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목 회계사] 677. 과잉생산과 사치 7 - 시애틀한인 회계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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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목 회계사] 677. 과잉생산과 사치 7 - 시애틀한인 회계사칼럼

<지난 호에 이어>

절약이 실업의 원인이라는 생각은 널리 퍼져 있다. 간혹 미국 대통령이 “우리는 이제 돈 좀 써도 됩니다”(1) 하고 말할 때, 대중은 그런 뜻으로 알아 듣는다. 소비할 여유가 있고 소비할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정부는 이것을 소비심리의 비정상적 위축으로 본다. 소비할 이유가 있다는 것은 “나의 몸과 정신과 재산을 위해 이것은 좋은 것인가” 하는 의문에 “그렇다” 하는 답이 나온다는 뜻이다. 

미래에 소득이 줄어들 위험이 보일 때, 사람들은 여유가 있고 소비할 이유가 있어도 절약한다. 사람들이 염려하던 소득 감소 위험이 없어졌을 때, 예를 들면 전쟁이 성공적으로 끝났거나 불황을 예측하는 지표가 사라졌을 때, 정부는 그것을 국민에게 알려서 경제활동을 다시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 줄친 (1)은 그럴 경우에 적합한 말이다. 

지난 주 칼럼(676호)에서 인용된 케인즈의 글 속에도 같은 표현이 발견되는데, 케인즈의 생각은 위에 언급된 것보다는 광범하다. 케인즈는 중상주의 경제학자들의 입을 빌어서 아래 줄친 (2)와 (3)을 근거로 (4)와 같이 “절약이 실업의 원인”이라 하고 있다. 

“(칼럼 676호에서, 영문은 생략.) 소비 부족에 대한 불평은 중상주의 사상에서는 아주 지엽적인 면에 불과하지만, (중상주의 경제학을 연구한 스웨덴의 경제사학자) Eli Heckscher 교수는 소위 “사치의 효용과 절약의 죄악에 대한 뿌리 깊은 믿음”의 예를 많이 들고 나왔다. 중상주의 경제학자들이 절약을 실업의 원인으로 인식한 것(4)은 사실이며,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교환에 사용되지 않고 있는 돈의 금액만큼 실질 소득이 감소된다(2)고 그들은 믿었다. 둘째, 저축은 돈을 순환과정으로부터 걷어내게 된다(3)고 그들은 믿었다.”

위 인용문의 줄친 세 부분은 모두 틀린 말이다. 줄친 (2)는 화폐의 생멸 과정과 어긋나는 주장이다. 칼럼 410호(화폐의 생멸)에서도 설명된 바, 은행이 기업에게 돈을 빌려주면 그 즉시 새로운 화폐가 탄생한다. 시중의 통화량은 소득, 즉 돈의 수요에 따라 증감하는 것이며, 돈의 공급량에 따라 소득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케인즈는 어떤 때는, 예를 들면 1933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는,  이 인과관계를 바르게 말했고, 어떤 때는 위 인용문에서처럼 인과관계를 거꾸로 말했다. 그 둘의 차이를 케인즈가 인식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줄친 (3)을 본다. 갑이 소비하지 않는 돈은 은행에 예금되어 있다. 어떤 생산자가 반드시 팔리고야 말 사치품을 개발하여 그것을 생산하고자 은행에 가서 돈을 빌리려 할 때, 만일 누군가가 예금해둔 돈이 거기에 있으면 은행은 생산자에게 그만큼 쉽게 대출할 수 있다. 은행은 갑에게서 예금 받아놓은 돈이 많을수록 을에게 더 많은 돈을 빌려줄 수 있다. 만일 갑이 거기에 저축해두지 않고 허투루 써버렸다면, 생산자가 돈을 빌려가기는 그만큼 어려워진다. 저축은 돈을 순환과정으로부터 걷어내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저축은 돈을 순환과정에 합류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줄친 (2)와 (3)이 틀렸으므로, 저 문맥에서는 줄친 (4)가 설 자리가 없다. 현실을 감안하여 줄친 (4)를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갑의 절약은 을의 실업의 원인이다”로 된다. 절약하는 그 사람이 그 절약을 이유로 실업하는 경우는 없다. 갑이라는 이름의 여유 있는 소비자가 절약하는 것은 을이라는 노동자들이 실업하는 이유가 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을의 실업을 막기 위해 갑이 소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갑의 소비를 이끌어내는 방법이 될 수 없다. 즉, 설사 줄친 (4)가 맞는 말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말하는 것은 갑의 소비를 이끌어내는 방법이 아니다. 

갑이 소비하지 않는 것은 을의 고용주인 생산자가 갑의 마음에 드는 물품을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일 갑이 좋아할 사치품이 발명되었다면, 남들이 소비하지 말라고 해도 갑은 소비한다. 그러므로, 실업의 원인은 절약이 아니라 사치품 발명의 실패다. 모든 조건이 갖추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만일 사회적인 불안 때문에 소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 글 초두의 줄친 (1)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 때 설혹 위정자의 마음에 줄친 (4)를 믿는 마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말이 시기에 적절하다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인용문에서 보이는 케인즈의 혼란은 근본적으로 저축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얼른 보면, 저축은 “소비하지 않음” 이라 하는 부작위만인 것 같다. 케인즈의 투자승수는 그러한 가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저축은 주로 절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로 소득에서 온다. 소득의 변동은 크고, 소비의 변동은 크지 않다. 많은 저축이 이루어지는 것은 소비를 많이 줄였을 때가 아니라 소득이 많이 늘었을 때다. 칼럼 423호(케인즈의 원본 투자승수)에서 본 바, 케인즈가 일반이론 제10장에서 보여준 투자승수 도출 과정의 수학적 진실은 “더 많은 저축이 있으려면 더 많은 소득이 있어야 한다” 한다는 뜻이었다. 케인즈는 저축을 소비와만 연관시켜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한 수학적 진실을 몰랐고, 그렇게 해서 투자승수라는 허황한 개념을 창안한 것이다.  

줄친 (4)를 뒤집으면, 그 뒷면에는 “갑의 소비는 을의 소득이다” 하는 명제가 보인다. 이 명제는 케인즈 경제학의 초석이다. 그런데, 갑의 소비가 “갑과 을을 합친 공동체의 경제사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하는 의문을 던져보면, 그 대답은 일정할 수 없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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