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값도 관세도 비자도 트럼프 한마디에…'원맨쇼' 만기친람

약값도 관세도 비자도 트럼프 한마디에…'원맨쇼' 만기친람

로비스트 대신 기업 CEO가 트럼프와 '일대일 대가성 거래'

전문성 잃은 대통령의 즉흥적인 결정…정책의 질 떨어뜨려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지금까지 미국 로비스트들의 발길이 분주했던 곳은 주로 의회와 연방정부 기관들의 로비였다.

법안을 제정하고 정책을 실제로 집행하는 그곳에서 로비스트들은 자신을 고용한 고용주의 이해관계를 전달하고, 대립과 타협을 통해 정책이 조정됐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이 같은 전통적인 정책 결정 과정은 옛말이 됐다.


아주 작은 정책들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개입하고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구조로 바뀌면서 이제 로비스트들은 백악관 줄대기 경쟁에 올인하고 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19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원맨쇼' 탓에 의회, 연방정부 기관들, 로비스트들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텔은 올해 초만 해도 로비전의 승자처럼 보였다. 미 정부로부터 100억 달러(약 14조원) 규모의 보조금을 약속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텔의 자회사가 중국 국방과기대학에 반도체 설계를 불법 판매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상황은 급반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텔 CEO를 사임하라고 압박성 글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리자 립부 탄 CEO는 백악관과 연락해 면담 일정을 잡고 워싱턴DC로 날아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부 보조금의 대가로 인텔의 지분 10%를 받는 조건으로 퇴진 요구를 철회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중국 수출 허가를 얻어냈지만 중국 매출액의 15%를 정부에 납부하는 조건을 수용해야 했다.

과거 미국 정책 결정의 핵심 축이었던 의회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존재감이 거의 사라졌다.

공화당이 상·하원 양원을 장악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거수기'로 전락하면서 모든 사람들의 눈과 귀가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최측근들에게만 쏠리고 있다.

관료 조직도 마찬가지다. 부처별 실무 협의나 공청회 절차가 생략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정책 변화는 예고 없이 '날벼락'처럼 떨어진다.


지난달 '전문직 비자'로 불리는 H-1B 비자 수수료를 100배인 10만 달러로 대폭 인상하겠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깜짝 발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약값과 관세도 마찬가지다. 업계는 아무런 사전 통보도 받지 못했다.

과거엔 전문 로비스트들이 의회, 연방정부 기관들을 제집 드나들듯 드나들었다면 이제는 CEO들이 문턱이 닳도록 백악관으로 달려간다.

엔비디아의 황 CEO를 비롯해 애플 CEO 팀 쿡, 오픈AI CEO 샘 올트먼 등 글로벌 기업 수장들은 정기적으로 백악관을 방문한다. 최근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에도 동행했다.

정책 결정 구조가 '트럼프-CEO의 일대일 직거래와 대가 지불'로 바뀌면서 전통적인 로비스트와 무역협회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가진 신흥 로비업체, 대통령과 그의 최측근들이 즐겨보는 인터넷 방송·팟캐스트·SNS를 공략하는 홍보 전략이 각광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원맨쇼'식 정책 결정 과정이 정책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한다.

충분한 토론과 사회적 합의 대신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럭비공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인 결정이 국정 운영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정치 부패 전문가인 제임스 서버 아메리칸대 명예교수는 "과거에는 일을 처리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가는 것이 가장 마지막에 할 일이었다"며 "하지만 트럼프가 다양한 문제에 대해 매우 세부적인 부분까지 직접 개입하고 통제하면서 이제는 대통령에게 직행하는 것이 유일하게 효과적인 수단이 됐다"고 지적했다.

서버 교수는 "정책은 심사숙고의 과정과 전문성이 바탕이 돼야 하는데, 지금은 모든 게 대통령의 '즉흥성'에 종속돼 있다"며 "그 결과 정책은 현실과 동떨어지고 대통령과의 대가성 거래로 모든 것이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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