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랠리 거세지는 논쟁…"더 간다" vs "닷컴버블 닮아"
"AI발 구조적 변화 반영" vs "이익 정점은 사후에나 알아"
(뉴욕·서울=연합뉴스) 이지헌 특파원·정주호 기자 =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랠리를 지속하는 가운데 미국에서도 경쟁사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이례적인 강세 흐름을 지속하면서 반도체 업종을 중심으로 인공지능(AI) 거품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과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 상장된 주요 30개 반도체 종목으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지난 4∼5월 69%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 지수는 연초 이후 81% 폭등해 1999년 이후 최고 상승률을 향해 달리고 있다.
반도체 업종이 뛰어난 성과를 내면서 미 증시 대표 지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이란 전쟁에 따른 에너지 공급 불안 속에도 사상 최고치 경신 행진을 지속해왔다. S&P 500 지수는 5월 한 달에만 11차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운 끝에 연초 대비 약 11% 오른 수준이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은 16% 상승했다.
반도체 업종 중에서도 메모리 반도체 업종이 유례없는 수요 폭증으로 업종 전반의 강세를 주도했다.
미국 메모리 칩 회사인 마이크론은 올해 들어 주가가 3배 이상으로 폭등했고, SK하이닉스는 258%, 삼성전자는 164% 각각 올랐다.
플래시 메모리 업체인 샌디스크는 연초 이후 600% 폭등했고 델, 인텔, 시게이트, 웨스턴디지털도 200% 넘게 뛰었다. AI 붐의 상징인 엔비디아는 올해 13% 상승하며 시가총액 5조 달러(약 6천850조원)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한국 기업 최초로 지난 6일 시총 1조 달러(약 1천500조원) 클럽에 등극한 데 이어 마이크론과 SK하이닉스도 지난 26일과 27일 각각 시총 1조 달러 클럽에 가입했다.
◇ "랠리 더 간다"…빅테크 993조원 AI 투자 예고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등 대형 투자은행들은 1분기 기업 실적이 예상을 크게 웃돌자 올해 S&P 500 목표치를 잇달아 상향했다.
최근 AI는 단순한 질문 답변 수준을 넘어 실질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AI 에이전트로 진화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폭증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페더레이티드 에르메스의 스티브 키아바로네 글로벌 주식 부문 부최고투자책임자(CIO)는 "우리는 버블 상태에 있지 않다고 본다"며 "역사적으로 장기 강세장은 20년 주기인데, 우리는 지금 그 중간에 있고 가속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의 미국 주식 수석 전략가 벤 스나이더는 "강세장 종료를 알리는 신호인 투기적 과열, 이익률 수축, 연준의 금리 인상 등이 보이지 않는다"며 "최근 랠리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기업)의 천문학적인 AI 투자가 이어지는 가운데 메모리 반도체 수요 급증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데는 전문가 사이에 큰 이견이 없다. 아마존, 메타플랫폼,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등 4대 하이퍼스케일러는 올해 최대 7천250억 달러(약 993조원)를 AI 인프라를 중심으로 한 설비투자에 쏟아부을 예정이다.
◇ 버블 우려…"2000년 닷컴 버블 닮았다"
반면 2008년 금융위기를 예견한 마이클 버리는 현재 AI 열풍이 닷컴버블의 무분별한 열기를 닮았다고 거듭 경고하고 있다.
억만장자 헤지펀드 매니저 폴 튜더 존스도 미국 경제방송 CNBC와 인터뷰에서 현 증시 호황을 "미친 시절"이라고 묘사하며 "주가수익비율(PER)이나 영업이익 등 모든 면에서 봐도 1999년 10∼11월과 비슷한 시기에 위치해 있다"고 말했다.
나스닥의 닷컴 버블 정점은 2000년 3월이었다. 금융정보업체 팩트셋 자료에 따르면 S&P 500의 12개월 선행 주가이익비율(PER)은 현재 21배로 30년 평균인 17배를 웃돈다.
일부 투자자들도 최근 나타난 메모리 반도체 기업의 이례적인 실적 증가가 장기간 지속될 것이란 데 회의적인 눈길을 보내고 있다.
리버웰스 어드바이저의 에드 오고먼 최고경영자(CEO)는 "현시점에서 진입한다고 하더라도 추가 상승을 기대할 수는 있겠지만, 반도체 업종의 변동성이 얼마나 심한지, 훌륭해 보였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얼마나 급변할 수 있는지에 관한 생각을 떨칠 수 없다"라고 신중함을 내비쳤다.
상장지수펀드(ETF) 운용사인 스파크라인 캐피털의 카이 우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반도체 업종의 이익 정점은 사후적으로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거품 논란의) 핵심은 AI 인프라 구축이 어느 정도까지 지속될지에 달려있다"며 "투자가 지속된다면 반도체는 아마 계속 좋은 성과를 내겠지만, 우리가 너무 앞서 나가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 HBM이 바꾼 공식…"이번엔 다르다" vs "사이클은 반복된다"
거품 논란은 이 같은 메모리 수요 폭증이 AI 혁명에 따른 구조적 변화를 반영한 것인지를 두고 이뤄지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소개했다.
뉴욕 증시에서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호황과 불황 간 업황 변동 폭이 크기로 악명 높은 업종이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은 12개월 선행 PER로 주가를 평가하는 데 신중한 자세를 가져왔다.
현재 마이크론의 12개월 선행 PER는 10배 언저리로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 평균(27배)에 견줘 매우 낮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 같은 낮은 밸류에이션은 현재의 호황이 지속된다는 가정에 기반한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마이크론은 팬데믹 시기 디지털 장비 수요 급증 특수를 누리면서 2022년 연간 순익이 87억 달러(약 11조9천억원)에 달했으나 이듬해 메모리 공급 과잉으로 58억 달러(약 7조9천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특히 반도체 업종에 대한 기존의 가치평가 방정식은 AI 시대에 접어들어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이 커지면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HBM은 제조 난도가 높고 수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메모리 제조사들이 HBM 생산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다른 메모리 반도체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메모리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장기공급계약(LTA)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업황 진폭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폴라 캐피털의 조리 노데카에르 글로벌 신흥·아시아시장 부문 대표는 "HBM으로의 진화로 공급 측면에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났고, 수요 측면도 견고하게 남아 있다"며 "장기공급계약 구조의 등장으로 둔화 국면에서 업황 진동 폭을 줄이고 생산 및 가격 관리가 개선되는 시나리오가 전개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UBS의 팀 아쿠리 애널리스트는 장기공급계약이 내년 업계 전체 D램 출하량의 최대 30%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했다.
p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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