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칼럼] "잊을 수 없이 아팠던 절망의 날 " -시애틀한인종교칼럼

전문가 칼럼

[나은혜칼럼] "잊을 수 없이 아팠던 절망의 날 " -시애틀한인종교칼럼

한국에서 남편은 신학대학교수로 나는 5급 공무원으로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서울 용산구 산천동에 교회를 개척하여 자비량 목회를 하며 10년 동안 교회 안 단칸방에서 세 아이를 낳고 기르다가 교회를 건축하고 어린 삼 남매를 데리고 미국에 와서 23년이 넘었다. 


한국에서 개척한 교회를 건축하며 많은 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자비량 목회를 하는 것이 떳떳하고 내 고생하는 것이 다 주님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셋집도 없는 사글세를 사는 가난한 성도들은 무조건 죄송해하고 순종했는데 그 열매로 많은 목사님들이 나왔다. 


  그리고 오레곤 주 포틀랜드에 유학생 가족으로 오게 되었다. 처음에 방이 세 개나 되고 응접실까지 있는 유학생 숙소에 짐을 풀며 너무나 좋아서 입이 벌어졌던 것을 잊을 수가 없다. 


차츰 그 집이 너무나 낡고 초라하고 가구들은 다 다른 사람들이 버린 것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하늘을 높이 가리는 울창한 나무들과 푸른 잔디와 화려한 꽃밭과 좋은 공기 속에서 또 교육환경이 좋은 미국의 친절한 초등학교에서 세 아이들을 기르며 앞날을 꿈꾸며 행복했다. 


유학 생활을 마치고 미국에서 교회를 개척하게 되어 목회를 하며 20년이 되었다. 많은 어려움과 괴로움을 통하여 주님의 위로와 사랑과 기적을 체험하며 믿음이 커졌고 무엇보다 기도를 배웠다. 


  개척한 교회가 좀 부흥이 되는 것 같았는데 우리를 초청하여 같이 개척한 여전도사님이 자기의 가족들과 친구들을 모두 데리고 나가서 자기가 목사님이 되어 다시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넉넉하지 못한 재정이었는데 교회는 그야말로 경제적으로 아주 어렵게 되었다. 그래도 그 약한 교회를 떠나지 않고 나와주는 성도들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 


교회가 너무나 약해서 교역자 생활비도 줄 수가 없고 아직 유학생 신분이라 사모가 일할 수도 없고 또 직장에 다니려고 해도 어디를 어떻게 다녀야 할지를 몰랐다. 


그때에 교회를 떠났던 믿음이 있고 십일조하는 성도가 고생하는 목사님을 돕겠다고 다시 돌아왔다가 얼마 후에 도저히 자기의 혼자 힘으로는 감당을 못하고 부담이 되어 다시 다른 큰 교회로 가겠다고 하며 떠나갔다. 


그 성도는 헌금도 잘하고 목사님 책도 사서 보시라고 금일봉도 주는 참으로 귀한 성도였는데 그렇게 가겠다니 남편과 둘이서 집으로 찾아갔다. 


친정어머니도 계셔서 정성을 다해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서 잘 먹으며 간절하게 다시 교회에 나와 달라고 부탁을 하니 그것만은 도저히 안 된다고 그 이야기를 하시려면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다.

 

  얼마나 안타까운지 …. 또 오시라는 다정한 인사를 받으며 그 집을 나오는 두 사람은 마음과 몸이 너무 지치고 힘이 들었다. 믿음이 연약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앞이 캄캄했다. 서울대학교도 다녔고 미국에 와서 학위도 받고 대학교수까지 한 남편이 과거에 한국 남편과 이혼을 하고 미국 사람과 결혼하여 잘 사는 여인들에게 그렇게 사정하고 부탁해야 하는 이 현실에 환멸이 왔다.


  "이것이 주님의 길입니까? 먹고살기 위해 구걸하는 것 같아요." 서울대학교 다니다가 병 고침을 받고 목사가 되어 일심으로 달려온 남편에게는 차마 아무런 말도 못하고 마음 가득 눈물을 흘리며 비감한 마음이 되어 달리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집에 가정불화가 날 때마다 달려와서 도와주었고 가족처럼 지내고 수없이 지나다니던 이 길을 이제 다시는 올 필요가 없게 되었다. 창밖은 우리의 마음처럼 흐리더니 드디어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아픔과 절망이 생각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작은 콘도, 그리고 뒤뜰의 온갖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며 교회에서 이렇게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생활비를 주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황공하다. 


지금의 우리 교회 성도들은 너무 분에 넘치게 사랑을 베풀어주어 언제나 감동하게 만든다. 그래서 언제나 나는 빚진 죄인 같은 마음이 된다. 


저들이 이 좋은 미국에서 여행 한번 가지 못하고 힘든 노동으로 고생하여 번 귀한 돈을 헌금하고 또 좋은 것으로 목사께 대접하고 선물을 하는데 나는 너무 편하고 행복한 것이 죄송스럽다. 


그러나 뿌린 대로 거두게 하시며 갚아주시는 주님이시니 저들이 앞으로 놀라운 형통함과 복을 받을 것을 믿으며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다.


  나그네 인생을 살아가며 잊을 수 없는 아픈 절망의 날들도 돌아보니 아름다운 소중한 추억이 되고 교훈이 된다. 날이 흐린 후에 비가 오고 그 다음 언젠가는 반드시 밝고 화려한 광명한 해가 비치는 날이 올 것이다.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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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일지를 쓴 지 16년이 지났고 36년 전, 일지인데도 그날의 너무나 아프던 마음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된다. 오늘도 개척교회 목회하시는 젊은 목사님들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실까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믿음이 없는 세상은 가난한 목회자들을 멸시하고 자기들의 종으로 생각하고 함부로 대한다. 더구나 사모는 여자들이 더욱 질시하고 무시한다. 그러나 사랑으로 잘 참고 견디면 하늘에서 해같이 빛나리라. 이 땅에서도 자녀들이 잘 되고 풍성한 복을 주시리라. 그래서 사모는 얍복 강가의 야곱처럼 하나님과 사람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 하나님께 이기면 사람이 어찌하겠는가? 하나님께 통곡하고 죽기 살기로 꼭 붙들고 매달리면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져주시고 소원을 들어주신다. 그렇게 싸워서 남편과 자녀를 이 악한 세상에서 지키고 훌륭한 주의 사자들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불꽃 같은 눈으로 보시고 잘 견디라고 하신다. 주의 종은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인정받고 어느 때라도 평강과 행복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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