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안상목 회계사] 682. 마르크스의 유산 -시애틀한인 회계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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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안상목 회계사] 682. 마르크스의 유산 -시애틀한인 회계사칼럼

마르크스 경제학의 위력은 그 과학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양과 난해함에 있다. 세 권으로 된 자본론은 분량이 많고 난해하다. 마르크스의 추종자들은, 마르크스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모든 논리가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으로 믿는다. 


마르크스 반대자들은 자본론을 읽어내기 힘들기 때문에 마르크스 이론에 효과적으로 반박하지 못한다. 마르크스의 사회학적 판단을 한 단으로 표현하면 “불안”이며, 그 불안의 전염성은 강력하다. 마르크스의 경제학은 그 방대함과 난해함 때문에 구름처럼 그 불안의 배경으로 버티고 있다. 그 불안은 공산당선언의 첫머리에 귀신(spectre)이라는 단어로 등장한다. 

 

“A spectre is haunting Europe — the spectre of communism. All the powers of old Europe have entered into a holy alliance to exorcise this spectre: Pope and Tsar, Metternich and Guizot, French Radicals and German police-spies. 유럽에는 귀신이 하나 붙었다. 


공산주의라는 귀신이다. 교황과 황제, (오스트리아 제국의 재상) 메테르니히, (프랑스 왕국의 외교관) 기조, 프랑스의 급진파와 독일의 비밀경찰 등, 묵은 유럽의 모든 권력은 이 귀신을 쫓아내려는 신성 동맹을 맺아 있다.”


인용문의 그 동맹은 이제 깨어져 있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마르크스의 귀신(스펙터)이 한 역할은 작지 않다. 지나친 불공평은 마르크스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인간이 싫어한다. 인간이 지나친 불공평을 싫어하는 모습은, 1941년 8월에 미국이 영국을 강요하여 만들어낸 대서양 헌장(The Atlantic Charter)에 잘 나타나 있다.  아래는 8조로 된 대서양헌장 제5조다.

 

“Fifth, they desire to bring about the fullest collaboration between all nations in the economic field with the object of securing, for all, improved labor standards, economic advancement and social security; 제5조. 영미 양국은 경제분야에서 모든 국가 간의 완전한 협력을 이끌어내어, 만인을 위하여 노동조건의 개선과 경제적 진보와 사회보장을 추진한다.”


대서양헌장은, 약육강식의 원리에 지배되던 인류의 역사에 의문을 던지고 만인이 공생하는 방안을 찾아보기로 한, 획기적인 문서다. 대서양헌장을 제외하고는 미국을 논할 수 없고, 대서양헌장을 모르고는 인류사의 현주소를 깨달을 수 없다. 


만일 백만년 후 외계인이 지구를 탐색하고 돌아갔을 때, 그들 본부의 누구가 “그 별의 미국은 어떤 나라이던가” 물으면, 아마 보고자는 “대서양헌장을 주도했더라” 하고 대답할 것 같다. 

인용문 속에 두 개의 사항에 줄을 친 것은 그 두 가지에 마르크스 귀신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 중 사회보장 부분을 본다. 


미국에서 사회보장법이 발효된 것은 대서양헌장으로부터 불과 6년 전이었고, 그 때 이미 34개국이 미국보다 앞서서 사회보장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다. 사회보장제도를 처음으로 시행된 국가는 비스마르크의 독일이었다.

 

빅토르 위고가 레미제라블을 출간한 1862년, 비스마르크는 프러시아 재상으로 취임했다. 이후 비스마르크는 네델란드와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를 차례로 꺾고 통일 독일을 부강하게 이끌고 있으면서, 항상 공산주의자들의 도전을 염려하고 있었다. 


(반대로, 마르크스가 조국 독일로 돌아가지 못하고 평생 런던에서 살아야 했던 이유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그것은 비스마르크다.) 비스마르크는 1889년에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하여 65세부터 은퇴연금을 수령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1848년 전 유럽을 휩쓴 혁명은, 극빈자가 많은 것을 방치하면 나라가 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극빈자가 양산되는 곳에는 언제나 마르크스의 귀신이 출몰했다. 애국 독재자 비스마르크가 가장 먼저 그 귀신의 위협에 반응한 것이다. 


1935년에 시작된 미국의 사회보장제도는 비스마르크의 사회보장제도를 참조하여 만든 셈이다. 대서양헌장은 이러한 역사를 통하여 만들어진 것이며, 그 정신은 그대로 유엔헌장과 세계인권선언으로 흘러들었다.

 

사회보장제도는 공산주의 귀신의 침투로부터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한, 일종의 예방주사 같은 것이다. 노동법도 그러한 조치의 하나다. 극빈자를 구제하기 위한 새로운 수단은 마르크스 귀신이 얼른거릴 때마다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다.

 

칼럼 673호(과잉생산과 사치 3)에서 언급된 바, 극빈자의 존재과 소득의 불평등은 서로 다른 것이다. 극빈자는 없어야 하지만, 소득 불평등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극빈과 소득 불평등의 차이가 명백히 잘 알려진 사회에 출몰하는 마르크스 귀신은 얼마든지 건전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마르크스의 유산은 귀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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