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칼럼] 큰딸의 결혼식 - 시애틀한인뉴스교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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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혜칼럼] 큰딸의 결혼식 - 시애틀한인뉴스교회칼럼

  1981년 12월에 초등학교 2학년을 다니다 미국으로 온 딸은 1991년 고등학교 졸업할 당시에 학교에서 한 명 뽑는 공주(princess)로 뽑혔고, 카운티(Pierce County) 20개의 공립학교에서 뽑힌 공주들을 모아 훈련시키고 그 중에서 한 명 여왕(queen)을 뽑는데 59년 역사상에 한국인, 아니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수선화(daffodil) 여왕으로 뽑혀 각 카운티의 꽃 축제행사 퍼레이드에 참가하고, 공부도 학교에서 수석을 하여 주지사 상도 탔고, Washington Scholar에 뽑혀 대학교 수업료 전액을 장학금으로 받게 되었다. 한국말과 글도 잘하여 많은 부모님들이 며느리로 삼으려고 탐을 내었는데 자기가 다니던 대학교 동창하고 연애를 해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 암세포 전문의의 아들로 딸의 전도로 은혜를 받게 되고 우리 교회 1부 영어예배에서 학생부 찬양대를 지휘하고 학생부를 딸과 같이 인도하면서 우리 교회 성도들의 사랑도 받았고, 키도 우리 교회에서 제일 컸다. 딸이 선택하여 간 대학은 벨링햄에 있는 웨스턴 워싱턴 대학교인데 딸이 갔던 당시에는 아시아인 학생이 별로 없는 학교였다. 딸이 들어가서 신앙클럽을 만들어 금요일마다 열심히 모이고 활동을 하면서 말씀을 전해 달라고 아버지를 초청해서 가보고 뜨거운 대학생들이 너무나 귀해서 눈물이 나고 감동이 되었다. 교회의 학생부 전도사는 우리 딸이 대학을 가면 자기는 일을 못한다고 하더니 한국으로 가고 말았다. 할 수 없이 딸을 오라고 해서, 금요일 밤에 학생부를 인도하기로 하고 대학교의 기도 모임은 목요일로 옮겼다. 금요일 저녁에 교회에 와서 주일예배를 마치고 3시간을 운전하여 학교로 돌아가는 바쁜 생활을 하면서도 모두 A학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은혜일 것이다. 

  그 지역으로 오대원(David Ross) 목사님이 오시고 선교센터를 세우시고 대학생 사역을 하게 되어 딸과 만나게 되었고 먼저 사역하고 있는 딸의 도움도 받게 되었다. 아들도 그 대학교에 들어갔고 많은 한국 학생들이 그곳에 몰려들어 이제는 한국 학생들이 제법 많아졌다. 그렇게 오대원 목사님 부부를 만나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고 결혼식 주례도 한국말과 영어로 해주시고 딸 내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딸과 사위가 동갑으로 같이 졸업을 했고 결혼을 하겠다고 했으나 남편은 언제나 한 푼도 돈을 모아본 적이 없고 언제나 적자인 고로 저희들이 다 알아서 해야 했는데 시집에서 음식, 예복, 예물, 꽃 등 모든 비용을 다 대주었다. 예식장인 교회를 고상하게 하얀 꽃으로 온통 장식하였는데, 시어머니가 꽃집을 하고 계시기도 했기에 더 잘 할 수가 있었다. 멋진 예복의 남자 청년들이 양가의 할머니들을 에스코드해서 식장에 들어가고 두 어머니들이 촛불 점화를 하고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은혜로운 목사님의 사회와 주례사가 있고 멀리 뉴욕에서부터 날아와 주신 에디 전도사님이 은혜롭게 축가를 불러 주셨다. 목사님이 되신 에디 목사님은 우리 아이들과 젊은 학생들이 아주 좋아하는 목사님이신데 아직도 총각이시다.

  오대원 목사님께서 누구든지 신랑 신부에게 복을 빌어주고 싶은 사람들은 다 나와서 기도해 주라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또는 자기 자리에서 일어서서 신랑 신부를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를 해주었다. 맨 나중에 양가의 아버지들이 나와서 인사말씀을 하라고 하셔서 남편과 시아버지가 인사를 하는데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아니라 딸을 얻었다고 사랑할 것이라고 말하고 시부모님들이 울먹거리며 감격했는데 세 아들 중 막내아들이 처음으로 결혼하는 것이었기 때문인가 보다.

  한국에서 오신 큰 형님 내외분과 내 여동생, L.A.에서 오신 형제들과 올케가 빠짐없이 모두 와 주었고 여자들은 한복을 입었는데, 딸이 다섯인 나의 친정 자매들과 올케언니까지 입은 한복으로 식장이 화사하였고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했다. 결혼식이야 가족들이 다 모이고 즐겁고 기쁜 것은 당연한 일인데 나의 친정 일곱 남매의 자녀들 중에서 우리 딸이 제일 처음으로 하는 결혼식이라 더 설레었다. 미국에서 가게들을 하면서 어렵게 시간을 내어 오셔서 관광도 해드려야 했는데 결혼식과 피로연이 끝나고, 시집에서 2층으로 된 큰 유람선을 빌려서 한 시간 동안 양가의 가족들과 친구들이 함께 맛있는 음식과 음료수를 들면서 아름다운 시애틀 바다를 돌았는데 날씨가 너무나 화창하고 좋았다. 그리고 화사한 남녀 청년들이 배 2층 갑판에서 기타를 치고 계속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이 꼭 찬양 집회를 하는 것 같았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친정 7남매도 오랜만에 모두 모여 참으로 즐겁고 행복한 시간으로 끝없는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사돈들과도 화기애애한 친교를 나누었는데 시부모님과 두 양가 할머니께서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었다.

  이 결혼식은 세상 결혼식과 같지 않고 처음부터 모든 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천국 잔치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고 은혜로웠다. 이 모든 것을 딸과 사위가 계획했고 전날까지 비가 왔는데 결혼식 날은 아주 화창하게 밝은 빛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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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생 때부터 결혼 후에 세 아이를 낳고 젖을 물리면서 계속해서 여름마다 여러 교회들을 돌면서 자기가 다니는 미국교회 대학생들을 데리고 한 해도 빠짐이 없이 여름성경학교와 여름방학 아카데미를 인도해 왔고 케냐,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멕시코 등에 학생들을 데리고 선교를 갔었는데 작년에만 펜데믹으로 여름 선교와 아카데미를 인도할 수가 없었다. 뜨거운 사명감으로 교회를 세우고 매일 새벽기도회를 나가면 저녁 늦게 집으로 들어오는 주의 종인 딸이 교회를 개척한 지 4년 만에 큰 길가 좋은 지역의 미국교회를 사서 내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고 대학생인 딸과 고3인 아들이 운전도 하고 교회에서 드럼도 치고 찬양을 인도하는 아버지와 같이 열심히 교회 일을 하고 있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피 끓는 학생들과 청년들이 이 미국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의 교회 되게 해 달라고 나는 안타까운 호소를 주님께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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