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칼럼] 김수영의 블루제이 이야기(2)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때로는 인연은 아무 말 없이 작은 생명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찾아온다. 그리고 어느 날 돌아보면 그 작은 생명이 내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 깊은 인연이 되어 있기도 한다.
쎄미와 나의 만남이 그랬다.
2014년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과 이별을 그렇게 크게 겪은 것은 처음이었다.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게 되니 삶은 초점을 잃었고, 마음 한가운데가 텅 비어 버린 것 같았다.
패밀리 닥터에게 아무래도 나는 우울증 증세가 있는 것 같다며 약을 처방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의사는 뜻밖의 말을 했다.
“약을 먹기 전에 강아지 한 마리를 키워 보면 어떻겠어요?”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 강아지는 절대 안 됩니다.”
당시 우리 가족은 나를 포함해 부모님과 형제자매 모두가 유난히 개나 고양이를 싫어했다. 털이 날리고 옷에 붙는 것도 싫었고, 손이 많이 가는 것도 싫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온 가족이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았는지 조금 우습기도 하다.
그 무렵,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는 또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리건주 세일럼 지역에서 태어난 순종 요크셔테리어 네 마리 중 둘째가 어느 가족에게 입양되었다. 다섯 살과 일곱 살 된 두 딸이 오래전부터 원하던 생일 선물 강아지였다.
태어난 집에서 ‘쎄미’라는 이름까지 얻은, 두 달을 갓 넘긴 1파운드도 되지 않는 작은 새만 한 아기 강아지였다.
그러나 어린 두 딸이 서로 쎄미를 차지하려고 안고 잡아당기는 일이 반복되면서 쎄미는 도망다니다 가느다란 다리를 다치기까지 했다. 결국 부모는 이 작은 생명을 위해 좀 더 조용하고 안전한 보금자리를 찾아 주기로 했다.
한쪽에서는 작은 강아지가 안전하게 머물 집을 찾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상실의 슬픔 속에 있던 한 사람이 마음 둘 곳을 찾고 있었다.
서로의 존재조차 모르던 우리 둘은 그렇게 조금씩 같은 방향으로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지인의 간곡한 부탁에 못 이겨 나는 결국 말했다.
“딱 3일만 데리고 있어 볼게요.”
쎄미는 두 아이와 헤어지는 것이 몹시 슬펐던 모양이다. 내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동안 소리를 내어 울었고 눈에서는 정말 눈물이 흘렀다.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강아지도 이별이 슬프면 저렇게 울고 눈물을 흘리는구나.
그렇게 쎄미는 우리 집에 왔다.
그런데 우습게도 나는 1파운드도 안 되는 그 조그마한 강아지가 무서워 피해 다녔다. 먹을 것과 물을 주면서도 털이 묻거나 물릴까 봐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이틀째 되던 날이었다.
‘이 조그마한 것이 정말 나에게 위안을 준다고?’
그런 생각을 하며 처음으로 쎄미의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아, 세상에 이렇게 맑고 초롱초롱한 눈이 있을까.
나는 한참 동안 쎄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의사도, 지인도 왜 나에게 강아지를 키워 보라고 했는지.
사흘째 되는 날 나는 전화를 걸었다.
“제가 쎄미를 키우겠습니다.”
그날부터 쎄미는 온전히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집에 돌아와 문을 열면 조그마한 녀석이 헬리콥터처럼 꼬리를 흔들며 뛰어올랐다. 내가 움직이면 따라 움직이고, 내가 나가면 자기도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바빠졌다. 허전함과 우울 속에 혼자 머물 시간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10년이 넘도록 수많은 산길을 함께 걸었다.
매주 토요일이면 짧게는 8마일, 길게는 12마일을 걸었다. 비가 오는 날도, 눈이 쌓인 겨울날도, 땡볕이 내리쬐는 여름에도 쎄미는 작은 네 다리로 당찬 모습으로 나를 앞서서 산을 올랐다.
수많은 캠핑을 함께했고, 겨울 산에서 백년설 위에 잠자리를 마련해 밤을 보내는 설박도 함께했다.
몸무게 겨우 3.5파운드 남짓한 작은 요크셔테리어와 보낸 여정이었다.
쎄미는 내 품에 안겨 산을 구경한 강아지가 아니었다. 자기 발로 흙을 밟고, 돌길을 넘고, 빗속을 걷고, 눈밭을 헤치며 나와 함께 산을 올랐다.
단둘이 자동차를 타고 5,000마일의 긴 여행도 함께했다.
어느 날 동물병원 의사가 쎄미를 진찰하다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이렇게 작은 강아지의 어깨와 넓적다리가 어떻게 이렇게 단단하죠? 마치 유도 선수 같네요.”
나는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선생님은 모르시지. 이 작은 녀석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산을 걸었는지.’
지금도 가끔 쎄미를 바라보며 신기해진다. 강아지는 절대 안 된다던 내가 어떻게 이 작은 생명과 이렇게 오랜 세월을 함께 살게 되었을까.
그리고 쎄미에게서 배운다.
말을 하지 않아도 곁을 지키는 법을, 아무 조건 없이 반가워하는 법을, 어제 서운했던 일을 오늘까지 가져오지 않는 법을.
쎄미는 나의 반려견이면서 산행 동료였고, 여행 친구였으며, 힘든 시간을 함께 건너온 작은 전우였다. 그리고 단순히 ‘애완견’이라고 부르기에는 우리가 함께 지나온 소중한 시간이 너무 많다.
인연이란 반드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찾아오는 것은 아닌가 보다.
무지개처럼 저마다 다른 빛깔로 스쳐 간 수많은 인연과, 때로는 상처만 남은 악연들 사이에서 쎄미는 내게 가장 따뜻하고 소중한 필연으로 찾아온 것이다.
내가 전혀 기대하지 않은 모습으로,
그러나 내게 가장 필요했던 바로 그때에.
그 작은 심장과 발로 나와 같은 길을 걸어 준,
내 삶의 참 특별한 인연으로.
쎄미는 그렇게 내게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