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 문학칼럼] 메기의 추억 - 시애틀한인 문학칼럼

전문가 칼럼

[이성수 문학칼럼] 메기의 추억 - 시애틀한인 문학칼럼

이성수(수필가)


옛날의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소리 들린다. 메기/ 아아 희미한 옛 생각...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중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미국 민요 메기의 추억이다.


원제목 “When You and I Were Young, Maggie”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신과 내가 젊을 때 메기라고 구슬프게 지난 추억을 되새기는 노래이다. 조금은 애처롭다는 것을 어린 중학생이었던 나는 알고 있었다. 음악 선생님으로부터 노래에 얽힌 눈물겨운 사연을 듣고부터 메기의 추억 노래를 들을 때면 왠지 모를 그리움이 담겨 있는 듯해서 가슴 한구석을 아련하게 하고 있다.


작년 서북미 문인협회 시, 수필 낭송회가 있을 때 내가 쓴 수필을 아들이 대독하고 나는 뒤에서 배경음악으로 메기의 추억을 리코더로 연주한 일이 있다. 본래 애절하게 들리는 리코더 소리에 메기의 추억의 슬픈 사연으로 장내가 숙연하였었다.


미국 뉴욕주 서북쪽 끝자락과 캐나다 온타리오가 만나는 곳에 유명한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다. 이 폭포는 에이레 호숫물이 이 협곡을 지나 지층이 푹 꺼진 낭떠러지에 쏟아지면서 거대한 폭포를 이루고 있다. 폭포에서 떨어진 물줄기는 온타리오 호수로 흘러가는데 캐나다 쪽으로 첫 번째 마주치는 읍내에 있는 마을 이름이 해밀턴(Hamilton)이다. 이곳은 경치가 너무 아름답다. 그림과 같은 절경을 보기 위해 관광객이 연중 쇄도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55년 전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온 누리에 찾아올 무렵 죠지 존슨(1839 ~1917)이란 갓 20살의 잘 생긴 총각 선생이 인근 글렌포드 고등학교에 부임해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그런데 그 학교 고3 여학생반에서 첫 영어수업을 하는데 그 많은 여학생 중에서 첫눈에 확 들어오는 미모의 아리따운 한 여학생에게 반하게 되었다. 그 예쁜 여학생의 이름은 해밀턴에서 사는 18세의 마가렛 클라크(1841~1865)이었다. 


수업시간 내내 젊은 총각 선생의 시선은 그 예쁜 여학생을 떠나지 않았다. 


방과 후에 둘은 첫 데이트를 하게 되고 그 여학생도 미남인 총각 선생을 좋아해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총각 선생과 이 여학생은 음악을 좋아하였기에 마을 합창단에서 함께 봉사 활동을 했다. 


둘은 거대한 나이아가라 폭포수가 온타리오 호수로 흘러가는 경사진 언덕의 양지바른 금잔디에 나란히 앉아 청옥보다 더 푸른 호수를 바라보며 꿈같은 사랑을 속삭였으며, 시냇가에 줄지어 선 단풍나무 길을 따라 산책을 하곤 했다. 그들이 즐겨 거닐던 호수와 개울, 베이지 꽃이 처음 수줍게 피어 있는 동산과 물레방앗간, 꽃보다 더 아름다운 단풍, 그리고 숲을 이룬 목가적인 자연을 즐기며 산책을 하였다,


얼굴이 점점 백옥처럼 하얀 미인이 되어가는 여학생을 선생은 황홀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예뻐했다.

그 행복한 날들은 금방 지나갔다.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많은 여학생 제자들의 부러움 속에서 축복을 받으며 화촉을 밝혔다. 


결혼 후에 죠지 존슨 교사는 미국 오하이오주 고등학교로 전근을 갔다.


그곳에서 달콤한 신혼 생활을 즐겼으며 매일 매일 행복한 나날을 보내었다. 


그러나 행복은 너무 짧았다. 신부 마가렛 클라크가 폐결핵을 앓게 된 것이다. 결혼한 지 채 일 년도 안 되어 사내아이 하나를 낳고 세상을 떠났다.


그때만 해도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이라 폐결핵은 한번 걸렸다 하면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같은 무서운 질병이었다.


이 병에 걸리면 처음에는 피부 색깔이 뽀얗게 되어 얼굴이 한결 예뻐 보인다. 신부가 얼굴이 점점 예뻐진 것도 결핵병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토록 사랑했던 제자와 결혼하여 달콤한 신혼의 꿈을 마음껏 이루지 못한 채 젊은 나이에 아내와 헤어지게 되었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이 폐결핵 병은 전염력이 아주 강해 누구도 가까이에서 임종(臨終)을 지켜보지 못한다. 마지막 세상을 떠나던 날 사랑하는 부모도 근처에 얼씬 못하였다. 그러나 남편만은 의사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애인 곁에서 임종을 지켜보았다. 가래에 막혀 숨을 못 쉬고 고통받는 애인을 품에 안고 남편은 눈물을 한없이 흘리며 오열했다. 마지막 숨을 힘겹게 내 쉬며 미소 짓고 죽어가는 아내를 꼭 껴안으며 울면서


“여보 사랑해! 우리 너무 행복했어. 하늘나라에서 만나자!“ 


이렇게 그녀는 임의 품에 안겨 짧은 행복을 느끼며 꽃다운 젊은 나이에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을 뒤로하고 숨을 거두었다.


병실에는 숯불이 화로에서 붉고 파란 일산화탄소의 불꽃이 독사의 혀처럼 날름거리며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이것은 폐결핵 환자가 죽을 때 전염하는 결핵균을 살균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메기는 1865년 꽃다운 23세로 세상을 떠났고 그때 존슨의 나이는 25살이었다.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은 존슨은 아내와 사별하고 그의 슬픈 지난날 사랑을 속삭이던 그 고향 언덕에 아내를 묻어 주려고 관을 화물 열차에 싣고 고향 해밀턴으로 향했다.


존슨 교사는 어린아이를 안고 기차에 올랐다. 그런데 품에 안고 있는 아기가 엄마를 찾으며 자꾸 소리 내어 울었다. 다른 승객들에게 폐가 되어 미안해서 정성을 다해 아이를 달래 보았으나 끝내 울음을 그치지 않고 계속 보채며 울고 또 울어댔다. 고요한 기차 안은 큰 소리로 우는 아기 울음소리에 곤히 잠들고 있던 승객들이 깨고 여기저기에서 항의 소리가 빗발쳤다.


존슨은 다른 승객들에게 더 이상 폐를 줄 수 없어 울고 있는 아이를 안고 벌떡 일어나 눈물을 글썽이며 승객들에게 이렇게 큰소리로 사과의 말을 하였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이 아이가 엄마를 찾으며 이처럼 큰 소리로 울고 있는 것은 아이 엄마가 어제 세상을 떠나 지금 화물 열차의 관속에 실려 그곳에 누워 있습니다. 엄마가 세상 떠난 줄도 모르고 제 엄마를 찾으며 울고 있습니다. 


여러분 조금만 참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제 아내를 고향 언덕에 묻어 주려고 아내의 관과 함께 고향으로 향하고 있는 중입니다, 여러분 대단히 미안합니다. 용서를 빕니다.“ 


기차 안 모든 승객들은 이 말을 듣고 숙연해지고 눈물짓는 이도 많았다. 이 이야기를 듣고 어느 누구도 더 이상 항의하는 사람이 없었다. 


바로 이때 이 객실에 어느 신문 기자가 타고 있었다. 이 기자는 아기가 우는 이야기를 감명 깊게 듣고 지방 신문에 수필로 써서 보도하게 되었다. 이 소식이 신문에 보도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자 많은 독자들이 가슴 아파하고 매우 슬퍼하며 장례식에 참석하며 위로해 주고 격려해주었다.


존슨은 훗날 고등학교를 사임하고 학업을 계속해 명문 죤합킨스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시(詩)를 쓰는 데도 열중했다. 그리고 그는 모교인 토론토 대학의 언어학 교수가 되었다.

한편 그가 쓴 시집 단풍잎(maple leaves)에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슬픔과 옛날 일들을 추억하면서 쓴 애절한 시가 많이 게재되었다. 


가슴 뭉클한 사연이 담긴 시(詩)를 가사로 친구인 작곡가 버터훨드가 곡을 부쳐 ‘메기의 추억’이란 노래가 1866년에 탄생하게 되었고 미국의 대표적인 민요가 되었다.


   옛날의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메기/ 아아 희미한 옛 생각

   동산 수풀은 우거지고/ 장미화는 피어 만발하였다.

   물레방아 소리 그쳤다. 메기/ 내 사랑하는 메기야


   북방산 수풀은 고요타 메기/ 영웅호걸이 묻힌 곳

   흰 비석 둘러서 지킨다. 메기/ 아아 우리가 놀던 곳

   지금 우리는 늙어지고/ 메기 머린 백발이 다 되었다. 

   옛날의 노래를 부르자 메기/ 내 사랑하는 메기야

   메기란 사랑하는 아내 이름 마가렛(Margarret)의 애칭이다. 


우리나라에는 미국 선교사들을 통해 처음 소개되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자서전에는 그가 배재학당에서 공부할 때 영어를 가르치던 여선교사가 들려준 노래가 바로 이 “메기의 추억”이라고 적혀있다. 당시 이 노래를 듣고 감명을 받은 그가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동경(憧憬)이 더욱 커졌다고 하는데, 이는 1896년경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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