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 칼럼] 까치설날 - 시애틀한인 문학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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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수 칼럼] 까치설날 - 시애틀한인 문학칼럼

이성수(수필가·서북미문협회원)


오늘은 2021년 '신축년(辛丑年) 새해 설날입니다. '신(辛)'은 백색을 의미하기 때문에 '하얀 소의 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올해는 흰 소띠해입니다. 

소띠의 가장 큰 특징은 근면·성실함과 진실함입니다. 매사에 성실하며 믿음직스럽고 인내심이 강하며 정직하고 부지런한 특징이 있으며 또 평소에 온순한 소가 싸움이 붙으면 끈질긴 투지력을 발휘하여 승리합니다.

내가 농촌에 살 때 머슴이 우리 집 소로 논을 갈 때의 일입니다. 논을 가는 도중에 머슴은 일을 멈추고 논에서 나와 볼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머슴이 잠깐 있다가 돌아오기로 한 것이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아마 1시간은 넘었을 것입니다. 소는 그 긴 시간을 부동자세(不動姿勢)로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습니다. 나는 소의 인내심과 충성심에 감복하였습니다. 

소띠의 사람은 신뢰감이 있고 편안한 인상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화가 많은 성격은 아니나 한번 화가 나면 말리기 힘들고, 승부욕(勝負慾)도 강한 편이라고 합니다. 황소고집이란 말이 괜히 나온 건 아니겠지요. 

나는 아직 흰 소를 보지 않았지만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색만큼이나 신성한 기운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나는 어려서 설날이면 “까치 까치설날은....”으로 시작하는 동요를 부르곤 했습니다. 

       까치 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드리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란 저고리/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저고리

       아버지와 어머니 호사내시고/ 우리들의 절 받기 좋아하세요.'

설날 '불후(不朽)의 명곡'으로 윤극영(尹克榮) 시인의 동요 '설날' 노랫말입니다. 이 동요에 따르면 '우리 설날'은 정월 초하룻날, 즉 음력으로 한 해의 첫째 달의 첫째 날이지만, '어저께'(어제)는 섣달 그믐날, 즉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달의 마지막 날입니다. 즉 작은 설이지요.

그런데 '까치설날'은 왜 '어저께(어제)'이고 갑자기 까치가 왜 등장한 걸까요? 초등학교 때 이 노래를 배우고 또 많이 불렀지만, 까치설날이 왜 어제이고 왜 까치가 나오는지 가르쳐 주는 선생님은 한 분도 없었습니다. 그저 의구심은 있어도 동요니까 반가운 손님이 오는 날 소식을 전해 주는 까치를 등장시켰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였습니다.

'까치설날'의 유래를 SBS '라이프'에서 알아봤습니다.

까치의 설날에 관해 여러 가지 학설(學說)이 있습니다. 국어학계에서 가장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설(說)은 무속·민속 연구의 권위자였던 수필가인 고(故) 서정범(徐廷範) 교수의 주장입니다. 서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노래에 나오는 설날의 까치는 손님이 온다고 알려주고 홍시 감을 파먹으며 하늘을 나는 그런 새(동물)가 아닙니다. 

원래 설 하루 전인 섣달 그믐날은 '아찬 설' 또는 '아치 설'이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아찬', '아치'는 순우리말로 '작은(小)' 것을 뜻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설 전날 즉 섣달 그믐날을 '작은 설'이라는 뜻으로 '아치 설'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추석을 '한가위'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큰 설은 '한 설, 한 첫날'로, 작은 설은 '아찬 설, 아치 설'로 불렸는데 세월이 흐르는 사이 '아치'와 아찬이란 말을 쓰지 않아 그 뜻이 상실되어 '아치'와 음이 비슷한 '까치'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서 교수는 우리나라 남서해안 다도해(多島海) 지방에서 '조금'을 부르는 말이 변한 것을 들고 있습니다.  .

조금은 조석 간만(밀물과 썰물)의 차가 가장 좁아지는 음력 8일과 23일인데 그 전날인 7일과 22일을 가리켜 사람들은 이를 '아치 조금'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실지로 충남 태안반도와 황해도 옹진반도 사이에 있는 경기만 지역에서는 지금도 이 '아치 조금'을 '까치 조금'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즉 아치조금(작은 조금)을 까치조금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립국어원은 '아치 설'이 '까치 설'로 이어지는 원형을 문헌에서 찾을 수는 없지만, 구어(口語)로 썼던 말이 변형됐다고 보면 '아치 설'이 까치설로 부르는 것이 설득력이 가장 높다고 말합니다.

다음으로 많이 알려진 학설(學說)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설화입니다. 고려 승려 일연(一然)이가 쓴 삼국유사에 까치가 등장합니다.

신라 소지왕 때 왕후가 한 스님과 작당을 해 왕을 없애려고 했는데, 까치(까마귀)와 쥐, 돼지와 용(龍)의 도움으로 왕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소지왕은 신세 진 동물들의 공(功)을 인정하여 십이지신(十二支神)에 모두 넣어줬지만, 까치는 넣을 자리가 없어 빠졌다고 합니다.

그 대신 설 바로 전날을 까치의 날이라 하여 까치설이 생겨났다는 설(說)입니다.

하지만 국립국어원은 이 설화에 나오는 동물은 까치가 아니라 까마귀라면서, 까치설의 유래를 설명하는 글이 왜곡되어 퍼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밖에도 설은 다양합니다.

윤극영 선생은 동요 반달(푸른 하늘 은하수)에 이어 작사·작곡한 '설날'을 발표한 시기는 일제 강점기인 1924년이었습니다. 윤극영 선생은 일본이 우리말을 박해하는데 격분하여 이 동요를 만든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양력 1월 1일을 일본 설로 쇠던 일제를 까치로 비유했고, 우리 민족의 설날인 음력 1월 1일보다 앞선 시점이기 때문에 '어저께'라고 말했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왜 일본을 까치로 비유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면 설날과 까치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서양에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길조(吉兆)의 상징 까치가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믿었습니다.

까치는 텃새로 우리와 이웃하여 우리 곁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붕에 앉아 식구들과 대화하고 감이 익으면 홍시를 파먹고. 복숭아가 익으면 쪼아 먹습니다. 까치는 실제로 시각(視覺)과 후각(嗅覺) 모두 사람보다 훨씬 발달하여 주위의 냄새는 물론 사람의 냄새까지 기억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을에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경계의 표시로 우는데, 우는 소리가 아주 명랑합니다. 그릇에 구슬을 넣고 흔들 때 나는 울음소리를 우리 조상들은 먼 객지에 나간 자식과 같은 반가운 손님이 오는 것을 알려주는 메시지라며 반기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시골 사람들은 된서리가 와서 감을 딸 때 으레 까치 먹으라고 몇 개의 감을 남겨줍니다. 

한국은 양력 1월 1일을 신정(新正)이라 해서 하루를 쉬지만, 음력 정월(正月) 초하루는 구정(舊正 민속설)이라 해서 사흘을 쉽니다.

이곳 미국에서는 음력 설 즉 구정에도 쉬지 않고 다만 한국 교민 학생은 하루를 휴교해도 출석으로 쳐 줍니다. 또 중국 교민학생도 음력설을 춘절(春節)이라 해서 학교를 쉬어도 결석으로 치지 않습니다.

다만 한국 마트에서 신정보다 구정 때 흰떡(떡국)이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설날이면 우리 고유 민속 문화의 계승을 위해서 우리 교회 무궁화 한국학교 학생들에게 노인회 시온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옛날이야기도 들려주고, 세배도 받고, 세뱃돈도 주고, 까치 까치설날 노래를 합창했었는데 올 설날은 코로나 19 역병 때문에 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또 이곳 페더럴웨이 한인회가 해마다 설날이면 윷놀이 대회를 개최하여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켰었는데 올 설 때는 코로나 19 역병 때문에 취소되어 무척 아쉽습니다. 

사랑하는 미디어한국 독자 여러분! 2021년 신축년(辛丑年) 새해 복(福) 많이 받으시고 아직도 번지고 있는 코로나 역병에 조심 또 조심하셔서 건강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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