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무기에 계속 의존? 자체 방위산업 육성?…유럽의 딜레마
향후 10년간 국방부문 투자 거의 2배로 늘렸지만 '美 신뢰 약화'로 고심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려는 유럽 국가들이 국방부문 투자를 거의 2배로 늘리기로 했으나 미국의 첨단무기에 계속 의존해야 할지 혹은 자체 방위산업을 육성해야 할지를 놓고 고민중이라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6일(현지시간) 전했다.
NYT에 따르면 유럽 국가들은 향후 10년간 국방부문 투자에 총 14조 유로(2경2천400조 원)를 쓸 예정이며 이런 투자가 유럽 내 방위산업 육성에 도움이 될 것으로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큰 돈이 유럽의 첨단기술 진흥을 유발할지는 불확실하다는 게 NYT의 지적이다.
미국 기업들이 생산하는 무기 중 최고 성능을 지닌 제품들 중에는 유럽 기업들이 이와 비견할만한 성능을 지닌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록히드 마틴의 스텔스 전투기 F-35가 그렇다.
5세대 전투기이며 여러 나라들이 이미 실전에 배치한 이 제품과 성능이 비슷한 유럽산 전투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미국은 2030년께에 배치가 시작될 것으로 전망되는 6세대 전투기 개발 사업도 이미 진행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F-35뿐만 아니라 패트리엇 미사일 시스템, 로켓발사기, 고성능 드론, 위성정보를 활용해 유도되는 장거리포, 통합명령통제시스템, 전자전 및 사이버전 수행용 장비 등도 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또 이런 첨단 군사장비들을 운용하기 위한 소프트웨어도 대부분 미국에서 수입한다.
유럽 국가들은 미국산 무기체계에 이미 투자를 많이 했기 때문에 앞으로 새로 구매하는 무기들도 기존 구입 무기와 호환성을 유지토록 하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이런 여건 때문에 유럽 국가들이 미국 무기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자주국방을 위해 자체 방위산업을 육성해야 하는지, 우크라이나 전쟁과 러시아의 위협을 고려하면 과연 그럴 시간이 있는지, 미국이 제공하고 있는 첨단 군사기술 장비를 계속 구입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등에 대한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이런 질문들에 어떤 답을 내놓아야 하는지 토론중인 유럽 측 관계자들은 '중간 전략'을 포용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방위 예산 계획 중 일부에 대해서는 미국 장비 구매에 쓸 수 있는 상한선이 설정돼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무기 구매는 각 회원국들이 하며, 미국산 무기와 EU산 무기에 돈을 어떻게 배분할지는 회원국들이 자유롭게 결정한다.
미국 무기에 계속 의존할 것인지 아니면 유럽 자체 개발 무기의 비중을 늘릴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축소키로 하고 무기 선적을 중단한 일을 계기로 유럽에서 더욱 거세진 상태다.
지난달 하순에 열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에서 유럽 국가들은 각국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3.5%를 핵심적 군사투자에 지출하고, 추가로 1.5%를 군사 관련 프로젝트에 지출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들에게 요구해 온 'GDP의 5%를 방위비로 쓰라'는 수준을 관철한 것이다.
유럽이 군비지출을 대규모로 늘리려고 하는 현 시점에서 EU 내에서 크게 두 가지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고 런던 소재 EU 관련 싱크탱크 '유럽개혁센터'(CER)의 찰스 그랜트 소장은 설명했다.
그 중 한 가지 견해는 프랑스 정부와 EU 기구 관계자들이 품은 강한 소신으로서, 유럽이 방위에 투자하는 돈이 자체 방위산업 육성을 위해 사용되도록 자금 용처를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이 이제는 신뢰할 수 없는 동맹국이 되었으므로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들의 견해다.
이에 맞서는 견해는 유럽이 지금 당장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역량을 가져야만 하며, 이를 위해 미국 무기를 계속 구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북유럽과 발트해 국가들, 그리고 폴란드에서 이런 견해가 우세하다.
폴란드 관계자들 중에는 이런 두 가지 접근방식이 양립 가능하다는 주장을 펴는 이들도 있다.
유럽 국가들이 국방비 지출을 크게 늘리기로 했으므로, 특수한 고성능 무기를 미국으로부터 사들이는 동시에 유럽 자체 방위산업에 투자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solat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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