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아동·이민자…美 사회 외진 곳 바라본 숀 베이커
'플로리다 프로젝트'로 인지도 높여…영화 전 과정 참여하는 DIY 감독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2일(현지시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현지시간)에서 작품상 등 5관왕을 차지한 영화 '아노라'의 숀 베이커(50) 감독은 미국을 대표하는 인디 영화의 거장이다.
데뷔 후 25년 동안 성소수자, 위기가정 아동, 미혼모, 포르노 배우, 이민자, 성노동자 등 미국 사회에서 가장 외진 곳을 비추며 관객에게 울림을 줬다.
1971년 미국 뉴저지주에서 태어난 그는 뉴욕대학교에서 영화학을 공부하고 2000년 '포 레터 워즈'로 데뷔했다.
2004년에는 빚을 갚기 위해 하루 만에 돈을 마련해야 하는 중국인 불법 체류자의 이야기를 담은 '테이크 아웃'을 선보였다. 제작 당시 이 영화의 예산은 3천달러(약 430만원)에 불과했다. 그는 이후 2008년에도 이민자를 주인공으로 한 '프린스 오브 브로드웨이'를 내놨다.
독립영화계에서 점차 이름을 알린 그는 '스타렛'(2012), '탠저린'(2015)을 잇따라 연출하며 인지도를 더욱 높였다.
'탠저린'은 바람난 남자친구와 그의 새 여자를 쫓는 트랜스젠더 성노동자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선댄스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된 이후 영화 팬들과 평단에서 호평받았다. 카메라 대신 아이폰 5S 세 대로 촬영하는 혁신적인 방식과 10만달러(1억4천만원)라는 초저예산 제작비도 화제가 됐다.
그의 이름을 미국을 넘어 세계 영화계에 알린 작품은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다. 홀어머니와 함께 미국 디즈니랜드 인근 모텔에 사는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로, 베이커 감독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칸국제영화제 초청장을 받았다. 감독주간 부문에서 상영된 이후 정식 개봉해 1천130만달러(165억원)를 벌어들이며 흥행에 성공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해외 예술영화로는 이례적으로 10만명에 가까운 관객을 모았다.
베이커 감독은 이후 '레드 로켓'(2021)으로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젊은 시절 잘 나가는 포르노 배우로 활약했지만, 가난에 시달려 헤어진 아내의 집에 들어가게 된 남자의 이야기다.
이 작품의 차기작이 '아노라'다. 지난해 열린 제78회 칸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았다. 러시아 갑부와 결혼한 뉴욕의 스트리퍼가 시부모로부터 동화 같은 결혼 생활을 위협당하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작품이다.
칸영화제가 먼저 알아본 베이커 감독은 정작 '홈그라운드'인 미국의 주요 시상식에서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이름을 올린 것도 이번이 처음으로, 할리우드가 뒤늦게 그의 역량을 알아채 치하한 셈이다. 최근 독립영화와 소수자 문화에 주목하는 아카데미의 경향과 맞아떨어진 결과로도 해석된다.
'소수자성' 외에 베이커 감독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DIY(Do It Yourself)다. 연출부터 시나리오 집필, 편집, 제작 등 영화가 만들어지는 전 과정에 모두 직접 참여한다는 의미다.
덕분에 그의 작품 대부분은 저예산 영화로 제작된다. '아노라'의 제작비는 600만달러(87억원)로 할리우드 주요 영화 제작비의 20분의 1수준이다. 이마저도 '플로리다 프로젝트'(200만달러), '레드 로켓'(110만달러) 등 전작에 비하면 높은 편이다.
베이커 감독이 '아노라'로 오스카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등 4개 상을 독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제작, 연출, 각본 집필, 편집을 도맡아 했기 때문이다.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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