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주 칼럼] 만두 이야기  - 시애틀한인종교칼럼

전문가 칼럼

[문성주 칼럼] 만두 이야기  - 시애틀한인종교칼럼

차가운 겨울날 한 만두 이야기가 우리의 속 사람을 따스하고 흐뭇하게 해주리라 싶어 나누어 보기로 하였다. 


60년대 겨울. 인왕산 자락엔 세 칸 초가들이 다닥다닥 붙어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목숨을 이어갔다. 


이 빈촌 어구에는 길갓집 툇마루 앞에 찜통을 걸어놓고 만두를 쪄서 파는 조그만 가게가 있었다. 쪄낸 만두는 솥뚜껑 위에 얹어둔다. 만두소를 만들고 만두피를 빚고 손님에게 만두를 파는 일을 혼자서 다 하는 만둣가게 주인은 순덕 아지매다.


입동이 지나자 날씨가 제법 싸늘해졌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어린 남매가 보따리를 들고 만둣가게 앞을 지나다 추위에 곱은 손을 솥뚜껑에 붙여 녹이고 가곤 했다.

 

어느 날 순덕 아지매가 부엌에서 만두소와 피를 장만해 나갔더니 어린 남매는 떠나고 얼핏 기억에 솥뚜껑 위에 만두 하나가 없어진 것 같아 남매가 가는 골목길을 따라 올라갔다.


꼬부랑 골목길을 오르는데 아이들 울음소리가 났다. 그 남매였다. 흐느끼며 울던 누나가 목이 멘 소리로 말했다.

 

“나는 도둑놈 동생을 둔 적 없다. 이제부터 나를 누나라고 부르지도 말아라.” 


예닐곱 살 쯤되는 남동생이 답했다. 


“누나야, 내가 잘못했다. 다시는 안 그럴게.”


담 옆에 몸을 숨긴 순덕 아지매가 남매를 달랠까 하다가 더 무안해할 것 같아 가게로 내려와 버렸다.

 

이튿날도 보따리를 든 남매가 골목을 내려와 만둣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누나가 동전 한 닢을 툇마루에 놓으며 중얼거렸다.


“어제 아주머니가 안 계셔서 외상으로 만두 한 개를 가지고 갔구먼요.”


어느 날 저녁나절 보따리를 들고 올라가던 남매가 손을 안 녹이고 지나가길래, 순덕 아지매가 남매를 불렀다.


“얘들아, 속이 터진 만두는 팔 수가 없으니 우리 셋이서 먹자꾸나.”


누나가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맙습니다만 집에 가서 저녁을 먹을래요.” 하고는 남동생 손을 끌고 올라가더니 “얻어먹는 버릇 들면 진짜 거지가 되는 거야”라고 말했다.

 

어린 동생을 달래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찬 바람에 실려 내려와 순덕 아지매 귀에 닿았다.


어느 날 보따리를 들고 내려가는 남매에게 물었다.

 

“그 보따리는 무엇이며 어디 가는 거냐?”


누나 되는 여자아이는 땅만 보고 걸으며, “할머니 심부름가는 거예요.” 


메마른 한 마디뿐이었다.


궁금해진 순덕 아지매는 이리저리 물어봐서 그 남매의 집 사정을 알아냈다. 


얼마 전에 서촌에서 거의 봉사에 가까운 할머니와 어린 남매, 세 식구가 이리로 이사와 궁핍 속에 산다는 것이다. 그래도 할머니 바느질 솜씨가 워낙 좋아서 종로통 포목점에서 바느질거리를 맡기면 어린 남매가 타박타박 걸어서 자하문을 지나 종로통까지 바느질 보따리를 들고 오간다는 것이다. 남매의 아버지가 죽고 나서 바로 이듬해 어머니도 유복자인 동생을 낳다가 이승을 하직했다는 것이다. 


응달진 인왕산 자락 빈촌에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동생이 만두 하나를 훔친 이후로 남매는 여전히 만둣가게 앞을 오가지만 솥뚜껑에 손을 녹이기는 고사하고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고 지나갔다.


“너희 엄마 이름이 봉임이지 신봉임 맞지?” 


어느 날 순덕 아지매가 가게 앞을 지나가는 남매에게 묻자 깜짝 놀란 남매가 발걸음을 멈추고 쳐다본다. 


“아이고, 봉임이 아들딸을 이렇게 만나다니, 하느님, 고맙습니다.”


남매를 껴안은 아지매 눈에 눈물이 고였다.

 

“너희 엄마와 나는 어릴 때 둘도 없는 친구였단다.”


“우리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고 너희 집은 잘살아 인정 많은 너희 엄마는 우리 집에 쌀도 퍼담아 주고 콩도 한 자루씩 갖다 주었단다.”


그날 이후 남매는 저녁나절 올갈때는 꼭 만둣가게에 들려서 속 터진 만두를 먹고 순덕 아지매가 싸주는 만두를 들고 할머니께 가져다 드렸다.


순덕 아지매는 관청에 가서 호적부를 뒤져 남매의 죽은 어머니 이름이 신봉임이라는 것을 알아냈고 그 이후로 만두를 빚을 때는 꼭 몇 개는 아예 만두피를 찢어 놓았었다.


30여 년 후 어느 날 만둣가게 앞에 승용차 한 대가 서고 중년 신사가 내렸다. 신사는 가게 안에서 꾸부리고 만두를 빚는 노파의 손을 덥석 잡았다. 신사는 눈물을 흘리고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그렇다. 그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와 병원 원장이 된 봉임이 아들 최낙원 강남 제일 병원 원장이었다.

 

화려한 장미꽃도, 불타는 노을도, 맑고 푸른 호숫가도 아름답지만,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인간애가 아닐까? 가난하고 외롭고 힘든 삶을 살 때 베푸는 따스한 마음과 손길은 하늘과 땅을 울리는 아름다운 향기가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성서에도 사랑이 제일이라 하셨는가 보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13)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 4:10)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일 4:11)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잠 19:17)

0 Comments
제목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