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한국도 미국처럼 식당서 팁을 줘야할까
美, 팁 받는 노동자는 최저임금 못 받아…일부 지역서 제도 개선 추진
저렴한 인건비 의존하는 韓 외식업…사업주도 임금 인상 여력 작아
(워싱턴=연합뉴스) 김동현 특파원 = 미국에서 외식하면 서빙 직원에게 통상 15∼20%의 팁을 남긴다.
카드로도 낼 수 있어 과거처럼 현금을 준비할 필요는 없지만, 누군가의 서비스를 평가해 돈을 주는 일이 편하지는 않다.
물론 요새 같은 고물가에 외식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은 마음도 있다.
미국 식당 노동자에게 팁이 사실상의 생계 수단이라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됐다.
미국은 연방 차원의 최저임금을 처음 규정한 1938년 공정노동기준법(FLSA)을 1966년에 개정하면서 '팁 크레딧'이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한 달에 30달러 이상의 팁을 버는 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 전액을 주지 않아도 된다.
노동자가 받는 팁을 '팁 크레딧'으로 반영해 사업주는 최저임금에서 팁을 제외한 만큼만 지급하면 되는 것이다.
연방 최저임금(시간당 7달러25센트·약 1만원)을 기준으로 사업주는 합법적으로 팁 노동자에게 시간당 2달러13센트(약 2천800원)만 줘도 된다. 대신 여기에 팁을 합친 금액이 최저임금에 못 미치면 사업주가 차액을 보전해야 한다.
안정적인 소득의 비중이 작으니 노동자가 팁에 목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이유로 미국 일각에서는 팁은 소비자의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고 주장한다.
반대로 제도가 잘못이라는 지적도 있다.
생계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급여를 지급해야 하는 사업주의 책임을 고객에게 떠넘기는 꼴이기 때문이다.
서빙 직원의 다수를 차지하는 여성과 유색인종이 팁 때문에 고객이나 관리자의 눈치를 보고 불합리한 대우나 성희롱에 제대로 항의하지 못한다고도 한다.
팁이 미국 사회에 자리 잡게 된 배경을 생각하면 팁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역사학자들은 19세기 중반 유럽 여행을 다녀온 상류층이 유럽의 귀족 문화를 모방하면서 팁이 도입됐다고 한다.
이후 노예제가 폐지되자 흑인을 동등하게 대우하기를 거부했던 미 남부 등에서 흑인에게 제대로 된 임금을 주는 대신 팁만 받게 했다는 설이다.
아직 예외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일부 식당은 이런 이유 등으로 팁을 없애고 최저임금보다 더 많은 임금을 준다. 아예 15∼20% 서비스 비용을 가격에 반영하기도 한다.
일부 주(州)에서는 팁을 받더라도 연방 최저임금보다 더 많은 최저임금을 주도록 하며 캘리포니아 등 일부 주는 '팁 크레딧'을 허용하지 않는다.
필자가 사는 워싱턴DC의 최저임금은 16달러10센트로 연방 최저임금의 2배가량이지만, 사업주는 팁 노동자에게 5달러35센트만 지불하고 나머지는 팁으로 받게 할 수 있다.
DC는 2027년까지 '팁 크레딧'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최저임금 전액을 지급하게 하는 방안을 오는 11월 주민투표에 부칠 예정이다.
DC 유권자들은 2018년에도 투표로 비슷한 안을 가결했지만, 외식업계의 반발에 부닥친 시 의회가 이를 뒤집었다.
이번에도 전국레스토랑협회(NRA)와 DC 식당들은 고물가로 이미 어려운 식당의 인건비 부담이 커지면 결국 가격을 인상하고 직원을 줄여 소비자가 피해 볼 것이라며 반대한다.
이런 논란을 보면 한국의 외식비가 상대적으로 덜 부담스러운 이유가 낮은 인건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숙박·음식점업 임금근로자 월평균 소득은 163만원으로 주요 산업 중 가장 낮았다.
그러나 코로나19 타격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한 다수 자영업자는 지금 인건비도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그렇다고 가격을 올리거나 별도의 '서비스 비용'을 청구하기에는 소비자의 반발이 걱정된다.
하지만 식당 주인도 노동자도 힘든 이런 상황은 지속 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이제는 한국 사회도 그동안 누린 저렴한 외식에 제대로 된 값을 치러야 하는 게 아닐까.
blueke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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