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목 회계사] 678. 과잉생산과 사치 8 - 시애틀한인 회계사칼럼

전문가 칼럼

[안상목 회계사] 678. 과잉생산과 사치 8 - 시애틀한인 회계사칼럼

<지난 호에 이어>

최초의 경제학 서적이 무엇이었나 했을 때,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아닌 다른 대답이 나오는 경우는 상상하기 힘들다. 국부론이라는 이름이 시사하는 바, 경제학의 궁극적 목표는, 적어도 자유세계에서는, 나라 전체가 부유해지는 것이다.


케인즈 경제학의 초석인 “갑의 소비는 을의 소득이다” 하는 명제가 정당성을 갖추려면, 갑의 소비가 결국 국가 전체를 조금이라도 부유하게 만들어야 한다. 부유하게 된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자본이 많아진다는 뜻이며, 자본은 모든 저축의 합이다. 모든 종류의 저축은 칼럼 650호(성장주의와 저축 5)에 정리되어 있다.


갑의 소비가 을의 소득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만일 그 소비로 인하여 갑이 잃는 것이 그 소비로 인하여 을이 얻는 것보다 많다면, 그 소비는 갑과 을을 합한 사회 전체에 손해가 된다. 투자승수 이론의 방해를 받지만 않는다면, 앞 문장은 쉽게 이해된다. 


투자승수는 케인즈의 착각에 의거하여 개발된 것이며, 그 착각의 본질은 칼럼 423호(케인즈의 원본 투자승수)에 설명되어 있다.

갑의 소비로써 을의 소득을 창출했을 때 갑과 을이 속하는 사회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을 간단히 표현하면, 그것은 ‘분별’이다. 저축은 소비의 근본이므로, 저축과 소비를 두고 어느 것이 좋은 것이냐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대신, 처해진 상황에 따라 이런 저런 소비 중 어떤 소비가 그 상황에서 좋은 것이냐를 생각해야 하고, 그것이 분별이다.

  

무분별한 소비의 모습은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 잘 나타나 있다. 먹고 마시고 흔드는 분위기 속에는 “발명”의 분위기가 전혀 없다. 당시 시행되던 금주법(1919-1933)은 사람들의 행동을 규제하기는 커녕 음주라는 불법행위가 스포츠처럼 되었다. 알 카포네는 불법 주류 유통으로 떼돈을 벌었고, 경찰은 음주 현장을 목격해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지혜는 술을 밀매하는 수단의 개발에 탕진되었다. 소비자는 금주법으로 인하여 비싸게 되어 있는 술을 소비하여 귀중한 저축을 소모했다. 금주법이 시행되는 와중에 ‘위대한 개츠비’ 패거리들이 마시고 춤추는 모습은, 사치의 가장 비생산적인 예다. 갑의 소비가 을의 소득이 되기는 했지만, 갑과 을이 합해진 사회 전체의 물질적 부는 줄어들었고, 그에 상응하는 인간자본의 상승도 인간자본의 보존도 없었다.


2차대전 직후 한국의 행정을 담당하던 하지 중장(John R. Hodge, 1893-1963)의 경험담에 의하면, 그는 장병들이 한국내의 식당에서 음식을 사먹는 행위를 금했다. 첫째 이유는, 풍토가 다른 곳의 음식을 먹으면 배탈이 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둘째 이유는, 해외 원조로 입수한 식재료를 가지고 한국인들을 먹이기도 모자라는데, 미군까지 나누어 먹으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분별의 한 예다.


케인즈식으로 생각하면, 미군이 배탈이 나면 약을 소비하고, 제약회사의 매출을 높여준다. 또, 한국의 식량이 모자라면 미국은 더 많은 식량을 원조해줄 것이고, 그만큼 미국 농민의 소득이 늘어난다. 


앞 문단의 이야기가 얼른 보면 말이 되는 것 같지만, 그렇게 하면 농민은 하던 농사를 계속하게 되고 제약회사는 만들던 약을 계속 만들어야 한다. 농민과 제약회사 직원들은 현재의 장소에 머무르게 된다. 그들이 농사와 제약에서 창출된 추가의 가치는 그대로 소비되기 때문에, 거기에서 저축되는 것은 없고, 따라서 아무런 자본도 증가하지 않는다. 노동력은 새로운 능력을 갖추지도 않으므로, 인간자본의 증가도 없다. 이것은 만들던 것만 만들고 쓰던 것만 쓰게 되는 정체경제의 모습이다. 


농민의 일부가 더이상 농사를 짓지 않게 되고 제약회사 직원의 일부가 더이상 약을 만들 필요가 없게 되었을 때, 남아도는 인력을 부정적으로 보면 ‘실업’이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새로운 그 무엇을 위한 에너지가 된다. 누구라도 지금까지 없던 사업을 시작하려 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할 입지조건은 그 일에 투입할 인력의 존재다. 


2차대전 말엽 경제학자 사뮤엘슨은 천만 대군이 전역하면 다시 대량실업 상태로 갈 줄로 생각했다. 그 자신도 모르는 그의 생각을 분석하면, 전쟁을 위해 만들던 것을 계속 만들고 전쟁에서 쓰던 것을 계속 써야만 경제가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후에 그가 염려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천만대군이 전역했기 때문에 미국은 다음 단계의 산업에 인력을 공급할 수 있었다. 


전쟁용 수송기 제작하던 보잉의 기술인력은 민항기 제작에 투입되었다. 전쟁을 수행하던 중장비 기술자들은, 전쟁 때문에 중단되었던 고속도로의 건설에 투입되었다. 전역한 천만대군은 순식간에 산업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들이 전역하지 않았더라면 미국은 지금까지의 번영을 이루어낼 수 없었다. 


남는 인력은 “인력의 저축”이다. 항공여행과 고속도로 같은 사치가 발명되면 저축된 인력은 그것을 만들고 돈을 저축해둔 사람은 그것을 구매한다. 사치품 제조의 경쟁에 의하여 사치품 제조비는 지속적으로 내려가고, 그 사치품은 일용품이 되어간다. 자본주의 사회는 이렇게 해서 점점 풍족해진다. 공산권의 각국이 자본주의 체제의 일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지도 수십년 되었고, 그들도 이제 그 보람을 얻고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에게는 저축이나 국가의 부유한 국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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