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없이 채찍만 든 트럼프…인도와 무역협정 체결에 도움될까
인도 시장 개방 압박하면서도 관세는 일부만 철회…인도 국내여론 악화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기자 = 목표 달성을 위해 상대방을 몰아붙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스타일이 인도와의 협상에선 역효과를 내는 양상이다.
미국의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29일(현지시간) 한 때 낙관적으로 보였던 미국과 인도의 무역 협상이 난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도 시장을 대폭 개방하라는 미국의 요구가 인도의 국내 정치 상황과 맞물려 협정 체결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당초 미국은 인도와 조기에 무역협정을 체결할 것으로 예상됐다.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직후 인도 쪽에서 먼저 적극적으로 무역 협상에 착수했고, 농산물과 에너지 구매, 비관세 장벽 개선 등 일부 사안에 대해 합의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27일 백악관 행사에서 인도와의 무역 협상에 대해 "전면적인 무역 장벽 철폐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믿기 어렵겠지만 합의가 돼 있다"고 말했다.
앞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장관도 "양국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했기 때문에 조만간 인도와의 협정이 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도와의 무역협정 체결 시점은 트럼프 행정부가 기대하는 것처럼 임박하지 않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미국은 인도에 대해 시장을 개방하라고 강력하게 압박하면서도, 인도에 대한 관세는 일부만 철회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채찍만 휘두르고 당근을 주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법이 오히려 역풍을 불렀다는 것이다.
시에드 악크바루딘 전 유엔 주재 인도대사는 "인도인들이 가장 분노하는 것은 자국 정부가 외국 지도자에게 굴복하는 모습"이라며 "상호 이익이 될 수 있었던 무역협정이 이제 미국에 대한 조공으로 인식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인도의 국내 여론을 전혀 감안하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도 이 같은 분위기에 일조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미사일 공격을 주고받은 인도와 파키스탄을 자신이 중재했다고 주장해왔지만, 인도는 파키스탄 문제에 대해선 제3국의 중재를 수용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도 "인도는 과거에도 제3국의 중재를 받아들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이라면서 불편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에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 같은 주장을 펼쳤다.
또한 백악관에서 파키스탄 군부 실세인 아심 무니르 원수를 접견하면서 인도에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불신이 증폭했다는 것이다.
미국-인도 전략 파트너십 포럼의 무케시 아기 대표는 "지금 분위기에선 인도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려도 국민 눈에는 트럼프에게 굴복한 것으로 보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도의 복잡한 국내 사정도 협상 타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인도가 세계 주요 경제국 중 가장 높은 17%의 평균 관세율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수백만 명에 달하는 소규모 농업 종사자들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소규모 농업 종사자들은 인도에서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모디 총리도 물러설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임기 때도 인도와의 무역협정을 추진했지만, 농산물과 IT, 의료기기 시장 접근권 확대라는 핵심 의제를 둘러싼 이견 때문에 결국 협정을 포기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과 인도는 다음 달 초까지 1단계 수준의 예비 협정을 발표할 가능성이 있지만, 완전한 양자 무역 협정은 최소 1년 이상 더 걸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kom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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