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칼럼] "충성심" - 시애틀한인문학칼럼

전문가 칼럼

[박미영칼럼] "충성심" - 시애틀한인문학칼럼

일과 사람 관계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고, 듣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은 피하기 때문이다.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보기 싫은 사람도 봐야 할 때가 있다. 아무리 코로나 시대라고 하지만 인간관계는 지속된다.


하지만, 일과 사람 사이에서  배려라는 도리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그저 감정에 몰입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주위엔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멀리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함께 하면 편하고, 즐거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함께하면 불편하고 성가신 사람도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언제 시간이 가는지 모르게 성취감을 느끼지만 하기 싫은 일을 하면  정신적 고통을 받을 수 있어서  차라리 감정에 충실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래서  싫은 것 혹은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애써 만나는 노력을 다른 이에게  솔직히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보기 싫고 너저분한 물건들이 앞에 나열해 있으면 그 물건을 정리해야 하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사람들의 가치관이 예전 지녔던 것과는  견해 차이가 크다고  한 지인은 말한다.


결단력이 쉽고 빠르게 진행되어 가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바쁘게 진행되는 요즘 세상에 뭔가를 빨리 이뤄야 하고, 뭔가를 얻기 위해서 분주하게 살아가는 삶 속에, 한 번쯤 보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한  생각의 깊이가 없는 것 같다고 아쉬워한다.


"이 세상에 하고 싶은 일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일도 맘처럼 쉽지 않은데 굳이 뭐하러 싫은 일과 사람들을 애써 신경 쓰며 살아야 하나 눈앞에 보이는 좋아하는 것을 찾기에도  벅차다"라고 말한다. 


또한, 살면서 하기 싫은 것들이 어쩔 수 없이 부딪히게 된다면 부질없는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기보다는 싫은 느낌대로 표현하는 일도 모두를 위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순수한 느낌대로의 표현은 허용되나 거절을 위해  의도적인 반기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첨부시키는 반칙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인지 편향을 극복하라고 권유하지 않지만 보고 싶지 않은 것, 하고 싶은 것 사이에는 반드시 감정이 아닌 최소한의 규칙이 있어야 한다. 


작은 일이라도 맡겨지면 곧 감정이 나에게 주어지면 최선을 다하는 것도 나에 대한 충성심이다. 


반드시 단체에서만 충성이라는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우선 충성심을 발휘해야 한다.


학생은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충성이고, 직장인은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충성이고, 나이에 걸맞게 배려하고 싫어하는 사람도 포용할 수 있는 것도 자신에 대한 충성일 것이다.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므로 보고 싶지 않은 것까지 포용하고 볼 수 있는 자들이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 리더는 반드시 단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질서를 정립시키는 일도 중요한  리더의 요소이기 때문이다.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 일거리만  나의 주위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살면서 알아가는 것은 함께 하기 싫어하는 것들이 늘 내 주위에 너무나 많이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매번 반박하고 불평하고 피할 수만은 없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기 싫은 것들과  마주하게 된다. 하기 싫은 것들에 대한 시간 낭비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데 우선순위를 두고 생활한다

면 그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 점점 의식에서 멀어져 공중에 흩어지게 될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충성하다 보면 성취감이 두텁게 쌓이기 시작해 하기 싫은 것들도 고통 없이 의무를 수행하는 습관과 노력이 자연히 따른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행복은 보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한 불행을 앞서 이겨 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위해 충성심을 발휘하는 건  쉽지 않다.  버거운 일과 사람도 인생의 일부분이라 생각해야 가능한 일이다.


특히, 인간관계는 세심히 노력을 기울여도 오해가 발생하기도 하고, 수십 년 두터운 관계라도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 


공정한 충성은 곧 자신의 정체성이므로 감정의 소요보다는  균형의 감각에 의지하는 것이 편하게 사는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0 Comments
제목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