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0선 대통령’ 윤석열의 좌절된 정치실험 4년

첫 ‘0선 대통령’ 윤석열의 좌절된 정치실험 4년

정계 입문한지 8개월 만에 대통령으로 당선
21·22대 여소야대 지속…국회권력과 충돌
‘국민 검사’ 발판으로 대권의 ‘별’ 잡았지만
비합리적·반지성적 ‘비상계엄’ 몰락 자초해


헌법재판소가 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해 인용 선고를 했다. 탄핵 소추 111일, 변론 종결 38일 만이다. 사진은 작년 5월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 공동기자회견 뒤 퇴장하는 윤 대통령. [연합]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4년 남짓 정치실험은 결국 실패로 막을 내렸다.

헌법재판소가 4일 12·3 비상계엄 관련 탄핵 사건에서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주문을 내리는 순간 윤 대통령은 곧바로 대통령직을 상실했다.

정치에 입문하자마자 나선 첫 공직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며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사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화려하게 정치역정을 시작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검사 출신’은 윤 대통령에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꼬리표다.

국회의원 경력이 없는 그를 87년 체제 이후 첫 ‘0선 대통령’으로 밀어올린 가장 큰 동력도 어떤 권력의 눈치도 보지 않는 ‘국민 검사’에 대한 기대와 신뢰였다.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난 윤 대통령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9수 끝에 1991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27년간 검찰에 재직하면서 거물급 수사와 굵직굵직한 사건 때마다 이름을 올렸다.

검사로서 처음 세간의 시선을 모은 것은 1999년 김대중 정부의 실세로 불리던 박희원 경찰청 정보국장의 뇌물수수 사건을 맡아 구속시키면서였다.

2002년 잠시 검찰을 떠나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1년간 변호사로 일하기도 했으나 이듬해 다시 광주지검으로 복귀했다.

이후 살아있는 권력을 향한 수사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했다.

노무현 정부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구속기소했고, 현대자동차그룹 비자금 수사를 맡아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구속시켰다.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태 수사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을 구속기소한 데 이어 2018년 다스 자금 횡령 혐의 사건을 파헤쳐 이 전 대통령까지 구속시켰다.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엔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팀장으로 권력 핵심부를 정조준하다 상부와 마찰을 빚은 끝에 업무에서 배제됐다.

상부의 외압을 폭로하면서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긴 것도 이 때의 일이다.

국민들로부터는 갈채를 받았으나 이 일로 정직 1개월 징계에 이어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에서 대구고검 평검사로 좌천됐다.

한직을 떠돌던 윤 대통령은 2017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자 박영수 특검 수사팀장으로 합류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구속시키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1년 6월 서울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대선 출마선언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당시 공정과 상식을 기치로 내걸었다. [이상섭 기자]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엔 전임보다 다섯 기수 후배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파격 발탁됐다 2년 뒤 검찰총장으로 또 한번 파격 임명됐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관련 의혹과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 등 문재인 정부를 겨눈 수사를 밀어붙이면서 정부와 여당과 등을 돌리게 됐다.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검언유착 의혹 등 수사지휘권을 발동하고 정직 2개월 징계를 청구하는 등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오히려 반문(반 문재인)의 구심점으로 급부상했고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이름을 올리며 ‘별의 순간’을 잡게 됐다.

결국 윤 대통령은 임기 4개월을 남겨둔 2021년 3월 검찰총장에서 자진해서 물러난 뒤 같은 해 6월 대선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의 집권 연장과 국민 약탈을 막아야 한다”면서 “상식을 무기로 무너진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공정의 가치를 기필코 다시 세우겠다”며 ‘공정과 상식’을 치켜들었다.

한달 뒤 국민의힘에 입당한 그는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 등과 당내 경선을 거쳐 같은 해 11월 5일 제1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윤 대통령은 대선 사전투표 하루 전인 2022년 3월 3일 새벽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물밑협상을 거쳐 극적인 단일화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3월 10일 1639만4815표(48.56%)를 획득해 1614만7738표(47.83%)를 얻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꺾고 마침내 제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정치 입문한 지 불과 8개월여 만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월 8일 법원의 구속 취소 신청 인용 결정에 따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되면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


윤 대통령은 당선 확정 뒤 첫 기자회견에서 여소야대 상황이 오히려 민주주의와 정치 성숙의 기회가 될 수 있다며 통합의 정치를 공언했다.

기자회견이 진행된 국회도서관 지하 1층 강당에 걸린 ‘통합의 힘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대한민국’ 문구는 곧 출범할 윤석열 정부에 대한 기대를 품기에 충분했다.

또 취임사를 통해 취임 일성으로 정치가 민주주의의 위기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민주주의를 지탱할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를 강조했다.

그러나 22대 국회 총선에서 집권여당이 패배하고 21대 국회에 이어 여소야대 정국이 지속되는 가운데 거대야당과 인사권과 거부권 등을 둘러싸고 번번이 충돌하면서 통합은 실종되고 말았다.

결정적으로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시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 나아가 처단까지 하겠다는 비합리적이고 반지성적인 포고령으로 대변되는 12·3 비상계엄 선포로 스스로 정치적 몰락을 앞당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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