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칼럼] "지난 가난한 날의 추억 " -시애틀한인종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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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혜칼럼] "지난 가난한 날의 추억 " -시애틀한인종교칼럼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참으로 아쉬운 것은 “아이들과 좀 더 아름다운 추억을 쌓았어야 했는데 ⋯” 하는 것이다. 


이 넓고 좋은 미국에서 아이들하고 여행하며 즐거운 시간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하고 이제는 모두 커서 제각기 바쁘게 사니 다 같이 모이기가 참으로 힘들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날 참으로 웃음이 흘러나오는 어느 날 밤의 추억을 잊을 수가 없다. 


한국에서 남편은 신학대학교수로 나는 5급 공무원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우리가 개척한 산천동 교회의 조그만 단칸방에서 세 아이를 낳으며 10년을 살았다. 


아빠와 엄마가 다 직장생활을 하니 저들이 어리지만 엄마의 손길이 참으로 그리웠을 것이었다. 그러나 밤에는 다 같이 이불을 펴고 나란히 누워서 같이 자는 것이 참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낮에는 직장에 다녀오면 밀린 산더미 같은 빨래도 해야 하고 음식도 해야 하고 아이들을 안아주고 돌볼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7살, 6살 1살짜리 세 아이들을 데리고 아빠를 따라 미국 오레곤 주 유학생 낡은 기숙사에 오게 되었다. 방이 세 개나 되고 응접실이 있고 너무나 대궐이었다. 


그때부터 아이들과 각방을 쓰고 막내는 어리다고 데리고 잤다. 그런데 발로 차고 너무 힘이 들어 막내를 따로 자게 하며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 아이들도 밤이 되면 가정예배를 드리고 다 각각 자기 방으로 자러 가는 것이 무언가 좀 아쉬운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얘들아, 오늘밤 우리 모두 응접실에서 같이 잘까?” 하니 “예 좋아요.”하며 대찬성이었다. 이불을 붙여서 나란히 깔고 다섯 명이 나란히 누워서 희희덕거리며 즐거워하던 생각이 난다.


  지금도 그때에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하던 생각이 나며 미소를 짓게 된다. “추억이 겨우 그것뿐이라니 …”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여름에 교회 수련회로 즐거웠던 것을 빼면 먼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고 또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때마다 가정예배를 드렸는데 "하나님 차를 사게 해 주세요. 다른 집은 두 대씩이나 있는데 우리는 한 대도 없어요."라고 꼬마들이 기도한다. 


우리는 공부가 끝나면 곧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으로 아이들에게 차를 위해서 기도하지 말라고 해도 “예”라고 하고 기도시간에는 “꼭 차를 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10만 마일이나 된 중고차를 1000불로 사게 되었다. 


차가 때때로 고장이 나면 그때마다 교회 집사님이 정성을 다해서 고쳐주셨다. 차가 생긴 후부터 아이들이 기도시간에 “여름방학 때에 LA 디즈니랜드에 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한다. 


우리는 유학생으로 학업을 마치면 곧 학교로 돌아갈 예정인데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미국 디즈니랜드에 못 갈 것 같으니 아이들이 기도하는가 보았다. 


아무리 말려도 아이들이 계속 기도를 하고 LA의 형제들이 한번 다녀가라고 초청을 해서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런데 주위에서 사람들이 남편이 운전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너무 멀고 산도 넘어가야 하는데 차가 너무 낡아서 위험하다고 말리는 것이다. 


그런데 남편이 용감하게 아이들이 계속 기도한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고 LA로 떠났다. 큰 차가 옆에서 지나갈 때면 내 목이 뻣뻣해지고 무서워서 떨었고 지도를 보면서 쉬지 않고 달려서 가다가 휴게소에서 잠깐 쉬면서 잠을 자는데 날씨는 무덥고 모기 때문에 창문을 열어놓고 잘 수도 없고 너무나 고생스러웠다. 


다섯 명이 승용차로 먼 길 여행을 한다는 것은 너무 힘든 것을 아이들도 그 때에 알아서 다시는 승용차로 먼 길 여행을 가자고 안 하게 되었다.


  LA에 궁궐(?) 같은 언니 집에 도착하여 형부가 보니 차에 엔진오일이 하나도 없어서 큰일 날 뻔했다고 한가득 채워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낡은 차로 그렇게 무모하게 다녀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주님께서 눈동자같이 지켜주셨다는 것을 느낀다. 


언니와 형부께서 디즈니랜드, 유니버살 스튜디오, 시랜드 등 곳곳에 구경을 많이 시켜주고 언니 집 수영장에서 수영도 하면서 아이들이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포틀랜뜨 집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데모로 학장님이 바뀌게 되고 학교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되고 타코마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차가 타코마로 이사 와서까지도 몇 년 동안이나 계속 우리의 발이 되어 주었는데 때때로 고장이 나서 애를 태웠다. 


  "하나님 차가 길에서 서지 않고 고장 나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아이들과 간절히 기도했다. 


낡은 차는 고속도로에서도, 동네 길에서도 자주 섰고 참으로 아슬아슬했지만 때마다 천사를 보내주셨고 지켜주셨다. 


차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아들이 뉴욕 로펌에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 자기도 빚도 많을 텐데 아빠, 엄마 차를 사라고 난리를 치고 좋은 차를 계속하여 몇 대나 사주었다. 


이제는 차가 그렇게 서지도 않는데 … . 아이들은 다 성장해서 집을 떠나갔고 두 내외만 남은 우리 집은 이제부터 더 바쁘고 보람있게 살기를 준비한다. 


글도 써야 하고 선교도 건강이 있을 때에 부지런히 다녀야 한다. 사진들을 스캔하여 컴퓨터에 넣으며 흘러간 지난날을 다시 돌아보니 그리움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얘들아 잘하고 있지? 엄마도 잘 할 거야.”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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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아이가 다 떠나고 난 후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해서 순수문학에서 시인으로 창조문예에서 소설가로 등단하게 되었고 크리스천 타임스(동부 아틀란타)와 뉴스파워 인터넷 신문에도 20여 년간 지금까지 칼럼 연재 필진으로 있고 책도 많이 발간하였다. 남편도 신구약 책들의 해설집을 많이 발간하였고 앞으로의 우리의 남은 생이 전적으로 주님의 뜻을 행하려는 간절한 소원으로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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