렸다. T형 자동차의 가격이 850불에서 350불까지 내려갈 때 포드 자동차 기능공의 주급은 1.5불에서 5불까지 올라갔다. 이런 계산에서는, 평균적인 포드 회사 기능공이 2년만 열심히 돈을 모으면 T형 자동차 한 대를 살 수 있었다. 그렇게 되었을 때, 한때 차치품이었던 T형 자동차는 일용품이 된 것이다. 

저러한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대략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규모의 증가에 따라 원가가 절감된 것. 둘째, 다른 형태의 자동차를 발명하지 않고 (무려 19년 동안이나) 오로지 T형의 생산에만 집중하여 개발비가 들어가지 않은 것. 세째, T형을 생산하는 시설을 개선해 나간 것. 

앞 문단의 세째 이유는 위에서 언급된 두 가지 발명의 두번째 방향의 발명이다. 여기에서, 사치품이 발명되면 기술경쟁과 규모경쟁이 일어나고, 사치품의 가격이 내려가서 일용품이 되는 모든 과정을 구경할 수 있다. 

포드 T형이 굴러다니기 5년차에 들어간 1912년, 그 T형의 가격이 580불까지 내려가 있던 그 해에, 여러 조그만 회사가 합해서 만들어진 GM이라는 새로운 회사는 고급품 시볼레(Chevrolet)를 내놓았다. 그 가격은 T 형 가격의 3배가 넘은 대당 2,150불이었다. 포드는 그것을 사치품이라 보았고, 사치를 싫어하는 포드는 그것이 자신의 시장을 잠식해 들어올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의 제품 T형도 처음에는 사치품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새롭게 나타난 시볼레도 언젠가는 일용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포드의 저러한 생각은 마르크스의 생각과도 많이 닮았다. 사진기가 처음으로 이 새상에 나타났을 때, 마르크스는 자신이 입고 있는 양복도 한 때는 사치품이었던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언젠가는 사진기도 일용품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포드의 짐작과는 달리 시볼레는 포드의 시장을 잠식해 들어갔다. 포드는 그것을 일시적이라 믿고, 1927년까지 T형만 생산했다. 뒤늦게 T 형을 단산하고 의 고급화된Model A를 내놓았으나, 곧 대공황이 찾아왔다. 1929년부터의 대공황 기간 동안, 근본적으로 사치를 싫어한 포드 자동차는 2차대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내내 적자에 시달렸다. 고급품을 주도한 GM은 대공황 시작 즈음 한 해만 적자를 보고 이후에는 해마다 흑자를 누렸다. 헨리 포드(1863-1947)는 근본적으로 사치를 증오했기 때문에 대공황이 와도 다양한 고급 모델을 네놓지 못했고, 살아남기 위해 사치성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아들(Edsel Ford, 1893-1943)과 계속 마찰을 일으켰다. 2차대전이 터지자, 군납을 통하여 포드는 되살아나게 되었다. 아버지 포드의 기세에 억눌려 살던 아들 포드는, 전쟁이 끝나기 전에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위암 및 합병증이었다.

포드의 이야기는 대공황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축도다. 그 진면목이란, 사치의 발명은 없고 생산성의 발명만 계속 이루어진 결과 과잉생산의 문제에 빠지고, 그것이 대량 실업으로 이어진 모습이다. 대공황이 오래 간 것은 포드형의 사고방식이 GM형의 사고방식보다 우세한 상태가 오래 갔다는 이야기가 된다. 

사치품은 발명되지 않고 능률형 발명만 지속되면, 저축은 많으나 소비는 충분하지 않고, 능률의 향상은 실업자만 양산한다. 이러한 모습을 단순하게 관찰하면, 공급은 넘쳐나고 수요는 부족하다. 이러한 구도에서, 소비자 쪽에서 사치품 소비를 증가시켜 사치품의 발명을 유도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일어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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