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 칼럼] 아들아이(1) - 시애틀한인 커뮤니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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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나 칼럼] 아들아이(1) - 시애틀한인 커뮤니티칼럼

막내인 아들아이가 29살이 되었네요,


아들아이는 어릴 적부터 마치 자기가 막내가 아닌 큰오빠처럼 두 누나들을 챙겼네요.

온 가족이 나들이를 갔다가 두 누나들이 차에서 졸려 하면 두 누나들에게 큰누나, 작은누나 잠자도 돼 누나들이 잠이 들면 내가 차에서 내릴 때 누나들 업고 내려갈 거야! 라며 누나들에게 편하게 잠을 자라고 얘기를 하고는 했습니다.


아들아이가 어릴 때 하도 밥을 잘 먹어 몸이 커지자 두 누나들이 아들아이에게 너무 몸이 커진다며 걱정을 하며 음식을 적게 먹기를 강요했지만 나는 아이가 크려고 그러니 실컷 먹게 놔두라고 두 딸아이들을 말렸습니다.


아들아이는 운동신경이 발달해서 어릴 적부터 웬만한 운동은 다 해보았는데 그중에서도 농구를 하도 좋아해서 5살부터 농구부에 들어서는 고등학교 졸업반까지 농구부에 들어가서 열심히 활동을 했네요!


그 덕분인지 아들아이는 키가 부쩍 자라서 고등학교 졸업반 때는 키가 6피트가 훌쩍 넘어섰습니다.


아들아이는 먼 지역으로 대학에 가서는 신체학을 공부하며 이 다음에 의사가 된다고 하면서 열심히 공부를 하였습니다.


집안에 의사가 3명이 있어서 아마도 사촌들이 의사들이라 본인도 아들인 자기가 당연히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듯하고 나도 모르게 아들아이에게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쪽으로 아이를 밀어 넣었던 듯싶습니다.


아들아이는 대학을 마치고 피지컬 테라피스트가 되겠다며 미국 전체에 체인망을 갖고 있는 ATI라는 피지컬 테라피그룹에서 인턴을 시작했습니다.


대학은 부모님이 보내주셨으니 대학원은 본인이 스스로 벌어서 가겠다며 피지컬 테라피 학교를 정하고는 그 학교를 목적으로 ATI에서 현장실습을 하면서 열심으로 일을 하며 공부를 한 후 3년째 되던 해에 원하는 피지컬 테라피 스쿨로 가게 되었습니다.


아들아이는 자기에게 맡겨진 일이라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서 하는 성격이라 열심히 공부를 하겠거니 라고 생각을 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들아이가 엄마 할 말이 있어요? 라면서 말을 시작을 하는데 자기는 의대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자기는 요리사가 꿈이었다며 피지컬테라피스트가 되려고 했던 것은 엄마아빠가 원해서였지 본인은 어릴 적부터 요리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네가 언제 요리사가 된다고 했냐? 고 물어보았더니 아들아이는 워낙에 집안의 분위기가 요리사가 되겠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말을 못한 것이지 자기는 요리사가 되고픈, 아니 커다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게 자기의 목적이라고 했습니다. 


아들아이의 말을 듣고서 한참이나 얼이 빠져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아들아이가 하이스쿨 학생이 되면서부터는 할러데이 때에는 필요한 모든 중요한 음식은 아들아이 손을 거쳤던 생각이 나네요.


나는 직업상 정신질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니 취미로 결과가 나타나는 음식을 만드는 일들을 하면서 이탈리안 요리, 스페인 요리 태국 요리 등을 배우면서 틈틈이 집에서 실습을 해볼 때에 두 누나들은 음식 만드는 내 옆에 오지도 않는데 막내인 아들아이만은 꼭 내 옆에서 거들어주기도 하고 함께 요리를 하기도 했던 기억이 나면서 나는 내가 아들아이를 너무 부엌으로 끌어들였나? 라고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나는 직장 일로 또는 여행으로 외국으로 갈 때에는 그 지역에 요리학교에 당일 코스나 이틀 코스로 요리 교육을 받고는 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요리는 2014년 후드앤 아카데미 김수진 원장님 일행이 이곳 시애틀로 오셔서 3주간 요리 강습교육 때 직장을 쉬면서까지 요리 수업을 받았고, 4년 전 엘에이로 출장을 갔다가는 엘에이 한인타운 내에 새로 문을 연 단국대학 윤숙자 궁중요리 교수님의 요리학교에서 요리 수업을 하면서 내게는 벅찬 엄청난 학비를 내면서까지 3주간 교육을 받았습니다.


요리란 시작과 끝이 분명해서 결과가 나오니까 아마도 현실에서는 고치기 힘든 정신지체자 환자들과 일을 하려니 내가 좋아하는 요리로 정서적인 안정감을 받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시간만 나면 집에서 새로운 음식들을 만들며 늘 새로운 식탁으로 상을 차렸고 우리 집 식탁의 대화는 가족들이 식사를 하면서 음식에 관하여 많은 얘기를 나누던 기억이 나네요.


우리 집에서는 라면을 하나 끓여도 그냥 라면을 끓이는 것이 아니라 라면을 끓일 때에는 일단 물을 두 냄비에 올려놓고는 한 냄비에 라면을 먼저 넣고 끓여서는 이물을 버리고는 다시 깨끗한 물로 라면을 씻어내서는 옆에 끓고 있는 물에 라면을 넣는데 옆의 라면 물에는 이미 내가 넣어 조리하고 있는 양념장 물과 야채들 그리고 라면 스프와의 조합으로 라면은 아주 새로운 맛이며 담백한 맛을 내어주어서 우리 집 라면은 특별한 라면 맛이기도 했습니다. 


아들아이는 내가 라면을 끓이거나 새로운 음식을 하면은 꼭 옆에서 살펴보고는 했었는데 나는 남자들도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을 해서는 늘 아들아이가 질문을 하면 대답을 자세히 해주고는 했는데 아들아이가 요리를 한다니 별안간 그동안 지내왔던 일들이 생각이 나며 공연히 아들아이에게 자세히 알려주었나 후회해보기도 했습니다.


아들아이가 자기는 피지컬테라피스트 공부가 자기하고 안 맞으며 그만두고 요리를 한다고 말한 지 얼마 후 아들아이는 시애틀에 유명한 어느 레스토랑에 취직을 했다며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아이는 이 레스토랑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스토랑인데 미국에서도 각주마다 몇 개씩 있는데 자기는 언젠가는 이 레스토랑의 주인이 될 거라며 그 레스토랑의 바스보이로 취직이 되었다며 새벽부터 출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아이는 20대 청년의 멋진 모습이 아닌 작업복을 입고서 매일 허드렛일부터 시작을 하는 것이라 늘 옷은 지저분해져서 밤늦게 집으로 들어왔고 하루종일 분주하게 허드렛일을 하면서 지친 몸을 쉴 틈도 없이 피곤한데도 세계 유명요리사가 요리하는 티비를 켜놓은 채 잠이 들기도 하여서 나는 잠자는 아들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주면서 아이구! 이 자식 그래 이렇게 고생하면서 살아가라고 우리가 그 비싼 학비 내가며 공부시켰냐고 난리를 치고 싶었는데 속으로 꾸욱 참으며 잠자는 아들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주고는 했습니다.

 

의대 공부를 할 때는 끌려가는 송아지마냥 지친 모습이던 아들아이는 험한 허드렛일로 힘든 일을 하면서도 더욱 생기가 나고 힘찬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틈만 나면 새로운 특별한 요리를 해놓고는 엄마 맛 좀 봐요? 라고 나에게 맛을 보기를 권했고 나는 아들을 의사로 공부시키려 공들인 정성과 돈이 아까워서 아들이 음식을 만들 때마다 그 음식들을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었지만, 어차피 아들아이가 선택한 일이니까 라고 생각을 하며 끓어오르는 화를 꾹 눌러 참으며 음식을 맛보면서 아! 그래 이 음식 맛이 너무 좋구나! 라며 사실 평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요!


아들아이가 요리를 하면 그 무슨 재료이든 무조건 맛이 있었습니다.


아들이 구운 스테이크는 부드럽고 식감이 아주 좋았으며 아들이 해물 요리를 하면 신선한 바다 향기가 그대로 나는 듯 하는 맛을 내주었습니다.

 

아들은 새벽부터 밤늦도록 식당에서 막일을 하면서도 행복해 했습니다.


매일 저녁 파김치가 되어 돌아와도 그 좋아하던 게임도 한 번도 못 해도 세계 요리전문가들의 요리를 티비를 통해서 열심으로 보고 배우면서 연구에 연구를 하더군요.


티비를 켜놓고 잠이든 아들아이에게 나는 이불을 덮어주면서 아니, 하라는 공부를 해서 편히 살지 이게 웬 고생이냐꾸! 라고 소리를 질러버리고 싶었지만, 아들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주었습니다. 


아들아이가 피지컬테라피 학교 가려고 준비한 3년간의 ATI(미전국체인) CEO 이베스트 추천서와 또 시애틀 브랜치 대표의 엑설런트한 추천서도 받아서 너무 기쁘고 좋았었는데 아들아이는 식당에서 열심히 몸을 사리지 않고 일을 하더군요.


자기가 하는 일을 좋아하니까 행복하다면서요.


아들아이에게 추천서를 써준 CEO의 추천서에는 이렇게 써있었습니다.


If your school accept this gentleman(아들) your school is lucky to have him.  

이 청년은 굉장히 성실하고 훌륭한 청년인데 너희 학교에서 이 청년을 받아준다면 너희 학교는 행운이라며!


아무튼, 아들아이는 힘든 일을 하면서도 열심히 일을 하더군요.


레스토랑에서 일을 시작한 지 몇 달 후 아들아이는 바스보이(온갖 허드렛일을 하는)에서 서버로 승격이 됐다면서 뛸 듯이 좋아하더군요.

 

나는 뛸 듯이 좋아하는 아들에게 그래! 잘되었구나! 라고 얘기를 하고는 자리를 떴죠!


혹시라도 불편해하는 내 속마음이 들킬까 봐요.


뭐 아들이 자기가 좋아서 한다는데 어쩔 수 없잖아요!


아들은 자기가 일하는 레스토랑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데 언젠가는 자기도 그 레스토랑의 주인이 될 거라고 또 얘기를 하더군요,


나는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야!


잘해봐! 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래 너는 대학도 나오고 의대 공부한다고 인턴까지 3년하고 더구나 의대 공부까지 따지면 26살에 바스보이로 시작했는데.. 


걱정을 해보면서도

그래! 어차피 네가 시작을 한 것이니까 최선을 다해봐 라고 얘기를 했지만 아들의 더러워진 서빙 옷을 보며 저 애가 남들은 즐기는데 자기는 서버로 일하면서 즐겁다니????

염려도 되고 또 한편으로는 아들의 꿋꿋한 마음가짐에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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