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열모칼럼] "忘憂里 共同墓地에서 느낀 권력의 無常" -시애틀한인문학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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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열모칼럼] "忘憂里 共同墓地에서 느낀 권력의 無常" -시애틀한인문학칼럼

나는 최근에 서울 근교에 위치한 망우리 공동묘지에 간 적이 있다.  


이때 함께 간 친구가 말하기를 “잠깐 가볼 곳이 있으니 따라 오라”는 것이다.  


그래서 뒤따라 가보니 그 곳에는 관리가 부실해 잡초가 무성한 분묘 다섯 기가 한 곳에 있었다. 


그 다섯 기 중에서 비석이 있는 분묘는 하나뿐이고, 나머지 네 기는 비석이 없다.  하나뿐인 그 비석에는 다음과 같은 애절한 비문이 새겨져 있다. 


“康姬야 康姬야 내 사랑하는 康姬야, 춥다고 떨지 말고, 어둡다고 무서워 말라. 천주님께서 길이 보호하시니 고이 잠들어라”고 적혀있다. 

 

나를 안내한 그 친구의 설명에 의하면 이 다섯 기의 분묘는 1940년대에 이승만 대통령 밑에서 부통령으로 있던 이기붕(李起鵬) 일가의 묘소라고 한다. 비석이 있는 분묘에 묻힌 康姬는 아버지 이기붕이 부통령으로 재직할 때에 사망했기 때문에 비석이 세워졌다.

    

그런데 막상 권세를 누리던 나머지 가족의 분묘는 1960년의 4.19혁명 때에 묻히고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비석조차 없이 그냥 방치된 것이다.

       

나는 이날 이 묘역에서 우리의 옛 속담 “정승 집에서 개가 죽으면 조객이 몰려오지만 막상 정승이 죽으면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말대로 권력이란 얼마나 무상한 것인지 절실하게 깨달았다. 


이기붕 부통령과 이승만 대통령의 인연은 일제 식민지 시절 이승만 박사가 미국에서 망명생활 할 때에 시작되었다.

  

이기붕은 당시 미국에서 고학으로 대학을 마치자 그곳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이승만 박사의 비서로 일하다가 8.15광복 직후 이승만 박사를 따라 귀국해 서울 市長, 국방부 장관, 국회 의장을 역임했다.


이러한 시기에 이기붕의 부인 <박마리아>는 자신의 맏아들 李康石을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로 삼을 정도로 이승만 대통령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친숙하게 지내면서 정치적 탐욕에 빠져들었다.


이기붕은 1956년에 치른 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의 이승만 대통령 후보와 함께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 이 선거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申翼熙 후보는 선거 유세를 위해 호남지방에 가다가 열차 안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로 인해 자유당의  이승만 후보는 무투표 당선되었으나 부통령 후보 이기붕은 민주당의 張勉 후보에게 패배했다.


1960년에 치른 대통령 선거도 1956년의 선거 때처럼 이승만 대통령 후보는 무투표 당선되고, 오직 부통령 후보의 경쟁이었다. 


이번 선거에서도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趙炳玉 후보가 선거를 바로 앞두고 갑자기 병 때문에 미국에 가서 치료받다가 현지에서 별세했으니 이번에도 이승만 후보는 무투표 당선되고 부통령으로 출마한 이기붕 후보와 민주당의 장면 후보의 대결이 되었다.

 

이에 <박마리아>는 부통령으로 출마한 이기붕을 이번만은 기필코 당선시키고자 당시 내무부 장관으로 있던 崔仁圭와 공모해 유례없는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이 부정선거가 이른바 <3.15 부정선거>인 것이다.


이와 같이 <3.15 부정선거>는 이승만 후보와는 전연 상관없고, 오직 부통령 선거전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 <3.15 부정선거>로 인해 발생한 4.19혁명에서 이기붕 일가는 데모대의 보복이 두려워 경무대(현 청와대) 별관으로 피신했다.

  

이들이 피신한 지 1주일만인 4월 26일에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下野) 성명을 발표하고 경무대를 떠나 사저인 이화장으로 돌아갔으니 이기붕 일가만 경무대에 남게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떠난 지 2일 뒤인 4월 28일에 경무대 별관에 있던 이기붕 일가가 거처하는 별실에서 네 발의 총성이 들렸다. 


이 총성은 이기붕의 장남이자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인 李康石 육군 소위가 정복 차림으로 나타나 권총으로 아버지 이기붕, 어머니 박마리아, 동생 李康旭을 사살하고 자기도 스스로 쏴서 함께 그 자리에 쓰러진 참사였다.

 

이와 같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이기붕 일가는 장례식도 없이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혔으니 이 묘역에서 권력의 무상을 새삼 절실하게 느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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