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즈볼라 장례식 참석' 이유로…美 비자 있어도 공항서 추방
레바논인 교수 '최소 48시간 구금' 법원 명령에도 36시간만에 추방
美 "테러리스트 미화, 비자 거부 사유"…대학들 유학생 출국 주의 당부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모국 방문 후 미국에 돌아오려던 레바논 국적의 미 브라운 대학 교수가 유효한 비자를 보유했음에도 공항에서 추방됐다.
미 당국은 당사자가 지난달 레바논에서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의 장례식에 참석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17일(현지시간) 미 NBC 뉴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신장이식 분야 전문가로 브라운대 조교수로 임용된 라샤 알라위에(34)는 이달 13일 미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으로 입국하려다 구금됐다.레바논에서 의대를 졸업한 알라위에 교수는 2018년부터 J1 비자로 미국에 체류하며 3개 대학에서 의사 펠로십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다.
그는 최근 고숙련 외국인 근로자에게 발급되는 H-1B 비자를 받았고, 지난달 가족을 만나러 방문했다가 미국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알라위에 교수의 사연은 그의 사촌이 14일 청원을 제기하며 알려졌다.
그는 청원서에서 알라위에 교수가 유효 비자를 소지하고 있었는데도 정당한 이유 없이 공항에 구금됐으며 이 기간 변호사 등과도 연락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매사추세츠주 연방지방법원은 14일 저녁 알라위에 교수를 최소 48시간 구금하고, 추방할 경우 미리 법원에 통보할 것을 명령했다.
17일 법정에서 대면 심리도 예정돼 있었지만 법원 명령이 나왔을 때 알라위에 교수는 이미 보스턴 공항에서 비행기에 탑승한 상태였다. 공항에 36시간 동안 구금됐던 그는 프랑스 파리를 거쳐 레바논으로 추방됐다.
법원은 15일 관세국경보호청(CBP)이 법원의 사전 통보 명령을 고의로 위반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있다며 CBP에 해명을 명령했다.
이에 CBP를 관할하는 국토안보부는 알라위에 교수가 구금 중 조사과정에서 지난달 나스랄라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레바논 베이루트에 간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나스랄라는 지난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헤즈볼라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미국을 헤즈볼라를 테러단체로 지정하고 있다.
나스랄라의 장례식은 사망 5개월여 만인 지난달 23일 베이루트 교외의 대형 경기장에서 수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대대적으로 치러졌다.
미 연방 검찰은 알라위에 교수가 나스랄라와 이란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사진을 휴대전화에 보관하고 있었으며, 미국에 돌아오기 직전에 사진을 삭제했다고 말했다.
미 국토안보부는 성명을 내고 "비자는 권리가 아니라 특권"이라며 "미국인을 죽이는 테러리스트를 미화하고 지지하는 것은 비자 발급이 거부될 만한 충분한 근거"라고 말했다.
다만 국토안보부는 알라위에 교수가 수만 명이 운집한 장례식에 참석한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밝히지 않았다. 그가 범죄 또는 이민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는지에 대한 질문에도 응하지 않았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보도했다.
알라위에 교수는 이민국 조사에서 자신은 헤즈볼라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자신은 나스랄라 등의 사진을 공유하는 친구, 가족들과 같은 왓츠앱 그룹에 들어있었던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WSJ은 전했다.
그는 나스랄라가 시아파 무슬림 커뮤니티에선 '종교적 인물'로 존경받는다며, 자신은 그의 정치적 견해 때문이 아니라 종교적, 영적 가르침 때문에 그를 따른다고 말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가 법원의 제동에도 외국인을 추방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 이슬람관계위원회(CAIR)는 알라위에 교수를 즉시 재입국 시킬 것을 요구했다.
CAIR는 엑스(X·옛 트위터)에서 "적법절차에 대한 노골적 무시는 무슬림과 국제학자들을 표적으로 삼는 이민법 집행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미 대학들은 봄방학을 앞두고 유학생들에게 출국을 자제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브라운대는 16일 교내 구성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비자나 영주권을 갖고 있더라도 개인적인 해외여행은 연기할 것을 권고했다.
이밖에 다트머스 칼리지, 컬럼비아대 등도 유학생들에게 해외여행에 주의할 것을 요청했다.
noma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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