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트 사랑' 트럼프와 '티셔츠 활보' 머스크…정장의 정치학
트럼프, 사업가 시절부터 정장 고수…'군복' 젤렌스키 조롱도
머스크, 'NO 정장'으로 존재감 과시…트럼프, 내심 불만도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 "젤렌스키 대통령이 백악관에 정장을 입고 나타나지 않은 것을 두고 몇몇 당국자들이 발끈했어요. 그런데 머스크는 양복을 입은 적이 없거든요." (기자)
"머스크도 어젯밤 정장을 입었어요. 당신도 그걸 봤을 거예요. 대통령은 그 모습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복장 규정'를 둘러싼 작은 논쟁이 벌어졌다.
지난 달 28일 군복 차림으로 백악관을 방문했다가 조롱당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상황을 트럼프 행정부 '실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의 티셔츠 차림과 대조하는 질문이 나온 것이다.
마침 머스크는 전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의회 연설에 머스크가 이례적인 정장 차림으로 참석했다. 레빗 대변인은 "어제 머스크는 멋져 보였다"는 말로 질문을 피해 갈 수 있었다.
11일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머스크의 정장이 트럼프, 권력에 대해 무얼 말하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최근 워싱턴DC 정가를 달군 '정장 논쟁'의 함의를 분석했다.
정장을 입고 예를 갖추지 않았다고 비난받은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장을 입은 당국자들 사이에서 백악관을 활보해온 머스크의 모습 속에 트럼프 대통령과 이들의 역학 관계가 숨어 있다는 게 NYT의 평가다.
머스크는 그동안 공식 석상에서 티셔츠 차림을 고수해왔다. 특히 '테크-서포트'라고 쓴 검은 티셔츠는 그의 유니폼과도 같은 옷이다.
NYT는 이런 차림새가 미국 실리콘밸리 인재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실리콘밸리의 젊은 인재들은 기성세대처럼 옷 입는 것을 거부하며 자신들이 새로운 엘리트 일원임을 부각했다며 이는 '정장을 무너뜨린 티셔츠'를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그 때문에 지난 4일 트럼프 대통령의 의회 연설에 정장 차림으로 나타난 머스크는 많은 해석을 불러일으켰다. 낭패를 본 젤렌스키 대통령을 의식한 것이란 해석부터 드디어 트럼프 대통령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는 식의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머스크의 옷차림이 못마땅하다는 내심을 드러낸 적도 있다.
미국 언론인 마이클 울프는 저서에 따르면 지난해 대선 캠페인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유세에 머스크가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모자와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나타나자 당혹스러워했다. "이 사람이 대체 왜이래? 왜 셔츠가 안 맞아?"라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당시 반응이었다는 것이다.
지난 달 미국 폭스뉴스와 진행한 공동 인터뷰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뛰어난 사람들이 머스크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하더니 "그들은 그저 티셔츠만 입는다. (그런 차림새 때문에) 그들이 아이큐 180인 걸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소 머스크에 전폭적으로 힘을 싣는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그와 측근들의 티셔츠 차림은 눈에 거슬렸던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소 남다른 '정장 사랑'을 보여왔다. 골프장에서 포착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넥타이까지 갖춰 맨 정장 차림으로, 사업가 시절부터 고수해온 일종의 철칙으로 알려졌다.
그는 과거 저서에서 "옷차림은 우리가 입을 열기도 전에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많은 것을 말해준다"며 "잘 차려입은 옷은 처한 환경을 이해하고, 그 문화를 존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언급한 바도 있다.
NYT는 "머스크는 다른 사람들이 해야만 하는 옷차림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며 "그렇기에 머스크가 멋진 정장을 입을 때, 그건 마치 권력이 강등된 것처럼 보였다"고 짚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트럼프처럼) 정장을 갖춰 입는 경향이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옷을 갖춰 입지 않는 것은 반항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hrse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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