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주칼럼] "목사님의 딸(1)" - 시애틀한인종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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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주칼럼] "목사님의 딸(1)" - 시애틀한인종교칼럼

지금 세계의 이목은 유럽에서 최강국인 독일에서 최장수 총리직을 잘 감당하고 물러난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전 독일 총리에게 집중되고 있는 듯하다. 


그녀는 1954년 7월 17일에 서독 함부르크에서 호르스트 Kasner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앙겔라의 아버지는 루터교 목사로 함부르크 대학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기도 했다고 한다.


동독이 서독과의 통로를 차단했을 때 약 250만의 동독인들이 자유와 보다 나은 삶을 찾아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했다. 그러나 이때 앙겔라의 아버지의 생각은 달랐다. 


목회자들이 다 서독으로 옮기면 동독에 남아 있는 신자들은 누가 돌보고 지도할 것인가 라는 목회자의 사명감을 품고 2주밖에 안 된 딸을 포대기에 싸안고 서독에서 동독으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그는 “동독인들도 기독교를 알고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그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신학적 발판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독 공산정부는 Kasner 목사를 경계했으나 북한 공산정부와 달리 그를 추방하거나 정치범 수용소와 같은 곳에 감금하지 않고 작은 시골 교회에서 목회를 하도록 허락했다.

 

앙겔라의 어머니는 영어와 라틴어를 가르치는 교사요 지성인이었다. 앙겔라는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소녀였지만 동독 생활에 잘 적응하며 자랐다. 


앙켈라는 동독 청소년들이 잘 모르는 신학이나 교회사에 대해 매우 정통했다. 나아가 기독교적 도덕과 인생관에 대해서도 충분히 배웠다. 앙겔라의 어머니는 홈 스쿨링으로 자녀들이 믿음과 지식의 세계를 넓혀주었다.


이런 영향을 받은 앙겔라는 정치, 사회, 언어 분야에 깊고 폭넓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관을 확고히 터득하며 자라났다. 아버지는 그녀에게 정치적 역량을 심어주었고, 어머니는 가정교육을 통해 자유와 책임, 인내와 성실을 가르쳐주었다.


독일인들은 이렇게 준비된 앙겔라를 선택했으며 그녀가 전 동독 출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로 뭉쳤다. 그녀는 18년 동안 능력, 수완, 헌신, 및 성실함으로 8천만 독일인들을 이끌었다. 그동안 그녀는 탈법과 비리가 없었다. 


그녀는 어떤 친척도 지도부에 임명하지 않았다. 그녀는 영광스러운 지도자인 척하지 않았고 자신을 앞선 사람들과 싸우지 않았다. 


그녀는 어리석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진 찍히려고 베를린 골목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녀는 패션의 유혹에 넘어가지도 않았다. 부동산, 자동차, 요트 및 개인 제트기를 사지도 않았다.


특히 지난 12년 동안 메르켈은 총리로 글로벌 금융위기와 난민 정책의 소용돌이를,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촉발된 유럽의 분열 위기를 모두 이겨냄으로 지도자의 탁월함을 보여주었다. 


앙겔라 메르켈은 독일을 그전보다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고 후임자들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조용히 물러났다. 


그런 앙겔라에게 독일국민들의 반응은 국가 역사상 전례가 없는 예우를 자발적으로 표현했다. 


도시 전체가 집 발코니로 나아갔고, 인기 시인이나 연주자들 및 기타 시민 단체들도 없는 가운데 6분 동안 따뜻한 박수로 그들의 존경과 사랑을 표현했다. 


다시 말씀드리는데 이것은 자발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우리의 현실과 달리 찬사, 위선, 공연, 북소리는 없었다. “글로리아 앙겔라”를 외치는 일도 없었다. <다음 호에 계속>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 33:12)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 (시 3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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