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마약차단 약속에 관세 유예…향후 성과·협상에 '명운' 달려
무역협정국 '加·멕' 관세 부과에 美내부 여론 악화·물가상승 불안도 영향
멕 "국경에 군 1만명 배치"…加 "펜타닐 차르 임명, 카르텔 테러단체 지정"
한 달 시간 벌었지만 美 '무역적자' 제기 가능성에 향후 협상 험난할 수도
(워싱턴=연합뉴스) 박성민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캐나다와 멕시코를 향한 '관세 폭탄'을 한 달간 유예한다고 밝힌 것은 일단 이들이 마약 및 불법 이민자 유입을 선제 차단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지난 1일 트럼프 대통령이 이들 두 나라뿐 아니라 중국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을 두고 미국 내에서 '경제 악영향'을 내세워 거센 반발이 이어진 점도 관세 시행을 일단 미루고 협상에 나서기로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에 대해 25%의 전면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서명한 행정명령을 보면 그는 멕시코와의 남부 국경에서 "불법 이민자와 불법 마약성 진통제 및 기타 약물의 지속적 유입이 미국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갱 조직원, 밀수업자, 인신매매범, 온갖 종류의 불법 마약이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미국의 치안과 공중보건에 막대한 위해를 끼쳤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멕시코의 마약 밀수 조직(DTO)이 다국적 카르텔과 협력·공모해 비밀 활주로, 해상 항로, 터널, 육로 등을 통해 인간 운반책을 이용해 미국으로 마약을 유입시키고, 이들 DTO가 멕시코 정부와 '묵과하기 어려운'(intolerable)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고 비판했다.
멕시코 정부가 미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 행위를 저지하기 위해 충분한 관심과 자원을 투입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부추겼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부 국경을 접한 캐나다에도 비슷한 이유로 관세 부과를 결정했다.
대(對)캐나다 관세 부과 행정명령에는 캐나다에서 펜타닐과 마약성 진통제 합성 실험실을 운영하는 멕시코 카르텔의 존재가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캐나다에서 지난해 유입돼 압수한 펜타닐 양이 멕시코에서 넘어온 양보다 적었지만, 무려 미국인 950만명을 죽일 수 있는 양이었으며 캐나다 당국이 마약 유입을 근절하기 위한 협조에 미흡했다는 점을 관세 부과 배경으로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 위협에 멕시코와 캐나다 정상들은 이날 앞다퉈 국경 보호 강화를 통해 미국으로의 마약 및 불법 이민자 유입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약속을 내놓았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오전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좀비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 등 마약과 불법 이민자를 선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멕시코 군 병력 1만명을 국경에 투입하겠다며 '성의'를 보였고, 이를 트럼프 대통령이 수용하면서 전격적인 관세 유예 조처가 내려졌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역시 이날 오전에 이어 오후까지 2차례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를 한 끝에 한 달의 관세 유예 조치를 얻어냈다.
국경 강화를 위해 13억 달러를 투자할 뿐 아니라 1만명의 요원을 국경 보호에 투입하는 한편 '펜타닐 차르'를 임명하고 마약 카르텔을 테러리스트로 지정하는 등의 약속을 내놓았다.
1차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게 국경 안보 협조라는 점을 깨닫고, 부랴부랴 대책을 만들어 이를 2차 통화에서 제시한 끝에 트럼프를 진정시킨 것으로 보인다.
앞서 케빈 해셋 미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이날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이번 관세 부과 결정은 '마약 전쟁'이라며 캐나다가 이를 '관세 전쟁'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서명 이후 언론을 비롯해 미국 내 여론이 거센 비판을 쏟아낸 것도 관세 보류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보수 성향 경제지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캐나다·멕시코에 대한 관세 부과 결정에 "아무런 이유가 없다"며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무역 전쟁"이라고 비난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에게 관세는 그 자체가 목적이며, '도금시대'(Gilded Age·1865년 남북전쟁 후 미국에서 자본주의가 급속히 발전한 28년간의 시대)의 비전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수입원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번 관세 부과가 미국 내 물가를 올려 소비자들에게 큰 부담을 지울 것이라는 지적이 쏟아지면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지친 미국인들에게 불안과 우려를 가중시킨 바 있다.
북미 대륙의 이웃 국가인 이들이 자유무역협정(FTA)인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으로 묶여 있어 서로 보복과 맞불 조처를 주고받는다면 세 나라 모두 경제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고, 결국 그 부담과 손실은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것이다.
결국 멕시코와 캐나다 모두 급한 불을 끄고서 한 달의 시간을 확보했지만, 미국과의 추후 협상 과정이 녹록지는 않을 전망이다.
한 달간 국경에서의 선제적 차단 노력이 실질적 효과를 보여주지 못할 수도 있고, 미국 측에서 마약이나 불법 이민자 문제뿐 아니라 막대한 무역적자 해소라는 통상 이슈를 본격적으로 들고나올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경제 구조상 미국 의존도가 높은 탓에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 위협에 한차례 '굴복'한 터라 향후 협상 과정에서 미국의 요구에 끌려다닐 개연성도 커 보인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과의 통화에서 '미국의 대(對)멕시코 무역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멕시코가) 노력해야 한다'는 의중을 밝혔다고 전한 바 있다.
캐나다 역시 대미 무역흑자를 보고 있어서 국경 보안 문제만 해결했다고 관세 위협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뤼도 총리와의 1차 통화 내용을 전하는 트루스소셜 글에서 "캐나다는 심지어 미국 은행이 그곳에서 개점하거나 영업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하며 "그것과 다른 많은 것들은 다 왜 그러는 것이냐"라고 반문했다.
그는 특히 2차 통화에서 캐나다와의 합의 사실을 전하면서 "토요일(1일)에 발표된 관세는 캐나다와의 최종 경제 협상(final Economic deal)이 구축될 때까지 유예될 것"이라며 '경제 협상'을 강조했으며, "모두를 위한 공정함!"(FAIRNESS FOR ALL)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min2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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